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에 중독되었다
아니야가는 휠체어가 망가져
땅바닥을 기어서 학교에 갔다
섬을 떠난 편지가 이방인에게 전달되었다
까뮈는 스승 장 그르니에와 마침내 친구가 되었다
입동(入冬)의 문턱에서 절교당한 계절이 울고 있다
말하자면 초겨울 비가 내리는 것인데
나는 건너야 할 것을 건너지 못하는 중이다
(아니야가처럼 진흙밭을 기어보란 말이야)
예배당 벽에 기대어 애인을 기다리며 울던 시인은
아직도 예배당 건너 항아리갈비집에서 못 나오고 있다
뫼르소는 면도한 얼굴에 스킨 브레이서를 바르고 마리 카르
도나를 만나러 갔다
(비애는 운명일 뿐, 그래서 슬픔은 가벼이 넘는거다)
한밤중인데도 머릿속이 환하다
떠날 것을 떠나자 (P.20 )
먼 행성
벚꽃 그늘아래 누우니
꽃과 초저녁달과 먼 행성들이
참 다정히도 날 내려다본다
아무것도 없이 이 정거장에 내렸으나
그새 푸르도록 늙었으니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느냐
아픈 봄마저 거저 준 꽃들
연민을 가르쳐준 궁핍의 가시들
오지않음으로 기다림을 알게 해준 당신
봄이면 꽃이 피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잘린 체게바라의 손에서 지문을 채취하던
CIA 요원 홀리오 가르시아도
지금쯤 할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날 그 거리에서 내가 던진 돌멩이는
지금쯤 어디로 날아가고 있을까
혁명의 연기가 벚꽃 자욱하게 지는 저녁에
나는 평안하다 미안하다
늦은 밤의 술 약속과
돌아와 써야할 편지들과
잊힌 무덤들 사이
아직 떠다니는 이쁜 물고기들
벚꽃 아래 누우니
꽃잎마다 그늘이고
그늘마다 상처다
다정한 세월이여
꽃 진 자리에 가서 벌 서자 (P.78 )
-오민석 詩集, [그리운 명륜여인숙]-에서
좋은 분께서 보내주신 LEMON GINGER tea를 마신다.
뜨거워도 좋지만, 식은 후에도
한결같이 좋다.
서재를 쉬는데도 어떤 경로를 통해 들어오시는지는
몰라도 많은 이웃분들께서 친구신청을 해주심에
늘
송구하고 감사한 마음뿐인데, 오늘 아침에는 더욱
그렇다. 새 이웃분의 `滯雨`의 한 귀절이 마음을
두드리며.
눈이 짓무르게 冊을, 온몸으로 읽으시고
피땀과 피눈물로 글을 써주시는
존경하는 어느 분의
서재를 떠올리게 하시는.
환자분들을 온마음으로 진료하시며 잘 지내시리라 믿는다.
봄이 화창하지만, 내 책상은 고요해
그래서 마음이 좋고
이웃님들께 마음의 인사를 감사히 드린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