訃告
돌담 아래 국화를 심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촛불 든 사람들이 뉴스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화면 가득 비친 여자가 활짝 웃고 있다
국화가 시퍼렇게 자라고 있다
(한 송이 국화꽃을 더, 더 피우기 위해?)
소 키우는 한씨는 여름 내내 풀을 베러 다니고
트랙터 가득 실어도 저녁먹이와 이튿날 한 끼란다
고구마 밭을 매는 내게 고구마 덩굴은 자기 것이라고
소리친다
국화가 어떻게 자기를 가지치기 하는지 아세요?
잎이 대 여섯 장 자라면 우듬지 시들시들해지지요
어느 순간 모가지가 툭 떨어집니다 스스로 목을 자르
는 거지요
그리곤 겨드랑이에서 새파랗게 순이 돋습니다
(간밤에 바람이 퍼붓고 비가 오셨다)
촛불 따위는 모른다는 한씨가 트랙터를 몰고 논둑으로
사라진다 (P. 30 )
잠에 대한 보고서
톨게이트 옆에서 콩농사를 짓는 할머니는 도로 정비과
에서 유명하다 불빛에 콩이 잠을 못 잔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가로등을 깨버리기 때문이다
'할머니 한번 더 깨면 경찰에 고발할 겁니다 공무집행
방해예요'
'또 민원이 들어왔어요 사고가 났잖아요 두 명이 다쳤
다구요'
'이것도 다 세금이거든요 자꾸 이러시면 저희들 모가
지가 남아나겠어요?'
전등을 끼우러 간 기사들이 어떤 말을 해도 할머니는
'그냥 달고 가' 한마디다
할머니가 처음 정비과에 전등을 꺼달라고 간 것이 몇
년 전이다 그때 정비과에서는 황당한 할머니라면서도
노인의 절절한 설명에 며칠 전등을 껐었다 하지만 초행
길인 운전자나 급회전에 서툰 사람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사고가 나고 밤새 불을 켜 놓도록 지시가
내려졌다 그날부터 할머니와 정비과 직원들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전등을 끼러 가면 할머니는 기사가 딛고선 사다리를
잡아준다
'잠 안 자고 왜 댕긴다냐? 눈을 두개나 달고도 못 댕길
길이 불 켜면 보여야?'
'할머니, 요즘 사람들 밤낮 따로 있나요?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느그들 발소리에 저것들 잠 깨니께 살박살박 다녀, 환
한 불빛에 저 놈들 보랫빛눈 깜짝이는 거 보이쟈?'
기사의 뒤를 좇던 할머니가 소곤거린다
'세상에 잠 안자고 맺어지는 열매 어디 있다냐? 느그
들도 훤하면 잠 안오쟈?'
가로등에 불이 들어온다 할머니가 또 전등을 깬다 (P.16 )
- 김종옥 詩集, <잠에 대한 보고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