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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로 읽는 현대 과학사 - 소립자에서 빅뱅까지
존 S. 리그던 지음, 박병철 옮김 / 알마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수소로 읽는 현대 과학사'를 맛으로 표현한다면 담백하고 깔끔하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번역이 탁월하다. 책을 읽는 동안 번역서를 읽고 있다는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대게 외국 저자의 번역책을 읽을 때는 두 가지 고통을 겪는다. 첫째는 과학적 지식이 부족하여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고통(이건 물론 한국 저자의 과학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이고, 두번째는 한글이긴 한데 한글을 해석하며 뜻을 유추하며 읽어야 하는 고통이다. 하지만 이 책은 매끄러운 번역으로 편안하게(?)읽었다.

  저자는 워싱턴 대학 물리학과 겸임교수이며 1995년 미국 물리 협회의 물리학사 포럼 의장이었다고 하는데 무척 창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과학사( 물리사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를 수소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썼다는 것은 정말 기발해보인다. 어느 과학자라도 기존 이론이나 새로운 이론을 연구하거나 또는 실험을 설계할 때 수소를 가지고 할 것은 당연할 것이다. 왜냐면 수소가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원자니까. 그런데 생각을 잠깐 뒤집어 수소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니 특별한 현대 과학사 책이 되었다.

  매 장마다 수소를 주인공으로 하여 과학적 이론과 실험들에 대해 쓴 것과 더불어 그런 것들의 의미를 설명한 부분들이 참 유익했다.  과학적 이론에 대한 내용들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장에서 나오는 이론과 실험의 의의와 의미에 대한 저자의 설명만으로도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고 책의 방향타 역할이 되어 주었다. 덕분에 현대 물리학의 흐름을 윤곽이라도 잡을 수 있었다.

 

 

 우주를 이해하려면 우선 가장 간단하고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수소부터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 존 S 리그던

 

1. 우주의 탄생

 세상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150억 년 전에 형성된 수소 원자핵과 헬륨 원자핵의 분포 비율 때문이다. 우주는 탄생 초기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될 운명이었다. 수소 원자가 우주와 은하, 별, 행성 그리고 생명체의 운명을 좌우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2. 물질의 단일성과 수소

 조지프 톰슨의 전자 발견, 러더퍼드의 원자핵 발견 프레더릭 소디의 동위원소 발견 등으로 수소 원자는 다른 원자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아님이 밝혀졌다. 하지만 만물의 기본이 되는 물질이 수소라고 했던 프라우트의 가설은 깊은 통찰과  아이디어의 산물이고 향후 100여 년 동안 학자들의 연구 방향에 영향을 미쳤다.

 

3.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 패턴을 찾아낸 스위스의 고교 교사

 수학교사 였던 발머는 스펙트럼선들의 위치에서 규칙을 찾고 원자 내부에 숨은 질서를 알아내었다. 그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수소를 연구 대상으로 삼은 덕이다. 발머 공식이 알려진 후로 수소 원자는 스펙트럼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표준이 되었으며 원자 규모의 물리법칙을 추적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4. 보어의 수소 원자 모형 : 원자 구조의 새로운 패러다임

 양자역학이란 새로운 형태의 물리학을 탄생시킨 보어는 기존의 물리법칙에 양자적 조건을 가미한 수소 원자 모형을 개발하면서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 파장을 예견하였다. 또 전자궤도 사이의 에너지의 차이를 플랑크 상수와 빛의 진동수로 표현하는데도 성공했다. 그의 에너지 준위 개념은 오늘날에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5. 수소 원자 속에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만나다.

  조머펠트는 보어의 이론에 또 하나의 양자수 k를 도입함으로써 보어의 수소 원자 모형을 더욱 일반화시켰다. 즉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함께 고려하여 수소 원자 스펙트럼의 미세구조를 설명했다.

