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없는 세계 - 중국, 경제, 환경의 불협화음에 관한 8년의 기록
조나단 와츠 지음, 윤태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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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의 기간 동안 중국의 경제는 사상 유래 없는 엄청난 고속 성장률을 기록해왔으며, 최근 세계 여러 나라들이 겪고 있는 경기 불황에도 결코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지칠 줄 모르고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듯하다. 한때 그들을 바라보았던 서구의 시각들은 폭발적인 인구증가와 더불어 농업에 기반을 둔 기술 후진국으로 경제빈국이라는 냉혹한 시선을 던지며 그 앞날이 사실상 불투명하다고 판단했지만, 이와는 다르게 30년의 기간을 거치면서 중국은 지금 미국과 어깨를 견주며 그 어느 나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경제 강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이 이룩한 이와 같은 경제성과를 두고 전 세계는, 짧은 기간 동안 그들의 놀라운 변화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이 현재 세계최대 이산화탄소 배출국이자 엄청난 오염물질을 토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상당히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이 지금까지 행해온 여러 행태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자국의 경제성장에 마치 사활을 걸다시피 무분별한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도, 점점 심각하게 변하는 환경문제에서 만은 유독 소홀히 해왔던 점은, 결코 부정할 수만은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최근 중국은 날로 가중되는 국제적인 압력과,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쉬쉬하며 숨겨왔던 환경문제로 인해 지금껏 그들이 쌓아왔던 경제의 성과가 한순간에 물거품을 만드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음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중국의 현 후진타오 지도부는 경제성장에 목표를 두되 인간 중심의 친환경적인 노선을 펴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그러나 그들이 계획한 대로 지금의 환경문제가 앞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른다면 모르겠지만, 반대로 가시적인 노력과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중국의 문제가 곧 지구의 문제가 될 수도 있음을 우리가 깊이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극심한 환경문제로 인해 오늘날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 기후 현상들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는 저자는, 지난 5년 동안 영국의 언론 가디언의 기자로 중국에서 5년 동안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급격한 도시화를 계기로 점차 증가하는 자연의 훼손과 그에 따른 환경오염의 정도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음을 본격적으로 취재하고자, 6개월 동안 중국 전역의 돌며 오늘 중국이 안고 있는 환경 문제의 실상 내용을 이 책을 통해 상세히 밝히면서 독자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자 했다. 어느 나라가 되었건 간에 대다수 국가의 국민들은 환경문제를 이유로 자국의 경제가 성장을 멈추고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불편한 미래를 염두에 두고자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원고갈과 불안한 기후변화에 직면해 있는 오늘 우리의 입장에서, 환경오염과 자원낭비를 조장하는 국가 차원의 소비경쟁은 분명 자제되어야 할 것이며, 더불어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바람직한 환경에 만들어 가는데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은 물론, 인류가 저지른 잠깐의 실수로 인해 엄청난 대재앙을 부를 수도 있음을,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중국을 모두 4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실제 답사를 통해 각 권역의 환경실태를 이 책에 상세히 적어 놓았는데, 먼저 중국 남서부의 티베트 고원과 최근 지진으로 자연재해를 입었던 쓰촨 성과 윈난 성 일대의 취재 내용을 보면, 이곳의 자연 훼손 문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한 것과는 달리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보여 진다. 특히 티베트의 경우 원래 이곳은 넓은 초원이 발달하면서 유목민의 방목이 널리 행해졌었는데, 중국 정부가 경제개발 정책을 추진하면서 멸종 위기에 있는 동물들이 보호를 받지 못하는 등의 이곳 생태계는 엉망이 되어가고 있으며, 더구나 이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티베트 지역에 묻혀있는 광물자원의 착취와 이를 공업지대로 옮기는 수송의 과정을 돕기 위해 티베트로 들어가는 철도를 놓음으로서 자연 파괴의 정도가 한층 가속화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30여 년 만에 최악의 지진을 경험한 쓰촨 성의 경우, 중국이 전기부족을 이유로 그동안 많은 수력발전을 위한 많은 댐들이 건설되었는데, 댐을 짓고 나면 지방정부가 송전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오염물질의 배출은 물론 매연을 내뿜는 여러 공장들과 석탄광산이 주변에 들어서게 되면서 환경오염의 주원인으로 부각되는, 결국 이곳이 한때 청정지역으로 불렸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중국의 환경문제 중 우리가 또 하나 눈여겨 볼만한 것은, 중국 북서부의 토지 오염의 문제인데, 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가 우려한 것처럼 중국은 토지에 비해 인구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이곳의 일부인 허난 성은 중국 문명의 요람이라고 불릴 만큼 자연환경이 좋고 문화수준이 높았지만, 1950년대 이후부터 인구가 몰리기 시작하면서 중국에서 현재 가장 인구 압박이 심한 지역으로 바뀌었다. 