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무역을 분리하는 이러한 정책은 오다 노부나가와는 구분되는 히데요시의 독자적인 정책입니다. 훗날 도쿠가와 막부가 신앙과무역을 분리해서 접근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사람들에게 나가사키데지마의 거주를 허가한 정책의 출발점이라 하겠습니다. 중세 일본-유럽 교섭사 연구자인 마쓰다 기이치는 이러한 유럽과의 외교야말로히데요시의 외교 정책 가운데 진정으로 독창적인 것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요약하자면 히데요시 정권과 도쿠가와 일본, 명나라와 청나라도 가톨릭 세력이 정치 · 군사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는 한 유럽과의 관계를 끊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서 중국과 일본은 같았고, 조선은 달랐습니다.

철수했지만 네덜란드는 메이지유신 때까지 일본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서구 세력은 청나라와 일본 양쪽 모두와 교류를 가졌지만,
청나라는 이들을 통해 서구 문명을 배운다는 태도를 좀처럼 취하지않은 반면, 일본인들은 나가사키 데지마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관을 통해 유럽과 세계에 관한 지식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선택과 집중 덕분에 일본은 같은 시기 동중국해 연안 지역의 다른 나라들보다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 수 있었고, 미흡하나마 대비도 할 수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라스무스는 유럽뿐 아니라 17세기 일본의 지적인 르네상스도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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