 

6. 미세구조 상수 : 신기한 범우주적 상수

  조머펠트에 의해 처음 도입된 미세구조상수는 광자와 전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의 크기를 결정한다. 단위도 없고 우주 어디서나 동일하며 거의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 그동안 많은 물리학자들이 미세구조 상수의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 했지만 아직도 해답은 오리무중이다.

 

7. 양자역학의 탄생 : 수소 원자가 결정적인 질문에 해답을 제공하다.

  1925년 말에는 두 가지 버전의 양장역학(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과 디렉의 양자역학)이 있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을 수소 원자에 적용시키고 1913년 보어가 얻었던 것과 동일한 공식을 얻어내는데 성공해고 디렉도 새로운 이론을 수소 원자에 적용해 성공을 거두고 수소 원자의발머 계열 스펙트럼을 완벽하게 설명했다. 양자역학은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을 이론적으로 규명하면서 테스트를 통과했다.

 

8. 파동역학의 산파 수소원자

  1926년 드브로이의 물질파 이론을 일반화시키고 상대성 이론을 결합하여 세번째 형태의 양자역학인 파동역학이 슈뢰딩거에 의해 제기되었다. 역시 수소 원자를 이용해 외부 전기장에 의해 나타나는 스펙크럼선의 세부구조(슈타르크 효과)로 명쾌하게 설명하였다.

 

9. 수소 원자와 디랙의 이론

  전자에 관한 디랙의 이론은 조머펠트의 미세구조 공식을 정확하게 재현했고 전자스핀에 나타나는 스펙트럼의 미세구조까지 이론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수소 원자의 에너지준위를 완벽하게 설명하였다. '양전하를 갖는 어떤 입자'의 존재를 예견하였고 칼 앤더슨에 의해 실제로 발견되었다. 현재 양전자라고 불리며 과학 역사상 처음 발견된 반입자였다.

 

10. 핵물리학자들의 길을 안내한 수소 원자 : 중수소의 발견

  듀테륨은 수소의 동위원소로 중수소라고 불린다. 중수소의 핵은 중양성자라는 특별한 이름을 갖고 있다. 양성자 한개와 중성자 한 개가 단단하게 결합된 형태로 되어 있다. 핵물리학자들은 이 핵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연구하기위해 중양성자에 관심을 가졌다. 중양성자는 오늘날 핵물리학을 있게 한 일등 공신이다.

 

11. 지적 자만심과 수소 원자의 만남 : 양성자의 자기모멘트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은 조머펠트가 수소 원자를 연구하면서 주장한 '양자화된 공간'(제만 효과)을 직접 확인했다. 슈테른은 카네기 연구소로 와서 이스터만과 양성자와 중양성자의 자기모멘트를 관측하여 1943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이 관측은 디랙의 이론과 150%나 차이를 보여 디랙의 이론을 하늘같이 믿던 자만심이 넘치던 당시 물리학자들의 모만함을 겸손함으로 바꾸었다.

 

12. 자기공명법 : 자기공명영상의 발견

  라비는 자기장을 끌어 분자 빔의 궤적을 휘어지게 하는 실험을 반복하여 양성자와 중양성자의 자기모멘트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었고 그 성과는 자기공명법의 발견이었다. 라비는 자신의 발명푼이 훗날 인류의 생활을 얼마나 바꿔놓을지 알지 못했다.

 

13. 새로운 핵력 : 중양성자의 사중극자모멘트

  램지의 실험으로부터 시작된 라비의 실험으로 '전기적 사중극자'가 발견되었다. 전기적 사중극자는 두 개의 양전하의 중심과 두 개의 음전하의 중심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 발견으로 인해 물리학자들은 원자핵 내부에서 작용하는 힘이 중심력이라는 가정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14. 큰 물질 속의 자기 공명

  핵분열 현상은 1938년 독일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1954년 페셀과 블로호는 각각 연구를 시작하여 핵자기공명현상을 발견했는데 두 사람 모두 수소에 초점을 맞춰서 실험을 설계하였다. 핵자기공명은 화학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고 응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15. 디렉의 이론에 맞선 수소 원자 : 양자전기역학

  수소 원자의 에너지 준위가 이론 값과 다른다는 것을 알고 이론의 결함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양자전기역학이 탄생하였다. 램은 실험을 설계하였고 램편이를 발견하였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양자전기역학인데 물리학 역사상 가장 정확하고 아름다운 이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6. 전자의 비장상성을 예견한 수소 원자.