작은 땅에도 불구하고 인구 1억을 초과하는 이곳은, 농업을 기반으로 한 생활수준이 타 지역에 비해 심한 불균형을 이루게 되자,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이를 타파하기 위해 공해를 심하게 유발하는 가죽, 화학, 제지 공장들을 과도하게 유치해왔다. 이런 결과로 오늘날 이곳은 생활수준은 이전보다 비록 높아지긴 했지만, 이들 공장에서 배출되는 폐수로 인해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고, 2007년 조사 결과 이곳의 암사망자수가 과거에 비해 두 배 이상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주시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국제기구는 중국에서 한해 75만 명이 환경오염으로 죽어간다는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인정치 않고 계속 무시해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지금도 여전히 암으로 고통 받는 이가 비일비재 하다는 점에서 단순하게 간과하고 넘어갈 일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최근 30여 년 사이에 중국의 인구는 계속 급증했고 그 결과 현재 14억에 가까운 수치를 보이고 있다. 물론 그들의 경제도 미국과 어깨를 견줄 만큼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중국의 모든 인구가 동시에 뛴다면 지구가 요동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미치는 영향은 이제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일이 되었고, 세계 각국 저마다 중국의 향후 일정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 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중국이 오늘날 거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무분별한 경제개발을 논리를 펼치면서 환경오염과 소비문화의 병폐 현상들을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그들의 경제개발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들이 서구의 전철을 그대로 밟으면서 지구의 환경문제에 가장 큰 주범이 되고 있다는 점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입장에서 심히 우려스런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동안 환경문제에 관하여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여타 선진국들이 해결하지 못한 그 원인이 다원화된 그들의 정치 사회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중국은 이와는 다른 이념을 추구하고 있는 나라로서 중국 지도자들의 마음만 먹으면 그들이 안고 있는 환경문제의 원인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번 취재로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고 무척 아쉬워하는듯하다. 결국 저자는 결론적으로 지구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계인의 가치관이 우선하여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행해졌던 인간의 욕망에 근거한 과도한 소비행태를 줄이고, 국제사회가 힘을 합해 인류가 그동안 자연을 거스르고 저질렀던 많은 과오에 대해, 이제 바로잡기를 호소하는 그의 노력에 이제는 우리가 실천의 답을 내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지금 전 세계가 환경보호에 관한 새로운 인식들이 점점 중요한 요소로 자리를 잡아가는 가운데에서도, 이와는 방향이 전혀 다른 요즘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주도로 펼쳐지고 있는 4대강 사업의 문제는 국민의 입장에서 정말 아이러니한 일로 생각 된다. 따라서 경제성장도 좋지만 향후 생길 수 있는 환경문제를 고려하여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다양한 논의를 거친 후에,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4대강 사업은 분명 재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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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비얀 빌딩 을유세계문학전집 43
