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날에 더 참담하게 만나자

 

 

 

 

 

  누구는 절반의 희망과

  절반의 절망을 말하지만

  지금 할 일은

  참혹한 시간 속으로 더 들어가는 것

  애인들은 등을 돌리고

  꽃들은 마침내 졌다

  지금 할 일은

  믿음, 희망, 미래, 이런 단어들을

  잠시 버리는 것

  더 혹독하게 살의 냄새를 맡는 것

  유령들과 작별하고

  염통의 지도를 다시 읽는 것

  아, 또다시 삶에 속은 자는

  지게를 지고 다시 생계를 향해 가네

  지금은 더 참혹하게 무너질 때

  알몸의 비극과 결혼할 때

  손쉬운 작별들과 작별할 때

  그러니 벗들,

  꽃피는 봄날에

  더 참담하게 만나자  (P.14 )

 

 

 

 

 

 

 

    아니야가는 휠체어가 망가져 땅바닥을 기어서

   학교에 갔다

 

 

 

 

 

    나는 시에 중독되었다

    아니야가는 휠체어가 망가져

    땅바닥을 기어서 학교에 갔다

    섬을 떠난 편지가 이방인에게 전달되었다

    까뮈는 스승 장 그르니에와 마침내 친구가 되었다

    입동(入冬)의 문턱에서 절교당한 계절이 울고 있다

    말하자면 초겨울 비가 내리는 것인데

    나는 건너야 할 것을 건너지 못하는 중이다

    (아니야가처럼 진흙밭을 기어보란 말이야)

    예배당 벽에 기대어 애인을 기다리며 울던 시인은

    아직도 예배당 건너 항아리갈비집에서 못 나오고 있다

    뫼르소는 면도한 얼굴에 스킨 브레이서를 바르고 마리 카르

 도나를 만나러 갔다

    (비애는 운명일 뿐, 그래서 슬픔은 가벼이 넘는거다)

    한밤중인데도 머릿속이 환하다

    떠날 것을 떠나자  (P.20 )

 

 

 

 

 

 

 

         먼 행성

 

 

 

 

 

 

     벚꽃 그늘아래 누우니

     꽃과 초저녁달과 먼 행성들이

     참 다정히도 날 내려다본다

     아무것도 없이 이 정거장에 내렸으나

     그새 푸르도록 늙었으니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느냐

     아픈 봄마저 거저 준 꽃들

     연민을 가르쳐준 궁핍의 가시들

     오지않음으로 기다림을 알게 해준 당신

     봄이면 꽃이 피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잘린 체게바라의 손에서 지문을 채취하던

     CIA 요원 홀리오 가르시아도

     지금쯤 할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날 그 거리에서 내가 던진 돌멩이는

     지금쯤 어디로 날아가고 있을까

     혁명의 연기가 벚꽃 자욱하게 지는 저녁에

     나는 평안하다 미안하다

     늦은 밤의 술 약속과

     돌아와 써야할 편지들과

     잊힌 무덤들 사이

     아직 떠다니는 이쁜 물고기들

     벚꽃 아래 누우니

     꽃잎마다 그늘이고

     그늘마다 상처다

     다정한 세월이여

     꽃 진 자리에 가서 벌 서자  (P.78 )

 

 

 

 

 

 

 

     -오민석 詩集, [그리운 명륜여인숙]-에서

 

 

 

 

 

 

 

 

 

   

 

 

 

 

 

 

 

 

 

 

 

 

 

 

  

 

좋은 분께서 보내주신 LEMON GINGER tea를 마신다.

뜨거워도 좋지만, 식은 후에도 한결같이 좋다.

서재를 쉬는데도 어떤 경로를 통해 들어오시는지는

몰라도 많은 이웃분들께서 친구신청을 해주심에 늘

송구하고 감사한 마음뿐인데, 오늘 아침에는 더욱

그렇다. 새 이웃분의 `滯雨`의 한 귀절이 마음을 두드리며.

눈이 짓무르게 冊을, 온몸으로 읽으시고

피땀과 피눈물로 글을 써주시는

존경하는 어느 분의 서재를 떠올리게 하시는.

환자분들을 온마음으로 진료하시며 잘 지내시리라 믿는다.

봄이 화창하지만, 내 책상은 고요해 그래서 마음이 좋고

이웃님들께 마음의 인사를 감사히 드린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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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5-03-17 21:49   좋아요 0 | URL
와 저 라넌 진짜 오래가네요. 이주전 라넌이죠?

appletreeje 2015-03-18 09:38   좋아요 0 | URL
예~이주전 라넌 맞아요~~
지난주 커다랗고 아름다운 하노이와 석죽, 불로초, 애니고자서스로 보내주신
꽃들은 친구가 너무나 예쁘다고 감탄을 해~선물했어요.^^

늘 싱그럽고 멋진 꽃들, 감사드립니다~*^^*

2015-03-17 2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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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8 09: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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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7 22: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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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8 09: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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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7 2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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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8 09: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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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8 07: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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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8 09: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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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12: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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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12: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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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16: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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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18: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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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2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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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23: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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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phor 2015-04-29 08:13   좋아요 0 | URL
아픕니다
오늘 비가 내려서 더!

appletreeje 2015-04-29 11:29   좋아요 0 | URL
아프지마세요.
저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만
오늘은 저도 아프네요.
아무쪼록, 편안한 하루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