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내 친구 마이쑥 씨네 감자를 심고 우리 감자도 다섯 고랑 심었다. 친구네 마당가에 서 있던 분홍 상사화랑 컴프리도 몇 주 우리 밭으로 제금나왔다. 컴프리는 잎이 아주 크고 길쭉한데 비올 때 부침개를 하면 그만이다. 잎에 거칠거칠한 작은 털들이 나 있어서 뒤적이지 않아도 밀가루 반죽이 참 잘 묻는다. 바로 후라이팬에 올리면 큰 접시 가득 찬다. 내가 해본 것 중 세상에서 가장 간단하고 쉽고 부피도 많고 맛난 것이 컴프리부침개다. 참, 내 친구는 쑥국, 쑥버무리, 쑥인절미, 쑥부침개 등 쑥이 들어가는 것은 죄다 좋아해서 마이쑥이다. 나는 뽕잎, 오디, 하다못해 뽕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도 좋아해서 마이뽕으로 불린다.
모종 끝내고 민들레랑 씀바귀를 채취했다. 씀바귀가 어릴 때는 왕고들빼기랑 비슷해서 이 초보 농사군은 아직 구별을 못한다. 그냥 맛있고 보드라워 보이는 어린 나물만 골라 놀아가며 신나게 캔다. 그 보드레하고 불그스레한 빛이 새나오는 씀바귀가 암세포를 억제하고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는 데 약효가 있어서 '신초'라 불린다는 것만 안다. 아직 잎과 뿌리가 작아서 먹기는 좀 그렇다. 데치고 덖어 차로 만들 생각이다. 우리 밭엔 왕고들빼기가 엄청 많다. 설탕을 넣고 발효시키면 박테리아도 억제시키고 면역력도 키워주는 아주 좋은 효소가 된다. 작년 여름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아까워서 효소를 담갔었다. 왕고들빼기가 내 키만큼 커서 햇빛을 가렸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몇 개 솎아냈는데, 그냥 버리기엔 아깝고 양도 무지무지 많았다. 그래서 마침 지심맬 때 나온 쇠비름과 함께 층층히 설탕과 함께 쟀다가 몇 개월 후에 잎은 건져내고 액체만 항아리에 보관했는데 아주 맛있고 담백하다. 오래될수록 항암효과도 높아진다니 식물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고 신비하다.
오늘은 토란과 해바라기와 붓꽃을 심었다. 해바라기는 입구부터 울타리용으로 심고, 풀이 감당이 안 되는 윗밭에도 두 고랑 심었다. 올 여름엔 해바라기집이 되겠다. 토란을 심는데, 만나면 늘 기분이 쫙 퍼지는 콩할머니가 나물 몇 줌 쥐고 웃으며 지나가신다. "파마 하셨네. 예뻐요" 했더니 "그려? 이뻐?"하며 환하게 웃으신다. "저기 아래 비닐하우스 가서 달래랑 열무랑 상추랑 뽑아다 먹어. 아주 많어. 많이 갖다 먹어"하며 훠이훠이 내려가신다.
농사라고 말하긴 겸연쩍지만 그래도 배우는 농부니까 열심히는 한다. 심어놓은 것도 보살피고 물도 주고 달래도 밭에 더 옮겨 심고 치마상추 옆에 콩할머니네 붉은상추도 옮겨 심었다. 일 끝내고 윗밭에 올라가서 쑥이랑 씀바귀랑 지칭개랑 냉이랑 민들레를 캤더니 오늘 밥상은 나물 밭이다. 냉이 달래 씀바귀 민들레는 야생초 김치를 담그고 민들레랑 냉이 조금은 장아찌 담그고 열무와 상추는 겉절이 하고, 야생초에 둘러싸여 이것저것 맛보다 보니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옛날 어머니들은 일하다 잠깐 짬내서 나물 캐다 데치고 무치고 겉절이 해서 상에 올렸다. 식구는 많고 먹는 건 금방이고 일거리는 지천인데 참 힘들었겠다. 하지만 행복은 일의 양과 물질의 풍족여부에 달려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단순비교는 못하겠지만 절대빈곤만 아니라면 옛날처럼 사는 게 훨씬 평화롭고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30년이 채 안 된 사이에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것들이 너무 많다. 고샅 나룻배 점방 물레방아 사립짝 바자울 까치밥...도리깨질 하는 소리 다듬이 소리 방아 소리 외양간 황소 울음소리 우물 두레박 똬리 물동이 부삽 부지깽이 지게...방울장수 엿장수 성주단지 터주 장독 뒤란...콩 볶는 소리와 화로에 군밤 튀어 오르는 소리 풀피리 불고 팽이 돌리고 깨금발 싸움하며 팔랑개비 들고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은 어디로 갔을까. 팔방놀이 줄넘기 하다 소나무에 매어놓은 그네를 딛고 하늘로 땅으로 오르내리던 그 시절이 있긴 했을까. "00야 노올자?" 담 너머 부르던 소리에 고샅으로 나가면 늘 놀 친구가 있던 그 봄은 어디로 갔을까.
"00야 밥 먹어라!" 해걸음 이 집 저 집 아이들 불러들이는 어머니들의 목소리. 느티나무 아래 정각정에서서 놀다보면 담 너머 들려오던 그 따뜻한 소리. 외로울 시간이 없었던 가난하지만 풍요로운 곳. 늘 가마솥은 끓고 아궁이에서도 타닥타닥 무언가가 익어가던 날. 어울려 일하고 빙 둘러 앉아 먹던 밥상과 그 너른 마당은 어디로 갔나. 멍석 위에 누워 모깃불 연기 따라 올라가면 저 높이 하늘에 뿌려놓은 메밀꽃같은 별들이 하늘 가득 달려 있던 그곳, 그곳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P.18~21 )
-김해자 산문집,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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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
2008년 백석문학상, 1998년 전태일문학상 |
최근작 : |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휴먼필>,<당신을 사랑합니다> … 총 5종 (모두보기) |
소개 : |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조립공 미싱사 학원강사를 전전하며 노동자들과 시를 쓰다 1998년에 등단하여 시집 『무화과는 없다』, 『축제』, 민중열전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펴내고 전태일문학상과 백석문학상을 받았다. 김해자 시인의 최근 5년 동안의 이름은 나르시소스. 자기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식음을 전폐하고 타자의 소리를 듣지 못한 신화 속의 미소년이 아니라 자기를 진실로 들여다보고 사랑하는 자만이 자기 안에 들어온 모든 형상과 형상 너머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노동자, 장애인, 사회운동가 들과 함께 문학과 예술치료프로...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조립공 미싱사 학원강사를 전전하며 노동자들과 시를 쓰다 1998년에 등단하여 시집 『무화과는 없다』, 『축제』, 민중열전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펴내고 전태일문학상과 백석문학상을 받았다. 김해자 시인의 최근 5년 동안의 이름은 나르시소스. 자기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식음을 전폐하고 타자의 소리를 듣지 못한 신화 속의 미소년이 아니라 자기를 진실로 들여다보고 사랑하는 자만이 자기 안에 들어온 모든 형상과 형상 너머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노동자, 장애인, 사회운동가 들과 함께 문학과 예술치료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짬짬이 농사를 짓고 바느질을 하며 사는 노동자 나르시소스는 물속에 비친 자신과 세상과 사람들의 활동사진을 모은 책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를 기점으로 노동과 놀이와 밥이 일치하는 코뮤니타스를 본격적으로 준비 중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