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돈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에 따라 범죄자 처벌에 대한 형평성이 논란의 문제가 된다면 정의와 평등을 부르짖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를 용인할 사람은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이런 문제들이 종종 인구에 회자된다는 것은 참으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법정스릴러물의 전형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짜임새 있는 이야기의 구성과 전개를 통해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그리고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엮어감으로서 독자들의 눈길을 한 순간 사로잡게 만들고 있어서, 개인적인 입장에서 상당한 걸작으로 평가하고 싶을 만큼 빼어난 소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생각한다면, 결과적으로 선과 악이라는 치열한 대결 구도로 몰아간다는 점에서 극히 상투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해도 대중성을 고려한 차원에서 볼 때 이는 부차적인 문제로 보아도 될 듯싶다. 이작품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최근 극장가에서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어서, 과연 영상으로 이 작품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지 궁금함이 없진 않지만, 원작에서 저자가 의도하는 바를 상당부분 압축하여 화면으로 최대한 매끄럽고 만족스럽게 다루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우려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어찌됐든 이 작품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만한 것은, 독자들에게 더러는 느슨하게 더러는 팽팽하게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하는 작품 속 두 인물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나타나는 두뇌 싸움과 심리적인 묘사의 부분에서 짜릿한 흥분과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과는 별도로, 우리가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법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법의 정의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할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 깊은 관심과 의식을 가지고 접근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작품 속 주인공 미키 할러는 수년간 범죄 소굴에서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활보하는 많은 범죄자들의 의뢰들을 변호해 오면서, 범죄와 관련하여 법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행태들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그래서 법이 추구하는 정의의 목적과는 상관없는 그야말로 속물적인 변호사다. 그가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의뢰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은 무죄라고 항변하지만, 그동안 사건의 진위들을 살펴보면서 지금까지 그가 내린 결론은 그들의 말이 결코 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돈이 되는 변호라면 자신의 의뢰인이 마약에 찌든 범죄자였든, 폭력배의 무리가 되었든 간에 전혀 개의치 않고 기소된 사건을 대해 검사들의 기소 내용에 허점을 노려 범죄자의 형량을 줄이거나 집행유예와 같은 방법을 통해 보수를 챙기는 것으로 만족한다. 하지만 한편 그의 의식의 내면에는 이러한 의뢰인들 중에, 자신의 그릇된 판단으로 정말 무고를 당한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정신적인 압박감이 은연중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어느 날 친구로부터 엄청난 보수를 보장하는 하나의 사건을 의뢰받는다. 자신에게 변호를 의뢰한 당사자는 할리우드의 거대한 부동산 재벌가의 아들인 루이스 룰레라는 청년인데, 그는 겉보기에 무척 순진한 얼굴을 가진 부잣집 도련님으로 한 여자를 강간하려다 살인 미수와 폭행혐의로 사건현장에서 현행범으로 붙잡힌다. 그러나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자신의 돈을 노리는 사기 범죄 집단에 의한 함정에 걸려든 것이며 이번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오히려 억울함을 호소한다. 이후 할러 변호사는 사건을 조사하던 중 자신의 의뢰인이 무고 혐의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에 확신을 가지게 되지만, 그와는 별개로 자신이 한때 맡았던 살인 사건에 그가 직접적인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부당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자신의 의뢰인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면서부터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치밀한 두뇌 싸움이 시작 된다.

이 작품은 돈이 된다면 그것이 살인이든 마약이든 뛰어들었던 할러 변호사가 새로운 의뢰인을 만나면서 자신의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과, 법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자신의 지나간 과거를 덮으려는 악랄한 의뢰인 간에 펼쳐지는 일련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져 있어,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충분한 재미와 스릴을 안겨다 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고 봐야 할 것은 할러 변호사와 그의 의뢰인 룰레라는 캐릭터의 변화 과정에 있다. 즉 할러변호사는 부를 상징하는 링컨차를 몰며 애초 법의 정의와는 거리가 먼, 단지 돈을 밝히는 기회주의적인 인물로 등장하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자신의 의뢰인으로 인해 돌연 선을 대변하는 역할로 바뀌게 되고, 반대로 룰레는 부잣집 아들로 순한 모습으로 억울하게 무고를 당하는 선한 인물로 나오다가, 자신의 추악한 과거가 할러에 의해 밝혀지자 이를 감추기 위해 할러를 위험에 빠트리고 심지어 제거하려는 치밀한 계략을 세워 이를 행동에 옮기는 악의화신으로 변하면서, 이들이 벌이는 숨 막히는 대결과 이를 뒷받침하는 반전과 반전의 연속이 바로 흥분과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그 핵심적인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화려한 액션이나 트릭적인 부분이 없고 게다가 그 내용이 법정 드라마의 심리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어, 선입관적인 생각으로 다소 따분하고 딱딱하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독자들이 막상 이 작품을 읽다보면 그런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묘미의 즐거움을 충분히 맛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이 작품의 내용과 관련하여,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법이 주장하는 정의와 평등이라는 말이 실제현실과 어떻게 괴리되어 가고 있는지도 아마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