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후 10년간 호크니는 자신이 자연주의(naturalism)라 불렀던 회화를 향해 나아갔다. 클락 부부와 퍼시‘ 처럼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작품 중 일부는 자연주의의 방식을 따라 그린 것들이다. 그는 그 작품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1970년대 초반에 그린 회화는 그의 작업에서 하나의 정점을 이룬다. 몇 년 후 그는 자연주의의 제약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그 경로의 끝에 다다랐다는 징후는 두 폭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대형 초상화, ‘조지 로슨과 웨인 슬립(미완성, 1972~1975)을 완성할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또 다른 훌륭한 작품인 부모님과 나(My Parents andMyself)‘를 위해 그는 사진도 찍고 드로잉도 했지만 결국에는 포기하고 말았다.
이 이후로 그의 작품은 자연주의의 덫에서 벗어나 세계를 묘사하는 다른 방법을찾는 데 몰두했다. 그는 카메라 렌즈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묘사할 수 있는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1970년대 중반의 위기는 호크니의 작업 여정에서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파리에 거주할 당시 그는 겨우30대 중반이었지만 생존하는 어떤 예술가보다 유명하고 인정받고 있었다. 이 이후로 그의 작품은 현저한 변화를 겪었다. 그는 팝 아티스트가 아닌 작가에서 고정된 스타일이 전혀 없는 작가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35년간 그는 시간을 두고 자연주의에 가까운 초상화와 정물화, 풍경화를 계속해서 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매우 개성적인 방식으로 입체주의를 탐구했다. 그리고 다양한 비자연주의적인 양식의 오페라 무대를 위한 일련의 디자인 작업에도 많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