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에도 차원이 있다. 모동심이貌同心異의 모방이 있고, 심동모이心同貌異의 모방이 있다. 겉모습만 비슷하고 알맹이는 딴판인 것은 모동심이다. 하급의 모방이다. 겉보기엔 전혀 다른데 알맹이가같은 것이 심동모이다. 우리가 말하는 의미 있는 모방은 심동모이의 모방이다. 껍데기만 같으면 못 쓴다. 이것을 다시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 상동구이同求異다. 같음을 숭상하되 다름을 추구한다. 같지만 다르고, 다르기에 같다는 말이다. 과거와 현재는 이렇게 만난다. 한시와 현대시도 그렇다.

《주역》에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 통하면 오래간다.則變,
變則通, 通則可久."고 했다. 천지만물은 변화 유동한다. 한 시대가 가면 또 한 시대가 온다. 이 도도한 변화 앞에 옛것만 좋다고 우겨서야 될 일이 아니다. 새것은 또 옛것과 별개의 무엇인가? 그럴 수는없다. 중요한 것은 이것과 저것이 다름을 확인함에 있지 않고, 그사이에 숨을 통하게 하여 오래 가게 만드는 일이다. 이른바 ‘통변變의 정신이 여기서 나온다. 유협은 《문심조룡 통변)에서 이렇게말한다.

옛것을 기준으로 지금을 보면 지금이 진실로 낮다. 그렇지만 옛사람이 스스로를 볼 때 반드시 자신이 예스럽다 여기진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 보던 자도 또한 지금 것으로 보았을 뿐이리라. 세월은 도도히흘러가고 노래는 자주 변한다. 아침에 술 마시던 자가 저녁에 그 장막을 떠나간다. 천추만세는 지금부터가 옛날인 것이다.

옛것을 본받아라. 그러나 그 정신과 원리를 본받아야지, 형식을본받아서는 안 된다. 이 경우 원리란 무엇인가? 부뚜막의 숫자를조작하여 적을 현혹시킨다는 것이다. 형식이란 무엇인가? 부뚜막숫자를 늘리거나 줄이는 것이다. 손빈은 부뚜막 숫자를 줄여서 이겼고, 우승경은 반대로 늘여서 이겼다. 손빈은 적진을 향해 들어가고 있었고, 우승경은 적진에서 후퇴하는 중이었다. 방법은 반대로했지만 이긴 것은 같다.

국문학과의 교과과정을 보면 현대시론이나 현대소설론, 현대비평론 같은 강좌는 있어도, 한국시론이나 한국소설론, 한국비평론등의 강좌는 찾아볼 수 없다. 시론과 비평론은 꼭 ‘현대‘ 라는 수식어를 달고 서구의 문예이론을 전달한다. 독일문학비평사와 프랑스문학비평사, 중국문학비평사는 서점에 꽂혀 있어도, 볼 만한 한국문학비평사는 한 권이 없다. 문학사 강의는 언제나 고전문학사와현대문학사가 따로 논다. 갑오경장이 없었다면 문학사는 어떻게 구분했을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김옥균에게 감사하고픈 심정마저든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척으로 설명하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 이야기는 알아들을 사람이 없다. 한시 연구에서 논문을 쓰자는 것인지 위인전을 쓰고 있는지 분간 안 되는 연구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생애나 역사 배경을 죽 늘어놓고, 거기에 작품을 꿰어맞춰 일대기적 구성으로 재배열하거나, 자기가 연구하는 시인이 언제나 최고가 되는 당착은 병폐가 된 지 오래다. 툭하면 현실인식이고, 입만 열면 역사의식을 말한다.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아니다. 하지만 문학성이 담보되지 않은 의식이란 대자보나 설교와무엇이 다른가? 미의식의 부재는 문학성의 검증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가뜩이나 한문 해독이라는 부담을 지고 가는 터에 미학의잣대마저 흔들리니, 결국 인치를 가지고 자척을 재려 드는 격이 되고 만다.

본분으로 돌아가라 함이 어찌 문장만이리오? 일체의 일이 모두 그렇지요. 화담花潭 선생이 길을 가다가 집을 잃고 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더랍니다. "너는 왜 우는가?" 그가 대답하기를, "제가 다섯살에 눈이 멀어 이제 스무 해가 되었습니다. 아침에 나와 길을 가는데갑자기 천지만물이 맑고 밝게 보이는지라 기뻐 돌아가려 하니, 골목길은 갈림도 많고 대문은 서로 같아 제 집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웁니다." 선생이 말했다. "내가 네게 돌아가는 법을 가르쳐주겠다.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그러면 바로 네 집을 찾을 수 있으리라." 이에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려 걸음을 믿고 도달할 수 있었더랍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빛깔과 형상이 전도되고, 슬픔과 기쁨이 작용이 되어 망상이 된 것이지요. 지팡이를 두드리며 걸음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분수를 지키는 관건이 되고, 집으로 돌아가는 보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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