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놀라우리만치 짧다. 이제 기억 속에서 삶은 내게 다름과 같은 정도로 응축된다. 예를 들어 평범한 삶이 예기치 않은 불행한 사건 하나 없이 행복하게 흘러간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나는 어떻게 한 젊은이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거라는 염려 없이 말을 타고 이웃마을로 가겠노라 결심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카프카가 우리와 동시대에 살았다면 <이웃마을>이라는 제목으로다른 글을 썼을까? 물론 문제는 이웃마을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달려있다. 혁명의 달리기를 혼자 하는 것으로 생각하다니, 쯧쯧.....혁명의 달리기는 이어달리기인 것을, <이웃마을>에 대한 브레히트의 해석이었다. 앞만 보고 나아갈 때 삶은 결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삶은 뒤에서부터 앞으로 흝어 내리는 책이 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죽음의 침상에 누운 당신 눈앞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억의 이미지들, 그게 바로 완결된 삶이다. <이웃마을>에 대한 벤야민의 해석이었다. 나에게 '이웃마을'은 '이웃'인 당신의 '귀'로 보인다. 불행한 우연적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 해도 전언이 도달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의 귀. 목소리는 이웃인 당신의 귀에 도달하지 못하고 허공에 떠돈다. 당신의 귀에 가 닿고 싶고, 당신의 따스한 심장에 깃들고 싶다. 그러나 이웃인 당신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누군가 나에게 전언을 보낼 때 나는 대답할 의무가 있다. 이것이 윤리적 주체로서 내가 할 일이다.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전언이 나를 향한 것이었음을 인정해야 하고, 가능한 제대로 이해하려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내세울만한 나의 공로로서가 아니라, 나의 존재됨 역시 내가 보낸 전언을 수신해준 누군가에 기대고 있음을 통렬히 깨달은 결과여야 한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이 가져다준 편리함과 후기자본주의 소비문화가 선전하는 핑크빛 행복 속에서 그러나 역설적으로 전언은 점점 더 자주 실종되고 답변을 기다리는 송신자의 가슴은 점점 더 타는 목마름으로 바스러진다. 전언이 품고 있는 삶의 시간과 장소를, 그 구체성과 개별성을 오롯이 살펴 듣는 '나의 이웃'을 희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욕망인가?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당신의 이야기를 사려 깊게 새겨듣는 이웃이 여기 있다고 말한다. 새겨들은 그 이야기를 또 다른 이웃에게 전송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전언들이 발화한 사람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 하는 건 아니다. 이 전언들에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와 듣는 사람의 귀/목소리가 서로 섞여 있다. 이 글들에는 조금씩 미끄러지고 지연되는 타자 인정과 서툰 관계 맺기의 흔적들이 지워지지 않은 채, 그러나 심장의 온기를 담아 남아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서로에게 완전히 투영할 수 없는 자아와 타자가 만나 말을 하고 듣는 행위에 동참하게 된다. 송신과 수신 사이의 불완전한 연결은 물질적인 환경 이상의 것이다. 의미한 것과 이해한 것 사이의 간극은 모든 소통행위의 존재론적 한계고 이 한계야말로 자아의 윤리적 주체성이 구성되는 출발지점이다.   (P.5~7 )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에서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3-06-27 21:42   좋아요 0 | URL
작은 사람은 작은 사람끼리
어깨동무를 하면서
서로 돕고 서로 아껴서 서로 사랑하지요.

차별을 없애는 길은
작은 사람끼리 손을 잡는 데에 있다고 느껴요.

appletreeje 2013-06-28 09:32   좋아요 0 | URL
차별을 없애는 길은
작은 사람끼리 손을 잡는 데에 있다.-

그런데 때때로 작은 사람들끼리도
손을 잡지 않을 때도 많아 슬픈 세상입니다..

2013-06-27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28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림모노로그 2013-06-28 09:46   좋아요 0 | URL
요즘은 소통이 화두이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심한 불통의 시대이기 때문이라 생각되더라구요.
이 책 차별이라는 송신이 수신자에게는 얼마나 가슴 아픈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 같아요 .
조금은 마음을 열고 차별이 아닌 이해의 시선을 타인에게 보여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편집과 구성이 매우 탁월했던 것 같아요 ㅎㅎ

appletreeje 2013-06-29 09:04   좋아요 0 | URL
결국, 차이를 인정하고 차별을 없애려는 노력은
저 사람은 나랑 다르지만, 저 사람도 나랑 같은 사람이고 주체라는
마음과 시선으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함께 걸어가는 일이라 생각 들어요.

'너무 붙이지도 않고 너무 떨어뜨리지도 않게'-
그리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삭제된 채 허공에 붕 뜬 '착한' 소수자들을 사회적 변화의 주체로 맞이하고 그 노력을 함께해나갈 수 있는 장소를 열어나가는 것이 반차별운동의 중요한 역할이겠지요.

히히..드림님의 이 책의 리뷰가 늘 그랬듯이
특히 마음에 많이 와닿았던 좋은 책이었습니다. ^^

숲노래 2013-06-30 15:41   좋아요 0 | URL
작은 사람 스스로 작은 사람인 줄 생각하지 못하면
큰 사람이 되고픈 생각에 스스로 괴롭히고
이웃과 동무도 힘들게 하지요.

그래도, 작은 사람은 작은 사람으로 돌아와서
큰 사람(이를테면 공룡)들로 이루어진 세상은
머잖아 무너지고 마는 줄 깨달으리라 생각해요..

appletreeje 2013-06-30 16:51   좋아요 0 | URL
히히..저는 작은 사람끼리
서로 아끼며 다정하게 사랑하며 살아 갈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