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씨 어딨소?
갑작스레 원고 청탁이 오거나
글을 써야 하는데 도무지 써지지
않을 때 김수영 시집을 찾게 된다
집에는 백석과 이상과
테라야마 슈지와 보르헤스도 있는데
왜 꼭 김수영이야 하는지 나도 모르지만
달나라의 장난감을 팔아먹는 일도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시를
긁적거리는 일도 수십 년 전 눈빛이
유난히 형형했던 시인이
이미 예기(預期)했듯 모두
팽이처럼 도는 일상에 불과할
뿐이라서가 아닐까 혁명도 되지 않고
한쪽 손잡이가 떨어져나간 밥솥도
바꿀 수 없는 일상 속에서
갑갑스레 원고 청탁이 오면
이 우연한 싸움만큼은 한번 이겨보고
싶어서 김수영을 찾는다
혁명도 이미 끝내버렸고 거즈도
보기 좋게 접어놓고 잠든 시인을
오늘 밤도 다리 뻗고 잠들긴 글러버린
시인 나부랭이가 감히 질투한다
- 성미정 詩集,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