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토록 잘 나가던 북한경제는 197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뚜렷한 정체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경제발전을 좌우하는핵심요소인 기술이 더 이상 뚜렷한 발전을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가 집중적으로 강조했듯이,
기술은 본디 무역을 통해 외부세계와의 부단한 교류를 통해 발전한다.
그런데 북한은 자력갱생 노선을 추구하면서 그러한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기대할 수 없었다. 기술발전의 정체는 예고된 결과였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은 1992년 특사를 미국에 파견하여 고위급 회담을 통한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개선을 타진했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과의 공존을 냉정하게 거부하였다. 미국은 방대한 군사비 유지를 위해(그들 스스로 ‘악의 축‘ 이라고 불렀던) 북한이라는 위협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미 국방장관이었던 윌리엄 페리는 1997년 한국에서 한 강의를통해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1994년 6월 어느 날 클린턴 대통령은 재래식 전쟁의 위험을 감수하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저지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그런데 불과한 시간 전, 김일성을 만나러 평양에 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으로부터전화가 걸려왔다. 북한이 영변의 핵 연료봉 재처리를 중단하고 미국과협상하겠다는 뜻이었다. 1시간 차이로 역사가 바뀌었다."

그런데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대미관계를 냉전시대의 친미냐 반미냐의 구도 속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만약 그러한구도를 계속 고수한다면, 북·미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북한은 반미에서친미로 변절한 꼴이 된다. 이는 말이 안 된다. 탈냉전 시대 대미관계의요체는 어떻게 자주권을 견지하면서 공존할 것인가에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우리 자신의 요구에맞게 방향을 설정하고 미국이 이에 동의하고 협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김대중 정부가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전환시켰던 경험을통해 그러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잠시 뒤에 확인하겠지만, 남북이 손을 잡고 주변 4대 강대국에 대해 균형외교를 전개한다면, 그 가능성은 매우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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