  전자의 자기모멘트는 디랙의 이론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전성성 자기모멘트'라고 부르는데 전자는 파동성과 입자성을 모두 갖고 있다. 전자는 자신의 주변에 광자로 이루어진 전자기장을 형성한다. 이로인해 전자를 에워싸고 있는 공간은 극성을 띠게 되고 외부에서 바라볼 때 전하는 원래의 값보다 조금 다르게 보인다. 전자의 자기모멘트는 이론과 실험의 차이가 10억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 모든 작업이 가능했던 이유는 자연이 수소라는 실마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17. 은하의  지도를 그려준 수소 원자

  수소 원자의 21cm 스펙트럼선이 관측되면서 전파천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세간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1968년 게리트 베슈는 수소원자 스펙트럼에서 제만효과를 발견하여 별들 사이의 공간에 자기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 후 수소 구름 내부에서 자기장이 발견되었다. 라디오파 분광을 이용한 천체 관측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18. 수소 메이저 : 초정밀 시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여러가지 물리적 효과들을 검증하기 위해 초정밀 시계가 필요했다. 램지의 자기장 실험을 모태로 1960년 다니엘 클레프너는 수소 메이저 시계를 발명하였다. 수소 원자에서 방출된 복사를 직접 이용하도록 설계되었고 3억년에 1초 정도의 오차를 보일 만큼 정확하다.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19. 뤼드베리 상수 : 기본상수

  1890년 뤼드베리 상수가 물리학에 처음 등장하였고. 모든 원자의 에너지 상태에 대한 이론값과 실험값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상수다. 20세기 학자들 역시 수소 원자의 실험을 통해 뤼드베리 상수의 정확한 값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수소원자의 내부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개발된 포화 분광법과 편광 분광법, 이중 광자 분광법은 과학사에 남을 위대한 실험으로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것이다.

 

20.우주에 존재하는 다량의 중수소 : 빅뱅 이론의 검증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 덕분에 퀘이사가 발견되었고 이로써 정상상태 이론은 난관에 봉착하게 되고 우주 배경복사의 발견으로 빅뱅이론이 힘을 얻게 되었다. 우주공간에는 수소 원자 1개당 3.4개의 중수소가 존재하는데 슈람의 예측과 관측의 결과가 거의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런데 이로부터 "관측 가능한 우주의 총질량'은 은하와 그 무리에서 작용하고 있는 중력을 설명할수 가 없다는 문제에 봉착했고 어딘가 숨어 있는 질량을 '암흑 물질'이라고 부른다.

 

21. 반수소 : 최초의 반원자

  원자규모의 미시적 스케일에서는 입자와 반입자 사이에 대칭성이 존재하지만 거시적 규모에 오면 대칭성이 사라진다. 빅뱅이 일어날 때 물질만 생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반양성자와 반전자의 존재가 확인되었고 이들로 구성된 반수소 원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반수소 원자는 cpt대칭과 등가원리를 검증하는 수단으로 반물질과 대칭성 분야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22.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1970년대 클레프너와 톰 그레이탁은 수소 원자로 보스-아인슈타인 응축물을 시도했고 1998년 클레프너가 라디오 주파수의 전자기파를 이용했고 수소 원자로 이루어진 보스-아인슈타인 응축물이 탄생되었다. 보스-아인슈타인 응축물은 거시적 규모의 양자적 파동 다발이자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를 보여주는 거시적 사례이다.

