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첫 장편이자 출세작인 『파리대왕이 나온 것은 1954년, 그의 나이 43세 때의 일이었다. 그때까지 장편 세 편을 따로 써둔 게있었지만 발표는 하지 않았다. 이미 남들이 써놓은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라 한다. 핵분열의 엄청난 파괴력을 알게 된인류가 과연 영속적인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 하는 냉전시대의 회의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당시에 『파리대왕은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일반적인 불안의 풍토 속에서 구상된 모험담과 우화와 앨리고리의 차원을 지닌 이 작품이 발휘한 호소력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뒷날 영화화되어 작품의 성가(聲價)에 기여하였고 특히 영미의 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읽혀 작가는 캠퍼스대왕)이라는 별명을얻기까지 하였다.

『파리대왕의 우의적(禹意的) 차원은 주요 등장인물을 검토해 보면 선명히 드러난다. 첫장에서부터 등장하는 랠프는 잘생긴 얼굴에 단단한 체격의 소년이다. 그는 타고난 지도자의 자질을 가지고있으나 잭의 저항에 성공적으로 대처할 만한 냉혹함이나 자기 고집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그는 꼬마들의 복지를 근심하는 따뜻함과 사이먼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는 양심을 가지고 있다.
구조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식을 대표하며 잭과는대조적으로 문명의 가치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대조되는 잭은 검은 제복을 입고 있으며 늘 그림자나 어둠과 연결되어 있다. 신체적인 다부짐, 도덕적 파렴치, 권력지향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그는 꼬마들에 대한 동정심도 느끼지 못한다. 학교에서 성가대 반장이었고 샤프조로 노래할 수 있다는 얼토당토않은이유를 들어 지도권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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