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현실에서 만날 일 없는 사람들과 이어주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지각적 정보로 충만한 오프라인 커뮤니케이션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지각 능력만으로 사람들의 진짜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지각한정보와 그것으로부터 유추한 것들 그리고 상대방의 주장을 종합해 사고하는 것은 시민으로서 꼭 갖춰야 할 능력이다. 대규모 프로파간다가 실제 사람들 앞에서 이뤄지는토론을 배제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한 가설을 실제 사람들 앞에서 시험하는 토론의 장을 여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해 정말로 중요한 일인지도모르겠다. 지각적 정보를 걸러내 발화자의 메시지만 전달하는 플랫폼에서만 교류하다보면, 섬세하고 다층적인 지각 능력을 기를 수 없다. 처지가 다른 사람들이 다 함께 발언권을 가지고 통치 방식을 정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러한 능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대중의,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지각 능력을 기를 장과 기회가 사라지면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이한다. 나아가 사회를 읽어내는 우리의 역량과 행동 양식도 덩달아 발전하지 못하게 된다.
보통 우리는 현실에서 지각하는 것들을 꽤 잘 안다고 생각한다. 두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며 우리가 지각한 것들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이 세계에는 우리가경험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게 존재하지 않을까?
그렇다. 훨씬 많다. 일단 이 세계에는 미세 구조가 존재한다. 미세 구조의 일부 규칙은원소 주기율표에 아름답게 나타나 있다.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 같은 학문은 감각으로지각 불가능한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세계의 미세 구조를 탐구할 수 있게 된것이야말로 인류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계에는 감각적 지각을 뛰어넘는 차원의 현실이 존재한다. 또한 읽는 행위로 깨치는 차원의 현실도 존재한다. 우리는 책이나 영화를 통해 다른사람들의 삶을 배운다. 작가 제임스 볼드윈은 자신의 고통이 유일무이한 줄 알았으나책을 읽고 난 후로는 그 고통이 전혀 특별하지 않으며 흔하디흔한 감정이란 걸 깨달았다고 한다. 문화적 차이가 메꿀 수 없는 간극처럼 보이기도 하는 현 사회에서, 이러한깨달음은 굉장히 중요하다.
위에서 바라보기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과 새롭게 생겨나는 모든 것이 얼마나 빨리 우리를 스쳐 지나가 시야에서 사라지는지를 항상 생각해 보라. 물질은 끊임없이 흐르는 강과 같고, 그움직임은 시시각각 변화하며, 그 원인은 무한히 다양하고, 가만히 멈춰 있는 것은 아무것도없다. 그리고 우리 곁에는 늘 헤아릴 수 없이 긴 과거와 입을 크게 벌린 미래의 심연이 버티고있어, 그 속으로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의 한복판에서 잘난 체하거나 고통스러워하거나 고통이 영원할 것처럼 자신의 불행을 한탄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찌 어리석지않겠는가?
물론 폭력배의 삶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삶과는 다르다. 그러나 평판을 인격보다 중요시하는 사람은 폭력배와 별 차이가 없다. ‘좋아요‘ 숫자에 집착하면서 실제자기 모습이 아닌 만들어진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려는 소셜미디어 속 인플루언서가바로 그런 사람이다. 도덕적이라고 칭찬 받기 위해 (실제 그런 미덕을 갖추지 않았으면서 마치 그런 사람인 것처럼) 온라인에서 연기를 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남들에게 ‘깨어 있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 정말 자신이 인정 많고 의식있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점검하는 일에 시간을 덜 쓰는 사람도 말콤 X) 속의 아치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아치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 폭력배에게 평판이 중요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것은 아니다. 인플루언서나 온라인 활동가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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