 

23. 유사수소원자 : 이론에서 현실로

  유사수소 원자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데 이종원자, 뤼드베리 원자, '일상적인 원자에서 원자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전자를 모두 제거한 원자' 세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수소 원자와 유사 수소 원자의 단순함을 십분 활용하면 물질의 구조를 가장 근본적인 단계에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만물의 근원인 수소 원자가 과학의 길을 안내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H는  수소 원자를 나타내는 기호이면서 동시에 겸손함(humility)을 의미한다. 먼 훗날 누군가 "과학의 모든 지식 기반이 완성되었다"고 주장한다 해도 양성자와 전자로 이루어진 수소 원자는 여전히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고 있을 것이다. - 존 S 리그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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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란 무엇인가.정신과 물질 궁리하는 과학 4
에르빈 슈뢰딩거 지음, 전대호 옮김 / 궁리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과학은 당연히 어렵다(?). 일반 사람들에게 과학은 다가갈 수 없는 장벽으로 여겨진다. 일상 생활이 곧 과학이지만 사람들은 과학으로부터 소외되어 있고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생각한다. 과학은 일반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괴물일까?  사실 일반 사람들은 그런 문제제기 조차 할 수 없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만 감히 객관적이라는 과학적 지식 앞에, 이해하기 어려운 수식 앞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과학자가 그것도 노벨상까지 받은 과학자는 문제제기를 한다. 과학에 왜 인간이 빠져있을까? 과학에서 객관적 지식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정신의 여러 현상들은 과연 착각일까? 과학은 그것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생명이란 무엇인가',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권의 책이 하나로 엮여있는 책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무척 유명한 반면 '정신과 물질'은 비교적 덜 알려진 책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생명을 양자 물리학과 연결시켜 소개하는 책으로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몇몇 오류와 보편화되어버린 이론들이라고 한다. 물론 일반 독자로서는 이 책도 이해하는게 만만한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말이다.

  유명세를 떠나, 나는 오늘날 우리에게 더 큰 울림과 의미가 있는 책은 '정신과 물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신과 물질'

 

1장 의식의 물리적 기초

  무엇인가 익혀서 능숙하고 신뢰할 수 있게 훈련되었다는 이야기는 의식의 영역을 벗어났다고 말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의식을 거치는 것이다. 뇌뿐 아니라 몸 전체의 발생은 '잘 기억된' 반복이다. 신경계는 우리 종의 생장점이며 의식은 살아있는 물질의 학습과 관련된다. 한 사람이 영위하는 삶의 하루하루는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 중인 우리 종의 진화의 작은 부분이다. 의식은 진화와 함께 있는 현상이며 자기 자신과의 불일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라마르크의 획득형질의 유전은 부정하지만 (다윈의 진화론을 수용하지만)개체들의 행동이 종의 진화 방향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주장한다.

 

2장 지식의 미래

  다윈 이론에 대한 지배적인 해석들은 유기체가 진화 과정에서 수동적임을 강조하여 우리로 하여금 우울 하고 비관적인 전망을 갖도록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돌연변이는 게놈 속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개체는 자신이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물질이나 자손에게 물려주는 유전물질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돌연변이들에 '자연의 적자 선택'이 작용한다. 다윈주의의 우울함에 비해 라마르크의 획득형질이 유전된다는 생각은 아름답고 용기를 주며 고무적이고 활기를 준다. 그러나 획득형질은 유전이 안되므로 지지할 수 없다.

  획득된 행동이나 그 행동으로 인한 신체적 변화가 자손에게 직접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행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모의 신체 변화가(직접적으로, 또는 자연선택에 의해) 부모의 행동 변화를 일으키고, 그 행동 변화가 모범을 보이거나 교육을 통해서 혹은 더 원초적인 방식으로, 게놈에 담긴 신체적 변화와 함께 자손에 전달된다. 행동이 진화를 일으키는 강력한 요인일 수 있다. 만일 유기체가 새로운 기관을 사용하여 자연선택을 돕지 않는다면, 자연선택은 새로운 기관을 '산출' 할 수 없을 것이다. 행동은 천성적인 능력과 환경에 순응하고 이들의 변화에 적응함으로써 그 자체로는 유전되지 않지만 진화 과정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3장 객관화 원리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연의 영역에서 인식의 주체를 배제한다. 우리 자신은 세계에 속하지 않는 구경꾼의 입장으로 물러나고, 이 물러남에 의해 세계는 객관적인 세계가 된다.

