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에 들렸을 때 이 나이테처럼 생긴 빵을 한참을 보고 서 있었다. 나이테가 선명한 나무 모양의 빵. 나중에야 그것이 바움쿠헨이란 걸 알았다. 바움은 나무, 쿠헨은 과자라는 뜻이란다. 독일에서 만들기 시작한 독일 빵이다. 달걀.버터.설탕.밀가루.향료 등을 섞어 반죽하고 얇게 밀어 심대에 감으면서 구워낸다. 구워낸 반죽에 새 반죽을 감아 굽고 다시 감아 굽는 과정을 반복하면 두툼한 나무 모양이 된다. 다 구워낸 후에 자르면 나이테처럼 여러 층으로 돼 있는 걸 볼 수 있다. 독일 빵가게에서는 커다란 바움쿠헨을 세워두고 손님이 원하는 대로 잘라 무게를 달아서 준다고 한다. 마치 정육점에서 고기를 끊어주듯이 말이다. 그런 정겨운 모습을 상상하며 바움쿠헨을 사기 위해 빵집에 갔다. 아쉽게도 그런 풍경은 삭제되고, 매끈하게 포장된 상자 속에 담긴 바움쿠헨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래도 한 켜 한 켜 공들여 만들었을 빵. 내 나이 속에도 그렇게 공들여 산 흔적이 남았으면 좋겠다. (P.31 ) / 시간의 나이테
2.
자,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데생을 가르치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보는 것을 가르치려 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두 사람이 클레어 시장에 걸어 들어간다고 해봅시다. 둘 가운데 하나는 반대편으로 나왔을 때도 들어갔을 때보다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버터 파는 여자의 바구니 가장자리에 파슬리 한 조각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그 아름다움의 이미지들을 간직하고 나왔습니다. 그는 일상적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그 이미지들을 자신의 일에 반영시킬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와 같은 것을 보기 바랍니다...... 러스킨은 빨리 그리고 멀리 여행하고 싶어하는 소망이 한 곳에서 제대로 된 기쁨을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즉 바구니 가장자리에 걸린 파슬리의 작은 가지 하나처럼 세밀한 데서 기쁨을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_알랭드 보통, [여행의 기술]에서
바다를 바라보기 시작한 지 30분도 안 되어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고 싶어한다. 스노클링을 하거나 수영이라도 하거나 그도 아니면 모래사장에서 게임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 멈춰버린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아주 작은 데서 충만한 기쁨을 맛보는 일을 한 번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한 번도 젖어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러스킨이라는 화가의 말처럼 늘 멀리 여행하고 싶어하는 열망은 사실 이곳에서 기쁨을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아주 작은 데서 기쁨을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지금, 여기를 못 견뎌하지는 않겠지. (P.239~240 ) / 흠뻑 빠지기
-김주현 지음 <바나나 우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