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도서관

                      -최승자

 

 

 

                     오늘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한 권 빌렸다

 

                     되도록 허름한 생각들을 걸치고 산다

                     허름한 생각들은 고독과도 같다

                     고독을 빼앗기면

                     물을 빼앗긴 물고기처럼 된다

 

                     21세기에도 허공은 있다

                     바라 볼 하늘이 있다

                     지극한 無로서의 虛를 위하여

                     허름한 생각들은 아주 훌륭한 옷이 된다

 

                     내일도 나는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한 권 빌리리라

 

 

 

                                              -<문학사상> 2010년 8월-

 

 

 

 

  김영태 詩人이 그린,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최승자의 캐리커처를

  물끄러미 보다가 이 '하늘 도서관'이 생각났다.

  '허름한'이란 말에 마음이 가는 날이다.

  허름한, 이란 형용사가 남루하지 않고 왠지 따스하기도 한

  겨울, 저녁이 하늘에서 내려 오는 時間.

  내일도 나는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한 권 빌려야겠다.

 

  이 '하늘 도서관'은 2011년, '천년의 시작'에서 출간된

  <물위에 씌어진>에도 수록되어 있다.

 

  -쓸쓸한 날에는 장자를 읽고, 더 쓸쓸한 그런 날에는 술을 천천히

  마신다. 始源을 그리워하면서, 눈에 보이는 꽃들이 어제 생겨난 듯 하고 동시에 천만년 전부터 그렇게 환하게 피어 있는 듯한 순수한 환희와 환희를 가득 풀어줄 어떤 始源性을 그리워하면서 술을 천천히 마시는 것이다.-라고 쓴 '시인의 말'을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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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3-02-13 17:48   좋아요 0 | URL
지극한 無로서의 虛를 위하여 허름한 생각들은 아주 훌륭한 옷이 된다
우와 ~ 감탄이 나오네요 ~ 나무늘보님 덕에 늘 좋은 시를 만나는 것도 제 복입니다 ㅎㅎ
좋은 하루 되세요 ^^

appletreeje 2013-02-13 18:07   좋아요 0 | URL
아이쿠, 수정중에 다녀가셨네요.^^;;
언제나 드림님의, 핵심을 포착하시는 視線이 놀랍군요.
드림님께서도 좋은 저녁 되세요.^^

2013-02-13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3 2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13-02-14 09:09   좋아요 0 | URL
'고독을 빼앗기면
물을 빼앗긴 물고기처럼 된다'
오늘 온종일 입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다니겠어요.
나무늘보님, 오늘도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요.

appletreeje 2013-02-14 22:33   좋아요 0 | URL
앤님! 행복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