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 있어줘
에릭 쿠 감독, 테레사 챈 외 출연 / 야누스필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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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6일 월요일 DVD 평점 4.5점



올초 개봉작중 우리 가족 라멘샵이라는 영화가 눈에 띄여서 예매를 했지만 일이 생겨서 보지 못했다. 에릭 쿠라는 싱가포르 출신 감독의 연출작이었는데 그에 대해 이것 저것 알아보니 ‘내 곁에 있어줘‘라는 영화가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궁금증이 돋아 스티리밍 사이트를 찾아보니 아직 서비스가 되지 않았지만 다행히 디비디로 출시된걸 확인하고 장바구니에 담아놨다가 서스페리아와 함께 구입해 감상했다.


킵케이스의 표지만 봤을때는 애정을 소재로 하는 일종의 로맨스 영화로 생각했는데 사랑을 말하기는 하지만 생각과 전혀 다른 영화였다. 정말 영화는 고요하고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묵직한 메세지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 영화가 주는 여운에 잠겨 잠시 인생에 대해 이것 저것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게 되더라는....


영화는 세 가지의 이야기가 맞물려 돌아가다가 하나의 축으로 연결된다. 오랜 부부생활 끝에 아내를 떠나보낸 할아버지, 아버지와 형제의 무시와 학대를 받아가며 사회에 부적응하는 경비원, 서로 사랑했지만 변심한 동성 애인에게 상처받은 소녀 그리고 청각장애와 시각장애를 동시에 겪고 있는 할머니(실제 인물인 테레사 첸)이 차례로 등장한다.


영화에 직접 출연한 테레사 첸은 14살의 나이에 눈과 귀가 멀게 되었고, 그 이후 장애를 딛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한 헬렌 켈러 같은 할머니로 에릭 투가 영화를 준비하고 있던 중 그녀의 수기를 읽고 만나서 출연을 제의한다. 이후 그녀가 영화에 어떻게 등장할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거쳐 내 곁에 있어줘라는 영화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영화의 초반부는 다소 산만한듯한 전개로 갸우뚱하며 보게 되지만 점차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고 결말에 이르러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축약되면 전달되는 감동이 상당하다. 2005년 국내 개봉 당시에도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고 하던데 그 당시 영화 냉담기였던지라 이 영화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아울러 이 영화에서는 리콴유라는 걸출한 인물을 통해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싱가포르의 어둡고 답답한 단면을 볼 수 있다. 관련된 좋은 글이 있어서 올려본다.


˝싱가포르는 1963년 영국으로부터 말레이시아연방의 구성원으로 독립한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연방으로부터 추방되듯 독립한 도시국가다. 독립 이후 싱가포르는 1991년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직 권한을 대폭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권력은 바로 행정부의 수반인 총리에게 있다. 싱가포르가 독립하기 이전인 1959년부터 독립 이후 1990년 11월까지 30년 넘게 리콴유 총리가 집권하고, 그가 물러난 이후에도 그의 아들 리센룽이 2004년 8월부터 싱가포르 3대 총리로 임명되어 한 부자의 독재적인 장기집권이 이어져오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를 오랜 기간 지배했던 리콴유는 일찍이 공산주의자들과 결별하고 사회민주주의를 자신의 정치 이념으로 표방했으나 제국주의적 성향을 지닌 인사들과 친밀하게 지내면서 제국주의적 정치 성향을 보였던 인물이다. 이러한 정치 상황으로 인해 싱가포르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억압, 자유의 억압, 빈부격차의 문제 등을 오랜 시간 겪어오고 있다.

〈내 곁에 있어줘〉는 이러한 싱가포르의 어두운 현실을 직접적인 방식으로 고발하고 있지는 않지만 통제받는 도시국가의 삭막한 일상을 담담히 담아낸다. 특히 이 영화는 경비원 청년이 살고 있는 비좁고 어두운 아파트를 그가 관리하는 으리으리한 빌딩과 대조시키고, 지저분한 공사장을 돌아다니는 레즈비언 소녀의 처지와 고급 저택에 살고 있는 그녀의 애인의 삶을 대조시키는 등 공간 대비를 통해 싱가포르가 앓고 있는 불평등 문제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아버지가 자신의 어린 아들을 마구 때리는 모습, 대화가 없는 가족의 모습, 대사가 거의 없이 침묵으로 이어지는 장면 등을 통해 싱가포르 사회에 만연한 의사소통의 부재, 관계의 단절 등을 표현하고 있다.(네이버 발췌)˝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좀더 살펴보자면,


˝[내 곁에 있어줘]는 싱가포르라는 도시국가의 화려하고 청결한 이미지 이면에 가려진 삭막한 일상과 빈부 격차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지만, 이를 단지 비판하거나 회의적인 입장에 서기보다는 막막한 현실 안에서도 마음을 나누고 관계를 맺어나가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포착하고자 한다.

어려서부터 말을 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다가 온전히 자신의 굳은 의지를 통해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기적적으로 극복한 테레사 첸에게 영감을 받아 기획된 영화인 만큼 이 영화 안에서 의사소통이 단절되는 순간들과 그것을 해소시키는 수단들은 매우 중요하게 표현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특히 글로 쓰인 텍스트는 이 영화에서 다양한 각도로 해석되어 재현되고 있다. 레즈비언 연인들은 젊은이들끼리 사용하는 축약어로 이루어진 채팅 대화와 문자 메시지들을 주고받는데 이 속에서 나타나는 글은 처음에는 다정하다가 점점 의뭉스러워지고 거짓을 전달하기 시작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없는 텍스트가 되고 만다.

하지만 이와 달리 테레사가 타자기로 쓰는 글은 속도는 다소 느릴지언정 신중하고 정확하게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이며, 영어로 쓰인 이 글을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한 아들의 번역문은 2차 텍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원문 그대로의 감동을 전한다.

이 영화가 발견하고 있는 의사소통의 또 다른 수단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음식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병으로 잃고 그녀의 유령과 함께 살며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반복하기만 하던 아버지는 테레사의 글에 감동받고 그날부터 그녀를 위해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며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아들이 대신 전달해주는 음식을 하루하루 맛볼 때마다 테레사는 매우 호탕하게 “아주 맛있어!”, “당신의 아버지는 최고의 요리사야!”라며 큰 만족을 표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버지의 음식은 단순히 음식의 맛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요리를 하기 어려운 테레사의 생활을 돕겠다는 마음과 ‘당신의 삶을 지지하고 존경한다’는 마음을 통째로 전달하는 의사소통 수단이 된다. 어느 날 사정이 생긴 아들 대신 자신을 직접 찾아온 그의 아버지를 단번에 알아채고 집 안으로 들인 테레사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한 그를 가만히 안아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사소통을 보여준다.(발췌)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이 영화를 보지 못하셨다면 한번쯤 꼭 보시기를 추천드린다. 조만간에 다시 한 번 더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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