알라 알아스와니 지음, 김능우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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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튀니지에서 촉발된 국민혁명이 이웃나라인 이집트로 번지면서 30년 넘게 집권해오던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이 결국 무너졌다. 이러한 결과가 과연 민주화를 갈망하는 국민적 차원에서의 일어난 자발적인 민중봉기였는지는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겉으로 드러난 원인으로는 그동안 자국 내의 심각한 경제난과 실업 그리고 가파르게 치솟는 물가인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과연 이러한 단순한 이유만으로 그러한 거대한 국민적 봉기가 성사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는 않는다. 통상적으로 지나온 역사의 과정으로 볼 때, 대개 민중봉기가 극심하게 일어나는 경우는 독재 권력과 관료주의에 따른 극심한 부패가 횡행하며,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구태의연한 악습과 악법이 기득권층과 결탁하면서 이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일반 국민들의 삶이 현격하게 침해받는 경우, 이것이 어느 한 순간 국민적공감대를 폭넓게 형성하면서 성난 불길처럼 타오르듯 발발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 작품은 그러한 맥락에서 생각했을 때 요즈음 이집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민혁명을 미리 예고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집트의 어느 문학가에 의해 자국의 부패한 경제현실을 냉정한 시각으로 이를 바라보고 비판하고자 하지 않았나 싶고, 아무리 오랜 전통적인 관습에 기인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특정부류에게 지극히 불합리하게 적용되는 과거 인습의 틀에 대해, 오늘날 국제시각의 따가운 눈초리에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것을 고발함으로서, 국가의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인 자유와 그리고 평등을 기치를 내세운 사회성이 짙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책이 출간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랍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여러 부조리한 실상들을 이 책에서의 내용처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이를 날카롭게 드러낸 문학적 작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 책에 나타난 일부의 내용을 가지고 마치 그 사회가 전체적으로 그런 것처럼 일반화시키는 인식을 가져서는 안 되겠지만, 오늘 우리의 사회문제와 비교하여 여러 가지 눈여겨 볼만한 점이 있는데다가, 더불어 아랍사회의 아이러니 같은 생활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한번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볼만 하다는 생각이다.

소설 속 시간적인 배경으로는 1990년대이며 그리고 공간적인 배경은 이집트 카이로 시내에 자리 잡은 야쿠비얀 이라고 불리는 빌딩이다. 이 건물은 건축 될 당시 고전적 유럽풍의 거대한 10층 건물로 아름답게 지어졌으며, 당시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권력과 엄청난 부를 지닌 일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1952년 군부혁명이 일어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지금은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에게 임대되어 지금에 이른다. 그런데 이 건물은 조금 특이한 점이 있는데 바로 옥상이다. 옥상은 호화스럽게 지어진 건물 내부와는 달리 독립적인 형태로 되어 있으면서 폭과 길이가 2미터도 채 되지 않는 50개의 작은 방들이 촘촘히 만들어져 있으며,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로 임대되어 사용되고 있다. 즉 하나의 건물 안에 돈 있는 사람들과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구성되어 있는 건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미국 뉴욕의 할렘가나 우리나라의 경우 예전 강남 아파트촌이 한창 개발되었을 때에, 같은 지역 안에 이미 일부 초라하고 허름한 무허가 건물 안에 가난한 모여 살았던 것처럼 부자와 반대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한곳에 공존했던, 얼핏 생각하기에 일종의 부조화의 모습이 연상된다고나 할까 싶기도 하다.

작품 속 이야기는 이 건물에 거주하는 여러 계층의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그들의 다양한 생활상들이 펼쳐지는데, 그 이면에 이집트 사회의 부조리한 면과 어두운 부분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 점을 언급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자키베는 한때 귀족이었으면서 60대의 노인으로 이 건물에 자신의 사무실을 가지고 있지만 이슬람 교리에 맞는 생활을 거부하고 여성편력적인 삶을 살아가며, 그의 사무실에서 하인 노릇을 하는 아바스는 겉으로는 자신의 약한 면을 보이며 굴종적인 척하지만 자신의 동생과 함께 주인 몰래 돈을 빼돌리는 등의 영악한 삶을 영위한다. 한편 건물 옥상에 거주하는 부사이나라는 여성은 타하라는 남자친구와 사랑에 빠지면서 아름다운 사랑과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기를 갈구하지만, 부친이 사망한 후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가난을 면하기 위해 자신의 성을 팔게 되고, 남자친구 타하는 우수한 성적을 받고도 그의 아버지의 직업이 단지 문지기라는 이유로 경찰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게 되면서 사회적 차별과 냉대에 환멸을 느끼고 이슬람 무장 단체에 가입하면서 이들의 사랑은 무참히 깨지고 만다. 또한 구두닦이로 시작해 마약거래를 하며 어느 날 졸부가 된 핫잠이라는 인물은 겉으로는 인자한 무슬림으로 행세하지만 돈으로 첩을 두고 심지어 국회의원의 자리를 돈으로 매수하는 등의 일을 일삼으며, 하팀이라는 친구는 신문사 편집장을 하며 부유한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동성애에 빠져 밤이면 이곳저곳 상대를 물색 하러 다니는 등 낮과 밤이 다른 삶을 살아간다.

