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인생책'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이 책이다. 대학교 2학년 때, 동아리 방 서가에 꽂혀 있던 선배의 책을 읽자마자, 홍익문고에 달려가 샀던 두 권.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와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당시 내가 운영하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는 이 두 권의 책에서 배운 (혹은 흉내내고 싶었던) 정서가 가득했다. 나에게는 원점 같은 책이다. 어린 시절의 나, 학문에의 열망, 고독에의 동경, 그리고 멀리 떠나고 싶었던 욕망... 그 모든 것이 이 책에 깊이 빠져들게 만들었다. 얼마나 소중히 여러 번을 읽었는지, 이 책은 아직도 어제 산 새 책처럼 깨끗하다. 


둘 중의 하나가 없어졌다. 오랜만에 읽어 보려고 찾는데, 

서가에 항상 나란히 꽂아 두었던 두 권 중 하나가 없어졌다. 다른 데를 찾아 봤지만 실패다. 


이제 필요가 없어진 때가 된 것인가... 

오래 된 감정들도 낡은 욕망들도 버릴 때가 된 것인가... 


가슴이 좀 답답하다. 




엊저녁에 라디오에서 디킨즈의 <크리스마스 송가>를 들었다. 정말 아름답고 소박하고 그러면서도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였다.
무엇인가에 기뻐할 수 있다는 것 - 축제에, 눈에, 꽃 한 송이에...... 그 무엇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잿빛 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는 몹시도 가난하고 꿈이 메말라 버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주 쉽사리 자기의 동심을 잃어버리고 알지 못하는 사이, 한 사람의 스크루지가 되어 버린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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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노블에는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폭설보다 더 무서운 소식이 들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폭삭 무너져 내리는 일...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어디서부터 회로가 꼬였던 것인지, 물어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말이나 감정의 교류는 눈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얗게, 작고, 연약하고 빛나게 고용하게 쌓이다가 
제 무게를 스르로 버티지 못하고 폭삭, 한순간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닐까. 
한없이 따뜻하기도 하지만, 무섭게 차갑기도 한... 

그저 나도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 사람의 마음은 확인할 길이 없다. 
다시 예전 같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는 이 시집을 읽고 싶어진다.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내 주위에도 분명, 착한 사람들이 있다. 다만 날씨가 이상할 뿐이다. 




(전략)
신도 인간을 이렇게 계속 찾아다닐 것이다. 그래서 집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아프냐고 물어주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잃어버렸을 뿐 유실물 보관소의 물건들은 누구도 버린 적이 없었다.

임솔아, 「승강장」중에서

이곳으로 가면
길이 없다는 말을 들었고

인간이라는 말을 들었다.
인간은 태어나자마나 울어야 한다
는 말을 들었다.

당신들은 발가벗은 채 발목을 잡히고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매를 맞고
처음으로 이루어야만 한다.

말할 수 없는 고통들이 말해지는 동안
믿어본 적 없는 소원이 이루어진다.

고통을 축하합니다.
빨간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부른다.
「빨간」 중에서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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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 전에 쓰는 글들 - 허수경 유고집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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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7일

아직 길을 내지 못한 많은 언어가 내 속에는 있다. 그것뿐이다. 다만 나는 나이테를 완성하는 나무처럼 무의지를 배워야 한다. 수많은 인간의 길에 난 언어들을 안아야 한다.

-남들은 글을 써서 집을 짓고 부모를 공양하는데 나는 내어머니 냉방에 넣어두고 혼자 돌아다니다가 가난하고도 처량한 얼굴로 달만 바라본다. 내 잘못이다. 모두가 스스로를 기만하고 내 문학보다는 나의 입신에 더 많은 생각을 한 나의 탓이다.

page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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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 전에 쓰는 글들 - 허수경 유고집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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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2일
어쩌면 그렇다. 아무것도 온전하게 지속되는 것이 없다는 거 알며서도 지속되기를 바란다. 시오랑을 읽으며 그런 생가을 하다. 이 도저한 절망에 대한 기록은 전세기에 일어난 일이었을까? 누군가는 좋아서 미치겠다는 말을 한다. 그건 좋은 일이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이기심만큼 이 세계의 이기심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 이기심 앞에 삶을 살아가려는 욕망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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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의 지하실에 있다가 나온다. 빵을 얻기 위해서이다. 식당 문을 열고 빵 배급창구 앞에 늘어선 줄의 뒤에 가 선다. 배고픈 천사는 계속 나와 함께 있다.

나의 계획

배고픈 천사가 나를 저울에 올릴 때 나는 그의 저울을 속일 것이다.
아껴둔 빵처럼 나는 가벼워지리라.
그리고 아껴둔 빵처럼 씹기 어려워지리라.
두고 봐,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간단한 계획이지만 오래 버틸테니까.

à la page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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