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고료도 주지 않는 잡지에 시를 주면서

              정신이 밥 먹여주는 세상을 꿈꾸면서

              아직도 빛나는 건 별과 시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제 숟가락으로 제 생을 파먹으면서

              발 빠른 세상에서 게으름과 느림을 찬양하면서

              냉정한 시에게 순정을 바치면서 운명을 걸면서

              아무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면서

              새소리를 듣다가도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고 책

              상을 치면서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시적인 삶에 대해 쓰고 있는 동안

              어느 시인처럼 나도 무지하게 땀이 났다

 

              * 연암 박지원의 글 [답경지(答京之]에서.

 

 

                                        

 -천양희, <너무 많은 입>중에서-

 

 

 

 오늘 천양희(千良姬)詩人의 이 詩集이 내게로 왔다. 시집 몇 장을 넘기다 이 시가 눈에 들어 오다. 문득, 읽기를 멈추고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성일씨처럼 책을 읽기前 손을 씻지는 못해도 이문재詩人의 말씀처럼 척추를 곧게 세우고 읽어야 할 것 같아서. 房을 깨끗히 청소를 하고 주변을 고요하게 잠재운 뒤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첫 詩로 나오는 -구르는 돌은 둥글다- 중, '모서리가 없는 것들이 나는 무섭다 이리저리/구르는 것들이 더 무섭다'에 마음이 박히다. -마음의 달-,  -물결무늬고둥-, -너무 많은 입-, -산에 대한 생각-, -썩은 풀-, -뒷길-, -수락시편-, 等等..시인의 詩들를 읽으며 질팍했던 정신을 추스린다. 얇고 가볍고 분주한 世間을 걸어가다가. < 내 인생의 절밥 한 그릇>을 읽으며 공선옥님의 글과 더불어 시인의 글이 깊어서 인상깊었었는데 오늘 이 시집을 읽으니 더욱 충만하다. 1942년生으로 올해로 등단 47년을 맞은 천양희(千良姬)詩人. 시집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시인의 말'로 시인의 詩에 대한 소감을 대신한다.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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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배 스무배로 키운 것도 저들이다

         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가장 오래 세찬 바람 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 것도

         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

         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

         그나마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저들을

         기억하는 손에 의해 겨울을 나다가

         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도 바닥나고 취향도 곤궁해졌을 때

         잠시 옛날을 기억하게 할 짧은 허기를 메꾸기 위해

         서리에 맞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

 

 

                                                        -<시래기>- 도종환.

 

 

 

 

B에게.

 

 

 

 저녁으로, 무화과브래드에 딸기크림치즈를 잔뜩 발라 먹고..또..카스테라가루가 어찌나 탐스럽게 뿌려졌는지, 풍만한 자태을 뽐내고 있던 케익도넛을 또 하나 먹어 주고..그리고 자기만 빼놓으면 괜히 서운해 할까봐 '예의상', 하나 남은 생크림이 바삭한 파이에 잘 숨겨져 있는 '초코쇼콜라'까지 마저 먹고 헤즐럿커피를 머그컵 가득 뜨겁게 담아 마시고 있는..거의 '식신(食神)'의 경지에 올라..이 겨울 이후 부쩍 심하게 몸이 난 스스로에 대한 민망함을 ...(흐흑)

 

 세발가락나무늘보에 대해서는, 김영하의 -랄랄라 하우스-를 읽다가 '생존의 기술'이란 챕터에서 알게 됐는데 쫌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 옮겨 봅니다.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라는 소설에 보면 세발가락나무늘보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늘 잠만 자고 게으르고 동작이 굼뜨기로 유명한 이 동물은 몇 번을 건드려야 겨우 졸린 눈으로 물끄러미 사람을 쳐다본다고 한다. 귀도 어두워서 총소리쯤 돼야 겨우 반응을 보이고 그나마 낫다는 후각도 나뭇가지가 썩었는지 안 썩었는지 판별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물학자 블록에 의하면 적지 않은 나무늘보들이 썩은 나뭇가지에 매달렸다가 땅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바로 그 어찌할 수 없는 수면벽과 천성적인 게으름이 나무늘보 생존의 비밀이다. 너무 느리다 보니 위험한 길은 아예 가지를 않고, 늘 가만히 잠만 자고 있으니 제규어나 표범, 독수리 같은 포식동물의 주의도 끌지 않는다는 것이다. 털도 무성하여 멀리서 보면 꼭 흰개미집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그냥 대수롭지 않은 나무의 한 부분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채식주의자'이며 자연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살아간다.

항상 흐믓한 미소를 짓고 있다는 그 세발가락나무늘보. 가끔 어떤 사람은 너무 바쁘게 살아서 문제다. 그가 바쁘면 바쁠수록 세상은 어지럽고 어수선해진다.-

 

 

 오늘 같은 날은 문득, 독일 슈투트가르트쳄버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Bach의 -골드베르그변주곡 Bwv 788-이 듣고 싶어지고, 문득 음악을 잊은지 오래됐다는 기억이 되살아나고...고요하고 서늘한 실내에 앉아..자신과 내면의 대화를 手話로 나누며 ,적요하고 다정한 時間을 삶의 쉼표처럼 나눌 수 있게 해주던,,글렌골드가 치는 피아노연주도, 여름날의 비내리는 저녁처럼 그립고요.

 같은 곡의 音樂이라도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그 느낌이 다 다르고, 그것은 그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의 내면이나 삶의 지향, 테크닉에 따라 다 달라서 이겠지요.  -양들의 침묵-, OST에 나오는 안소니 망길라의 골드베르그변주곡은 제게 왠지 밋밋한 느낌이 들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가장 많은 연주자들이 연주한 곡으로는, 역시 Bach의 무반주첼로조곡이겠고..1악장의 -프롤류드-가 갑자기 듣고 싶네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는, 파블로카잘스의 장중하고 심오한 연주, 엄격하고 적요한 피에르 푸르니에의 연주, 화려하고 세련된 미사 마이스키의 연주, 다정하고 부드러운 요요마의 연주等等..音樂을 食糧처럼 들었던..수많은 時間들이, 지금 이 時間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악수를 請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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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아침저녁

 

   방을 닦습니다

 

   강바람이 쌓인 구석구석에서

 

   흙냄새가 솔솔 풍기는 벽도 닦습니다

 

   그러나 매일 가장 열심히 닦는 곳은

 

   꼭 한 군데입니다

 

   작은 창 틈 사이로 아침 햇살이 떨어지는 그곳

 

   그곳에서 난 움켜쥔 걸레 위에

 

   내 가장 순수한 언어의 숨결을 쏟아 붓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찾아와 앉을 그자리

 

   언제나 비어있지만

 

   언제나 꽉 차 있는 빛나는 자리입니다

 

 

                                                    

       -곽재구, <참 맑은 물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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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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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치지 않는 전문서평가의 시각과 마음이 들어 있는 좋은 책이다. 고인의 아내가 대신 쓴 `머리말을 대신하여`로 故최성일씨의 이 책을 얘기하고 싶다. 누구에게라도 추천과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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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구영신(送舊迎新)


               내 가슴에
               손가락질하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내 가슴에 못질하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내 가슴에 비를 뿌리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한평생 그들을 미워하며 사는 일이 괴로웠으나
               이제는 내 가슴에 똥을 누고 가는 저 새들이
               그 얼마나 아름다우냐.


                - 정호승의《내 가슴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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