작가는 소설에서 이집트 사회를 구성하는 대표성을 띤 여러 등장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서 그들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오늘의 이집트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들추어보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 상층부의 사람들 중 일부는 자신의 부를 이용해 권력을 사거나 반대로 자신의 권력을 빙자하여 관료자리를 돈을 받고 파는 부패한 정부 관료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고, 한편으로 국가에 불만을 가진 자들을 끌어들여 알라 신의 부름이라며 종교로 가장하여 반정부 행동을 꾀하는 급진주의자들의 이중적인 행동과 그리고 사회 차별로 인해 신분의 상승이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하층민의 경우 가난을 모면하기 위해 남의 첩이되거나 자신의 성을 팔아 돈을 벌어야 하는, 혹은 같은 서민끼리 속고 속이며 돈을 갈취하는 등의 야쿠비얀이라는 빌딩을 매개체로 사회 부조리한 면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특히 이러한 사회의 불합리한 모습이 오랜 악습과 악법 그리고 기득권층들 욕구가 서로 맞물리면서 마치 당연한 것처럼 은연 중 널리 인식되어 있다는 점이 독자의 입장에서 눈에 두드러진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에서 일부는 우리의 지나간 과거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일부는 현재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해서 한편으로 씁쓸한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정치와 경제적으로 민주화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오늘날 지금의 그들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다소 나은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러나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힘들었던 과거의 사실을 잊고 행여 우리가 민주시민으로 깨어있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그들의 현실이 머지않아 바로 우리의 현실이 되지 않을 거라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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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글린 지음, 이은선 옮김 / 스크린셀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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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 인간은 자기 뇌의 10%도 못쓰고 죽는다고 한다. 뇌를 연구하는 여러 과학자들에 의하면 이 말은 사실과는 다른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하지만,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빌린다 해도 뇌가 지닌 무한한 잠재적인 능력을 우리가 모두 발휘하고 있다고 쉽게 단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가 인간 두뇌의 연구에 있어 놀라운 진전을 보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 두뇌의 실체에 대해 이렇다 할 정도의 획기적인 성과에 우리가 아직 도달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현재까지도 뇌가 가진 신비로운 부분은 여전히 상당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사실에서 그렇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의 두뇌가 지닌 잠재적인 기능을 충분히 활용해 지금에 이르렀다면, 오늘날 우리가 이룬 모든 기술의 집약적 상태의 정도는 가히 상상 이상이 아닐까 싶고, 지금 현실의 상황과는 여러 가지 점에서 사뭇 다른 양상을 띠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획기적인 기술의 개발을 이루고 이를 응용하여 인간의 두뇌 활용능력을 최대치로 나타나게 하는 새로운 신약을 어느 날 만들었다고 가정했을 때, 이 약을 복용한 후 나타날 수 있는 현실의 일면을 스릴러적인 요소를 가미시켜 흥미롭게 다룬 SF소설이다. 소재의 유형으로 놓고 본다면 우리에게는 다소 독특하고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 소설의 이야기는, 원작을 바탕으로 현재 영화화 되어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어서 독자들의 관심과 눈길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간혹 현실과는 거리가 먼 슈퍼맨과 같은 초능력을 보유한 인간이 되고픈 욕망을 꿈꾸기도 한다. 어떤 이는 그런 꿈을 통해 악을 물리치고 영웅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었으면 할 것이고, 또한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고자 했지만 아직 이루지 못했던 개인적 소망을 실현시키고 싶을 것이다. 이 소설은 우리가 한번쯤 상상으로 접했을 법한 소재를 흥미롭게 다루어 독자들이 마치 주인공이 되어 대리만족감을 느끼게 함은 물론,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속에 현실과 괴리된 인간의 고뇌적인 모습을 다각도로 살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읽어 볼만 책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 에디는 뉴욕의 한 모퉁이 초라한 아파트에 거주하며 어느 출판사의 이름 없는 작가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한마디로 돈 없고 능력도 별로인 친구다. 