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생을 모르고서 프랑스의 미를 논하지 말라." 나는 평소에 이렇게 믿고 있다. 노르망디 지방의 레 장들리 출신인 니골라 푸생은 일생의 대부분을 로마에서 지냈지만 그의 작품과 예술 이론은 17세기 후반의 프랑스인 화가들에게 본보기가 되었다.
감각보다 지성을, 색채보다 형식과 구성을 중시한 푸생의 작품은틀림없이 읽는 회화‘였다. 높은 인문학적 교양을 갖추었던 그는 회화를 장인에 의한 기술이 아니라 교양 예술의 하나로 인정받기 위해 애쓴 이상적인 프랑스인 화가다.

프랑수아 1세는 이탈리아에서 100년 늦게 르네상스 예술을 받아들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프랑스로 초빙해 프랑스 최초로 본격적인 르네상스 건축인 퐁텐블로 궁전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년전쟁이 한창일 때 약탈의 수모를 겪고 손상된 채 방치되어 있던 루브르성을 공식적인 거처로 정한 사람도 프랑수아 1세였다.
프랑스 르네상스의 중심인물인 왕은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루브르성이 시대에 뒤처진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새로운 건물을 세웠는데, 현재 루브르미술관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인 레스코 날개관이다. 또한 루브르미술관의 그림 수집에 초석을 다진 인물도 바로프랑수아 1세다.

18세기에 들어서 프랑스는 큰 전환기를 맞이해 섬세하고 화려하며 경쾌한 문화로 바뀌어갔다. 1715년에 루이 14세가 서거하자 그때까지의 남성적인 ‘왕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답답한 궁정 생활에서 해방된 궁정 사람들을 중심으로 여성적인 문화, 즉 귀족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루이 15세의 시대가 열리면서 남성의 복장도 화려해지고 화장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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