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결코 사이에사람에 관련된아름다운 기억이 있다.생각보다 질겨서 끊어지지않는 다시마 줄거리같은그런 푸릇한 기억만 간직한다친한 지기들에게 2016 1.1일 보낸 내 문자 메시지를우스꽝스럽게도 여기 다시 올린다.세모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나는 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해봅니다 신영복-
새해가 거져왔다 살아남는 건 공짜, 고통은 셀프서비스같은 시간들 그냥 간다이쉬워 한 귀퉁이 글 찾아본다.세모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나는 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해봅니다 신영복-씩씩하게 살기 힘들어지고스스로 뉘우치기는 더 힘든 나이다.칼로 어깨를 내려 잘라내듯이모든 것을 내려놓라고 일갈하는 이 무식에 대항해보자면모든 것이 남의 손에 있는데뭘 내려놓는단 말이냐용기도 없고기억은 더 고통스럽고존버 ㅡ이 단어 친숙한 미국놈같이 다가온다 ㅡ늘 존나버텨라는 구호도 오늘 하루는 흐릿하게 데칼코마니로 치장하고픈 날이다.벌써 누군가는 로또를 샀다고 하고누군가는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나는 여기에 먼지 얹어놓는다.아무것도 못버린 굴욕자로서아무것도 기억하는 용기도 없는 자에게이정도면 그만그만하다
닌 일본을 잘 모르고 알 필요도 없고 (그 생각은 유홍준의 답사기 3 권예서 완전 깨졌다) 싫다고만 생각했다. 사람이 아니라 정치조직에 대해서 말이다. 게다가 하루끼나 그 쪽의 사소설 편향의 그 주절거림이 내 체질엔 맞지 않다. 근데 잠잠히 한국의 위치에 대해 영향사의 방향에서 고민했다.그건 고문에 다름 아니다.고민 밑둥에는 식민지 피경험자의 굴욕감이 그림자로 따라다녔음은 물론이다.내가 때를 벗기는 것내가 깨달음을 얻는 것내가 패배의식의 가장자리에서 그 자기장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그 애씀도 모두 그 열등감이다 인정할 부분은 나보다 일본이 더 많지만 일본에 대해 더 객관적일 필요에 의해 오에 겐자부로를 읽는다. 그는 상처를 후벼 파는 것도대일밴드로 숨기는 것도 안할 사람으로 보인다오래전 이호철 소설가에게 번역되어 봤던 중앙일보사 번역의 <성적인간> 의 오에는 놀랍도록 고루했지만 다른 젊은 번역자에게 투과된 오에는 생생하고 옆자리의 거친 숨결과 침튀는 오에로 왔다다시 카프카와 까뮈와 마르게스의 혈색이 돌아온다. 피의 온도. 자식과 장애, 생명의 생기와 생채기 또 폐기처리 등등은 소설의 골격을 구성한다. 그 골격이 대가 답지만 지나친 비유들이 남발하는 문장은 그 나라의 유행인지 문학적 조미료인지 진지한 대상에 대한 환기력인지 알바없지만 읽는 내내 겹질리는 장소들이였다. 일본 근대 소설들은 담백하더구만 현대소설은 내겐 좀 거시기하다성진국의 그 노골적인 과대포장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생활과 완전 괴리된 건 포르노 말고도 더 많다는 얘긴데더 웃기는 건 정치 지도자들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