그는 어느 날 우연하게 자신의 전처의 오빠였던 버넌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의 처남은 한때 마약을 거래했었고 그런 이유로 그도 마약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결코 좋지 않은 쓰라린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1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우연한 만남을 하게 되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그는 처남에게서 마약과는 전혀 성질이 다르다며 먹어보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의문스런 이야기와 함께 생소한 알약하나를 건네받는다. 그는 지난 과거 시절 마약으로 인해 피폐된 자신을 생각하며 한사코 거부했지만, 미국 식약청으로부터 허가된 약이며 임상시험을 거쳐 곧 시중에 판매될 약이라는 말에 현혹돼 복용을 하고 만다. 불과 30분도 지나지 않아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한 이 약은, 자신이 출판사로부터 제의 받은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데 예전 같으면 일주일 걸릴 정도의 분량임에도 불과 수 분만에 해결해주었으며, 이뿐만 아니라 아무리 어려운 책의 내용이라도 쉽게 이해하는 것은 물론 또렷하게 기억하게 해주는 놀라운 효능에 그는 황홀함을 금치 못한다. 엄청난 효과를 알게 된 그는 다음날 이 약을 더 구하기 위해 자신의 처남을 만나러 갔다가 그곳에서 자신의 처남이 누군가에게 피살당하고 이를 계기로 많은 양의 알약을 손에 쥐게 된다. 이후 자신의 정신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주는 이 약의 효능을 발판으로 그는 주식투자에서 성공을 거두기도 하고 거대기업의 인수 합병에도 관여하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이 알약 속에는 그가 몰랐던 치명적인 부작용이 숨어 있었고, 주인공 에디가 이를 뒤늦게 깨닫게 되면서 이야기는 점점 독자들이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급박하게 흐른다.

작품이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가 현실의 상황과는 사뭇 다르나, 누구라도 이런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비록 이야기의 끝이 허무하게 끝날망정 으레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한 약간의 상상적 여지를 남겨두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 책이 흥미롭게 여겨지는 것은 그런 일말의 희박한 가능성을 두고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것 인양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함으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일종의 묘한 카다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다. 사실 소재는 다를지언정 어느 날 남들이 할 수 없는 자신만의 놀라운 마법과 같은 능력을 얻음으로 해서 좌충우돌하는 소동을 벌이는 가운데, 대개 해피엔딩으로 종결되는 이와 같은 부류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여러 작품들이 예전에 더러 등장하긴 했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런 소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질리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이야기 속 주인공의 행위를 통해 우리가 대리만족의 기분을 맘껏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의 이야기를 두고 일부에서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이어서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사실 미래의 일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은 것은 것이어서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함부로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이 책 주인공의 발자취를 더듬어 독자의 입장에서라면 과연 작품 속 향방의 결과가 어디로 향해 질주했으면 하는지, 그리고 이런 희귀한 약이 존재하여 자신이 복용할 기회가 우연하게 주어진다면 과연 당신은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이며 어떤 일을 먼저 해보고 싶은지 상상으로나마 생각해보면서, 답답한 오늘의 현실에서 스트레스 해소의 방편으로 삼아 잠시나마 즐겨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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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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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돈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에 따라 범죄자 처벌에 대한 형평성이 논란의 문제가 된다면 정의와 평등을 부르짖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를 용인할 사람은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이런 문제들이 종종 인구에 회자된다는 것은 참으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법정스릴러물의 전형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짜임새 있는 이야기의 구성과 전개를 통해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그리고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엮어감으로서 독자들의 눈길을 한 순간 사로잡게 만들고 있어서, 개인적인 입장에서 상당한 걸작으로 평가하고 싶을 만큼 빼어난 소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생각한다면, 결과적으로 선과 악이라는 치열한 대결 구도로 몰아간다는 점에서 극히 상투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해도 대중성을 고려한 차원에서 볼 때 이는 부차적인 문제로 보아도 될 듯싶다. 