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에서
- 사랑과 자유의 노래 3
게르하르트 성인의 언덕 위에 월계수잎을 높이 든
'자유의 소녀상'이 서 있었다.
다뉴브강 물결은 맑지도 푸르지도 않게
마냥 잔잔하게만 흐르고 있었다.
강둑 한 구역엔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죽어간
유대인들의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게 신발뿐일까.)
늦여름 부다의 거리는 단풍나무 잎새들을 물들이고
때이른 가을비도 내리고 있었다.
마차시 성당과 다리(橋) 건너편
페스트의 저녁 불빛이 피아노시모로 젖어 있었다.
그 모든 걸 언덕 위의 소녀상少女像이
옛모습 그대로 늙지도 않은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운 시절의, 순결한 사랑과 자유의 도시
부다페스트가 거기 있었다. (P.17 )
나탈리 콜
나는 밤늦게 홀로 널 그리며
녹차綠茶를 마시고 있어.
그러다가 좀 심심하길래
네가 좋아하는 '언포겟터블'을
방금 찾아 플레이어 했어.
바로 그 노랠 나탈리 콜이
아버지와 같이 부르고 있어.
죽은 낫킹 콜이 CD 속에서
이 세상에서 사랑하던 딸
나탈리와 함께 부르는 노래,
나는 지금 그걸 마음으로
너와 함께 또 듣고 있어. (P.82 )
* unforgatable
풀 이야기
토끼풀은 토끼귀를 많이 닮았고,
강아지풀은 강아지 손발을 닮았고,
애기똥풀은 그렇게 봐서 그런지
그 노란 물똥과 참 같기도 하구나.
작은 풀잎들은 가만히 움직인다.
하고픈 말도 입속으로만 한다.
사람들은 그걸 알아맞춰야 하지.
"난 누구와 무엇이 닮았을까요?"
풀들은 밤에 꼭 한데서 잠을 잔다.
자다가 깨어 엄마를 찾기도 하다가
조금 울고 나선 또 잠들기도 하지.
엄마는 홀씨되어 어디로 날아갔을까.
풀들 옆에 들꽃들이 가까이 서 있다.
어린 풀들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바람을 막아주며 쯧쯧 혀를 차다가
"애들아, 우리 뭐하고 놀래?" 물어본다. (P.83 )
달마 30
- 달마의 기도
하늘님,
나무도 저렇게 바로 설 줄 아는데,
(나무들도 제대로 바로 서서 사는데,)
사람들은 왜 바로 서서
좀 제대로 살 줄 모르지요.
아이고! 하늘님,
그런 사람을 왜 아직 사랑합니까? (P.88 )
-이정우李庭雨 시집, <울지 않는 마돈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