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비얀 빌딩 을유세계문학전집 43
알라 알아스와니 지음, 김능우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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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튀니지에서 촉발된 국민혁명이 이웃나라인 이집트로 번지면서 30년 넘게 집권해오던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이 결국 무너졌다. 이러한 결과가 과연 민주화를 갈망하는 국민적 차원에서의 일어난 자발적인 민중봉기였는지는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겉으로 드러난 원인으로는 그동안 자국 내의 심각한 경제난과 실업 그리고 가파르게 치솟는 물가인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과연 이러한 단순한 이유만으로 그러한 거대한 국민적 봉기가 성사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는 않는다. 통상적으로 지나온 역사의 과정으로 볼 때, 대개 민중봉기가 극심하게 일어나는 경우는 독재 권력과 관료주의에 따른 극심한 부패가 횡행하며,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구태의연한 악습과 악법이 기득권층과 결탁하면서 이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일반 국민들의 삶이 현격하게 침해받는 경우, 이것이 어느 한 순간 국민적공감대를 폭넓게 형성하면서 성난 불길처럼 타오르듯 발발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 작품은 그러한 맥락에서 생각했을 때 요즈음 이집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민혁명을 미리 예고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집트의 어느 문학가에 의해 자국의 부패한 경제현실을 냉정한 시각으로 이를 바라보고 비판하고자 하지 않았나 싶고, 아무리 오랜 전통적인 관습에 기인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특정부류에게 지극히 불합리하게 적용되는 과거 인습의 틀에 대해, 오늘날 국제시각의 따가운 눈초리에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것을 고발함으로서, 국가의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인 자유와 그리고 평등을 기치를 내세운 사회성이 짙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책이 출간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랍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여러 부조리한 실상들을 이 책에서의 내용처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이를 날카롭게 드러낸 문학적 작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 책에 나타난 일부의 내용을 가지고 마치 그 사회가 전체적으로 그런 것처럼 일반화시키는 인식을 가져서는 안 되겠지만, 오늘 우리의 사회문제와 비교하여 여러 가지 눈여겨 볼만한 점이 있는데다가, 더불어 아랍사회의 아이러니 같은 생활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한번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볼만 하다는 생각이다.

소설 속 시간적인 배경으로는 1990년대이며 그리고 공간적인 배경은 이집트 카이로 시내에 자리 잡은 야쿠비얀 이라고 불리는 빌딩이다. 이 건물은 건축 될 당시 고전적 유럽풍의 거대한 10층 건물로 아름답게 지어졌으며, 당시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권력과 엄청난 부를 지닌 일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1952년 군부혁명이 일어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지금은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에게 임대되어 지금에 이른다. 그런데 이 건물은 조금 특이한 점이 있는데 바로 옥상이다. 옥상은 호화스럽게 지어진 건물 내부와는 달리 독립적인 형태로 되어 있으면서 폭과 길이가 2미터도 채 되지 않는 50개의 작은 방들이 촘촘히 만들어져 있으며,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로 임대되어 사용되고 있다. 즉 하나의 건물 안에 돈 있는 사람들과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구성되어 있는 건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미국 뉴욕의 할렘가나 우리나라의 경우 예전 강남 아파트촌이 한창 개발되었을 때에, 같은 지역 안에 이미 일부 초라하고 허름한 무허가 건물 안에 가난한 모여 살았던 것처럼 부자와 반대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한곳에 공존했던, 얼핏 생각하기에 일종의 부조화의 모습이 연상된다고나 할까 싶기도 하다.

작품 속 이야기는 이 건물에 거주하는 여러 계층의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그들의 다양한 생활상들이 펼쳐지는데, 그 이면에 이집트 사회의 부조리한 면과 어두운 부분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 점을 언급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자키베는 한때 귀족이었으면서 60대의 노인으로 이 건물에 자신의 사무실을 가지고 있지만 이슬람 교리에 맞는 생활을 거부하고 여성편력적인 삶을 살아가며, 그의 사무실에서 하인 노릇을 하는 아바스는 겉으로는 자신의 약한 면을 보이며 굴종적인 척하지만 자신의 동생과 함께 주인 몰래 돈을 빼돌리는 등의 영악한 삶을 영위한다. 한편 건물 옥상에 거주하는 부사이나라는 여성은 타하라는 남자친구와 사랑에 빠지면서 아름다운 사랑과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기를 갈구하지만, 부친이 사망한 후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가난을 면하기 위해 자신의 성을 팔게 되고, 남자친구 타하는 우수한 성적을 받고도 그의 아버지의 직업이 단지 문지기라는 이유로 경찰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게 되면서 사회적 차별과 냉대에 환멸을 느끼고 이슬람 무장 단체에 가입하면서 이들의 사랑은 무참히 깨지고 만다. 또한 구두닦이로 시작해 마약거래를 하며 어느 날 졸부가 된 핫잠이라는 인물은 겉으로는 인자한 무슬림으로 행세하지만 돈으로 첩을 두고 심지어 국회의원의 자리를 돈으로 매수하는 등의 일을 일삼으며, 하팀이라는 친구는 신문사 편집장을 하며 부유한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동성애에 빠져 밤이면 이곳저곳 상대를 물색 하러 다니는 등 낮과 밤이 다른 삶을 살아간다.

작가는 소설에서 이집트 사회를 구성하는 대표성을 띤 여러 등장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서 그들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오늘의 이집트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들추어보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 상층부의 사람들 중 일부는 자신의 부를 이용해 권력을 사거나 반대로 자신의 권력을 빙자하여 관료자리를 돈을 받고 파는 부패한 정부 관료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고, 한편으로 국가에 불만을 가진 자들을 끌어들여 알라 신의 부름이라며 종교로 가장하여 반정부 행동을 꾀하는 급진주의자들의 이중적인 행동과 그리고 사회 차별로 인해 신분의 상승이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하층민의 경우 가난을 모면하기 위해 남의 첩이되거나 자신의 성을 팔아 돈을 벌어야 하는, 혹은 같은 서민끼리 속고 속이며 돈을 갈취하는 등의 야쿠비얀이라는 빌딩을 매개체로 사회 부조리한 면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특히 이러한 사회의 불합리한 모습이 오랜 악습과 악법 그리고 기득권층들 욕구가 서로 맞물리면서 마치 당연한 것처럼 은연 중 널리 인식되어 있다는 점이 독자의 입장에서 눈에 두드러진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에서 일부는 우리의 지나간 과거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일부는 현재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해서 한편으로 씁쓸한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정치와 경제적으로 민주화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오늘날 지금의 그들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다소 나은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러나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힘들었던 과거의 사실을 잊고 행여 우리가 민주시민으로 깨어있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그들의 현실이 머지않아 바로 우리의 현실이 되지 않을 거라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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