이작품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최근 극장가에서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어서, 과연 영상으로 이 작품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지 궁금함이 없진 않지만, 원작에서 저자가 의도하는 바를 상당부분 압축하여 화면으로 최대한 매끄럽고 만족스럽게 다루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우려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어찌됐든 이 작품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만한 것은, 독자들에게 더러는 느슨하게 더러는 팽팽하게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하는 작품 속 두 인물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나타나는 두뇌 싸움과 심리적인 묘사의 부분에서 짜릿한 흥분과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과는 별도로, 우리가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법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법의 정의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할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 깊은 관심과 의식을 가지고 접근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작품 속 주인공 미키 할러는 수년간 범죄 소굴에서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활보하는 많은 범죄자들의 의뢰들을 변호해 오면서, 범죄와 관련하여 법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행태들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그래서 법이 추구하는 정의의 목적과는 상관없는 그야말로 속물적인 변호사다. 그가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의뢰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은 무죄라고 항변하지만, 그동안 사건의 진위들을 살펴보면서 지금까지 그가 내린 결론은 그들의 말이 결코 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돈이 되는 변호라면 자신의 의뢰인이 마약에 찌든 범죄자였든, 폭력배의 무리가 되었든 간에 전혀 개의치 않고 기소된 사건을 대해 검사들의 기소 내용에 허점을 노려 범죄자의 형량을 줄이거나 집행유예와 같은 방법을 통해 보수를 챙기는 것으로 만족한다. 하지만 한편 그의 의식의 내면에는 이러한 의뢰인들 중에, 자신의 그릇된 판단으로 정말 무고를 당한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정신적인 압박감이 은연중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어느 날 친구로부터 엄청난 보수를 보장하는 하나의 사건을 의뢰받는다. 자신에게 변호를 의뢰한 당사자는 할리우드의 거대한 부동산 재벌가의 아들인 루이스 룰레라는 청년인데, 그는 겉보기에 무척 순진한 얼굴을 가진 부잣집 도련님으로 한 여자를 강간하려다 살인 미수와 폭행혐의로 사건현장에서 현행범으로 붙잡힌다. 그러나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자신의 돈을 노리는 사기 범죄 집단에 의한 함정에 걸려든 것이며 이번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오히려 억울함을 호소한다. 이후 할러 변호사는 사건을 조사하던 중 자신의 의뢰인이 무고 혐의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에 확신을 가지게 되지만, 그와는 별개로 자신이 한때 맡았던 살인 사건에 그가 직접적인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부당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자신의 의뢰인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면서부터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치밀한 두뇌 싸움이 시작 된다.

이 작품은 돈이 된다면 그것이 살인이든 마약이든 뛰어들었던 할러 변호사가 새로운 의뢰인을 만나면서 자신의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과, 법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자신의 지나간 과거를 덮으려는 악랄한 의뢰인 간에 펼쳐지는 일련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져 있어,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충분한 재미와 스릴을 안겨다 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고 봐야 할 것은 할러 변호사와 그의 의뢰인 룰레라는 캐릭터의 변화 과정에 있다. 즉 할러변호사는 부를 상징하는 링컨차를 몰며 애초 법의 정의와는 거리가 먼, 단지 돈을 밝히는 기회주의적인 인물로 등장하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자신의 의뢰인으로 인해 돌연 선을 대변하는 역할로 바뀌게 되고, 반대로 룰레는 부잣집 아들로 순한 모습으로 억울하게 무고를 당하는 선한 인물로 나오다가, 자신의 추악한 과거가 할러에 의해 밝혀지자 이를 감추기 위해 할러를 위험에 빠트리고 심지어 제거하려는 치밀한 계략을 세워 이를 행동에 옮기는 악의화신으로 변하면서, 이들이 벌이는 숨 막히는 대결과 이를 뒷받침하는 반전과 반전의 연속이 바로 흥분과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그 핵심적인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화려한 액션이나 트릭적인 부분이 없고 게다가 그 내용이 법정 드라마의 심리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어, 선입관적인 생각으로 다소 따분하고 딱딱하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독자들이 막상 이 작품을 읽다보면 그런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묘미의 즐거움을 충분히 맛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이 작품의 내용과 관련하여,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법이 주장하는 정의와 평등이라는 말이 실제현실과 어떻게 괴리되어 가고 있는지도 아마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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