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환자촌
칼차키에스 계곡
순수한 신앙이 깃든 하얀 교회
그리고 오래된 돌들이 풍기는 향기
내가 만일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고고학자가 되었으리라
더 있다
보아야 할 것이 더 있다
산중에 쓸쓸히 서 있는 오두막
계속되는 굶주림과 수탈
벼룩...
저주받은 것들
사방에 버려진 넝마주의 아이들
허망한 꿈에 젖은 눈동자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팔
영양결핍으로 불록 튀어나온 배
나환자들과 맹인들을 치료하며
나병은 전염되지 않는다고 안심시켰다
그들과 축구도 하고 산책도 했다
또 사냥도 떠나 짐승들을 잡아오기도 했다
우리가 나환자촌을 떠날 때
또 그들이 뗏목을 만들어주었다
그 뗏목에 '맘보 탱고'라고 이름 붙였다
또 송별 파티도 열어주었다
비가 내렸지만, 한 사람도 빠지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강기슭의 나환자촌이 점점 멀어져갔다
손을 흔드는 아마존 밀림 속의 맹인들... (P.24 )
탐독
올바른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해적과 달'은
라스콜리니코프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엘리샤에서 네루다까지
그리고
열띤 토론은 또 다른 책을 탐닉케 했다
스테판 츠바이크,
보들레르와 세익스피어
엥겔스와 도스토예프스키
크오포토칸과 트로츠키
폴 발레리와 가르시아 오르까
그 외 많은 아나키스트들,
레온 펠리페의 '훈장'
레닌의 '유물변증법'
모택동의 '신중국론'
샤르트르의 '벽'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수고'
네루다와 랭보
...
특히,
마야코프스키와
네루다의 시에 탐닉했다 (P.28 )
내가 살아가는 이유
그것은,
때때로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P.52 )
먼 저편
-미래의 착취자가 될지도 모를 동지들에게
지금까지
나는 나의 동지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
결코 적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오늘 다시 이 총대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은
어쩌면 내가 동지들을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넓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것을 맹세했었다
하지만
그 맹세가 하나 둘씩 무너져갈 때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보다도
차라리 가슴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
누군들 힘겹고 고단하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별빛같은 그리움이 없었겠는가
그것을
우리 어찌 세월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비록 그대들이 떠나 어느 자리에 있든
이 하나만은 꼭 약속해다오
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
한줌도 안 되는 독재와 제국주의의 착취자들처럼
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
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 말아다오
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그 슬픔만은 참을 수가 없구나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빈 산은 너무 넓구나
밤하늘의 별들은 여전히 저렇게 반짝이고
여전히 저렇게 제 자리에 있는데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산은 너무 적막하구나
먼 저편에서 별빛이 나를 부른다 (P.122 )
-체 게바라 시집, <먼 저편>-에서
어제 선물 받은 사진집, <코르다의 쿠바, 그리고 체>. 그리고,
드림모노로그님께서 말씀하신 <체 게바라 평전>을 생각하다가
오래된 체 게바라의 詩集, <먼 저편>을 펼쳐 읽는다.
그의 영혼은 빛나는 별처럼 늘 깨어 있었지만,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그것을 잊어왔었다.
그의 목소리가 여전히 나의 영혼을 뜨겁게 적시는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