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더 쉬워졌음에도) 톨스토이는 결국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정말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근접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전보다 삶이 악화됐다고도 할 수 있었다. "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라는삶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답을 여전히 찾지 못했다는 사실조차 잠깐 동안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소설가로서의 삶은 부유한 한량으로서의 삶보다더 보람 있고 더 많은 존경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결국 마찬가지로 무의미했다. 어찌됐든 그런 삶조차 결국 죽음으로 끝날 것이기때문이었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 오늘이든 내일이든병과 죽음은 찾아올 것이다. 그러면 악취와 구더기 외에는 아무것도남지 않을 것이다. 내가 무슨 행적을 쌓았머지않아 그런 행적들은잊힐 것이며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떻게 인간이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계속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 참 놀라운 일이로다! 계속 삶을 살아가는 것은 삶에 취해 있는 동안에나 가능한 것이다. 일단 깨고 나면삶이 그저 속임수에, 멍청한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못할 수가 없다!
물론 우리는 죽음이 실재하지 않는다거나 죽음이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실제로 알아낼 수는 없다. 적어도우리가 일반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으로 알아낼 수는 없다. 죽고 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없다. 무엇보다도 우리 중 누구도 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만약 죽음에대한 지식이 이승에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특이한 종류의 지식일 것이다. 이성이나 경험에 기반을 둔 지식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이성에 반대된다는 의미에서 비합리적인 지식은 또 아닐 것이다). 톨스토이는 이런 특이한 지식을 가리켜 ‘믿음‘이라 부른다.
여기에 조악하게 대충 칠한 형상들이 있구나. 예전만 하더라도 장엄하고 신비해 보였는데 말이다. 명예와 영광, 자선, 여성을 향한 애정, 조국을 향한 애정 등 과거에는 이런 그림들이 얼마나 웅장해 보였던가! 얼마나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었던가! 하지만 내게 다가오고 있는 차가운 여명의 빛에 비추어 보니 이제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단순하고 건조하고 조악해 보이는구나.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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