어쩌면 스무 번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편혜영작가의 소설집중 가장 최근작이다. 작가님의 데뷔작격인 [아오이가든]을 먼저 읽고 이어서 이 작품을 클리어했다. 사실 책을 읽기 전, 정기구독중인 [미스테리아]의 리뷰섹션에서 이 소설집에 대해 극찬한 칼럽을 먼저 읽었기에 어느 정도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다. 기대에 아주 충족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만큼 소설들의 완성도가 높은편이었다.

[아오이가든]에서 훌쩍 뛰어서 왔던지라 저간의 사정은 알지 못하겠지만 데뷔작과 이 소설집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훨씬 세련되어졌다고할까? 싶을 정도로 정제된 맛이 있었다. 하지만 [아오이가든]의 날것 같은 강렬함은 많이 순화되었기에 그 부분은 약간 아쉬워 양가적인 감정이 느껴졌다. 

총 여덟편의 작품이 수록되어있으며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쓰인 단편들 가운데 성격이 유사한 여덟 편을 골라서 엮어냈다고 한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상당히 세련되고 날이 조금 벼려진 문장속에 흐르는 극적 긴장감은 여전했다. 살아가면서 익숙했던 장소에서 느껴지는 낯선 감정을 매우 잘 표현해냈다. 

소개글을 통해서 각 작품의 얼개를 간단하게 살펴보자면,

˝소설집 처음에 자리한 표제작 「어쩌면 스무 번」의 주인공 나는 치매를 앓는 장인을 모시고 아내와 함께 산골로 이사한 참이다. 주위에 옥수수밭이 가득하고 가장 가까운 이웃집이 삼백 미터 넘게 떨어져 있을 만큼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의 삶에 적응해가던 어느 날, 한 보안업체 직원들이 집을 찾아온다.

위험에 노출되어도 도움을 구하기 어려운 환경을 강조하며 자신들의 회사와 계약할 것을 은근하게 강요하는 그들의 말에 아내와 나는 왠지 모를 공포를 느낀다. 재산과 목숨을 지켜준다고 말하는 그들이 다른 그 무엇보다 아내와 나를 불안에 휩싸이게 하는 그 아이러니가, 치매 증세가 심각해진 장인을 둘러싼 이들의 상황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
이어지는 소설 [호텔 창문], [홀리데이 홈], [리코더]를 연달아 읽으면, 우리는 삶을 바라보는 편혜영의 시선이 한층 더 깊고 치밀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죄책감, 수치심등의 감정과 관련이 있다. [호텔 창문]의 운오는 19년 전 강에 빠져 죽을 뻔했다가 사촌형에게 구조되었고, 사촌형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그후로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대신해 살아난 운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사실을 상기시키며 그에 걸맞게 행동하기를 바라지만, 운오는 늘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던 형이 자신을 살린 걸 생각하면 언제나 의아한 기분이 들 뿐,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
[홀리데이 홈]도 관계와 감정을 둘러싼 인물의 복잡한 모습을 드러낸다. 장소령이 소개팅으로 만나 결혼한 직업군인 이진수는 소령에서 더 진급하지 못하고 전역한다. 물품의 납품단가를 부풀리는 일에 가담했다가 그 일이 알려지면서 책임을 질 사람으로 지목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이진수는 식당을 차려 자리를 잡는 듯했지만 육우를 한우로 속여 판 것이 적발된 뒤 손님이 줄어 결국 아파트를 팔고 전원주택마저 팔아야 할 처지에 놓인다.

비가 거세게 쏟아지는 어느 날, 두 남자가 집을 보러 이들을 찾아온다. 그들은 과거 이진수가 저지른 또다른 일에 대해 무언가 아는 듯이 그를 추궁하려 드는데, 그 추궁은 이진수뿐 아니라 이진수 곁에서 그 모든 일을 지켜보면서도 내내 침묵한 장소령을 향해 있는 것만 같다.
  
[호텔 창문]과 [홀리데이 홈]이 어떤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일부러 모른 척하는 인물의 이야기라면 [리코더]는 어떤 감정을 떨쳐낼 수 없는 인물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빚이 쌓인 무영은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수오의 집에 얹혀살게 되는데, 얼마 안 돼 수오가 증발하듯 사라져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무영을 의심해 그를 추궁하지만, 경찰은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무영과 수오가 고등학교 시절 수련장이 붕괴되는 사고를 함께 겪었다는 사실, 두 사람은 운좋게 구조되었지만 같은 반의 다른 친구는 끝내 살아남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무영은 수오의 실종이 어쩐지 그 일과 관련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수오가 말한 마지막 말을 되새기는 무영의 모습에, 감정을 좀처럼 발설하지 않고 건조하게 서술하던 편혜영의 소설세계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뭉클함과 애틋함이 고여든다.
​
이런 변화는 [리코더]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사업이 망하고 치매에 걸려 실종된 남편 때문에 술에 점점 의존하게 된 미조가 외국에 사는 딸의 집을 방문하는 이야기인 [플리즈 콜 미]‘ 고요하게 일상을 이어나가리라고 짐작하던 어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내려가는 나가 과거를 돌이키며 시작되는 [좋은 날이 되었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딸을 대학에 보내려고 보험에 드는 등 삶을 반듯하게 꾸려나가기 위해 애쓰던 엄마의 노력이 헝클어지고 마는 모습을 그려낸 [미래의 끝]과 같은 작품들 역시, 미래를 전망할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인물들을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마냥 비관 속에 잠겨 있게 하지만은 않는다.

그것은 잠시나마 따스하고 부드러운 순간들이 이들에게 분명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이 급속도로 나빠진 뒤에도 미조와 딸이 서로를 애틋하게 쳐다볼 때([플리즈 콜 미]), 나가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바라보며 어머니가 환하게 웃던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좋은 날이 되었네],동방생명 아줌마가 혼자 남겨진 나의 손을 잡고 집밖으로 데리고 나갈 때([미래의 끝]), 우리는 어찌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환함을 느끼게 된다.(소개글 발췌)˝

개인적으로 표제작인 [어쩌면 스무 번]과 2019년 김유정 문학상을 수상한 [호텔창문]이 좋았지만 다른 작품들에서도 저마다 각기 다른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집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했던 지점에서 꼬이고 꼬여 낯설게 다가올때 우리는 어떤 기분을 느낄 수 있을것인가? 각기 다른 반전과 은근히 비밀스러운 상황에서 색다른 스릴감을 느낄 수 있는 소설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