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도서관
-최승자
오늘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한 권 빌렸다
되도록 허름한 생각들을 걸치고 산다
허름한 생각들은 고독과도 같다
고독을 빼앗기면
물을 빼앗긴 물고기처럼 된다
21세기에도 허공은 있다
바라 볼 하늘이 있다
지극한 無로서의 虛를 위하여
허름한 생각들은 아주 훌륭한 옷이 된다
내일도 나는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한 권 빌리리라
-<문학사상> 2010년 8월-
김영태 詩人이 그린,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최승자의 캐리커처를
물끄러미 보다가 이 '하늘 도서관'이 생각났다.
'허름한'이란 말에 마음이 가는 날이다.
허름한, 이란 형용사가 남루하지 않고 왠지 따스하기도 한
겨울, 저녁이 하늘에서 내려 오는 時間.
내일도 나는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한 권 빌려야겠다.
이 '하늘 도서관'은 2011년, '천년의 시작'에서 출간된
<물위에 씌어진>에도 수록되어 있다.
-쓸쓸한 날에는 장자를 읽고, 더 쓸쓸한 그런 날에는 술을 천천히
마신다. 始源을 그리워하면서, 눈에 보이는 꽃들이 어제 생겨난 듯 하고 동시에 천만년 전부터 그렇게 환하게 피어 있는 듯한 순수한 환희와 환희를 가득 풀어줄 어떤 始源性을 그리워하면서 술을 천천히 마시는 것이다.-라고 쓴 '시인의 말'을 다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