나는 타인들의 의식이 객관적이며 내 주위의 실재 세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내 주위에 있는 실재 세계의 일부라는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세계에서 배제하여 세계와 무관한 관찰자 역할로 물러나게 하는 비싼 대가를 치름으로써만 적당히 만족스러운 세계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발생하는 두가지 이율배반에 이르른다. 첫째는 우리의 세계상이 '무채색이며, 차갑고, 말이 없다.'는 발견이고 두 번째는 우리가 물질이 정신에, 혹은 반대로 정신이 물질에 작용하는 지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이율배반은 이 이율배반에 매몰되어 있는 현재 과학 수준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세계는 내게 단 한 번 주어진다. 존재하는 세계가 주어지고, 또 지각되는 세계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관과 객관은 단지 하나다.

 

4장 산술적인 역설  :정신의 단일성

  감각하고 지각하고 생각하는 자아를 과학적 세계상 속의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이유는 자아 그 자체가 세계상이기 때문이다. 자아는 전체와 동일하고 따라서 전체 속에 한 부분으로 들어 있을 수 없다. 정신의 다수성은 다만 현상일 뿐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하나 정신뿐이다. 정신은 본성적으로 '단수'이다. 항상 현재에 있기 때문에 파괴될 수 없다. 정신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과학적 연구들이 전체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철저히 침묵한다는 사실이다.

 

5장 과학과 종교

  우리는 진정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난감한 질문들을 정복하는데 과학이 가장 중요하게 기여한 바는 시간의 점진적인 관념화라고 생각한다. 플라톤 칸트에 이어 아인슈타인은 공간-시간의 새로운 개념을 알게 해주었다. '잠재적 동시성'의 개념이 등장했고 '먼저와 나중'의 규칙으로부터 해방되었다.

 

6장 감각의 신비

  주변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모든 지식은 모두 직접적인 지각에 전적으로 의존하는데도, 다른 한편으로 그 지식은 감각지각과 외부세계 사이의 관계를 밝혀내지 못한다. 과학적 발견들의 도움을 받아 구성한 외부세계의 상, 혹은 모형 속에는 감각이 전혀 부재한다. 빛 파동에 대한 물리학자의 객관적 이론은 색 감각을 설명할 수 없다. 과학 논문이나 교과서의 저자들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사실을 이론화 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론화 과정은 실제 관찰과 그로부터 나온 이론 사이의 구분을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 관찰은 감각이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이론이 감각을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론은 감각을 설명하지 않는다.

 

  현재, 과학은 모든 것을 물질로 설명한다. 심지어 정신 작용까지도. 또한 그에 대한 반론은 한치도 허용하지 않는다. 늘 이런 과학 이론들에 답답한 갈증을 느끼지만  내 지식의 짧음으로 치부하고 느껴지는 문제점을 애써 외면하곤 하였다.

   과학의 객관화라는 미명하에 인간이 소외되는 현재의 과학을  비판하는 이 책은 시원한 물과도 같았다.  더구나  저자가 에르빈 슈뢰딩거라는 사실에 행복하기 까지 했다. 그렇지만 몇 십년 전에 씌어진 책인데 이 과학자의 주장이 현실 과학계에선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논의 조차 변변히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다시 조금은 우울 해졌다.

   어쩌면 '정신과 물질'이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많이 읽혀지는 날,  인간을 위한 과학이 새롭게 창조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의 중심이 사람은 아니겠지만  과학을 하는 주체인 인간의 정신과 감각이 배제된 과학은 객관적이라는 말로도 온전하다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과학은 한단계 올라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십년전 슈뢰딩거는 이미 그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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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축제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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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루히요가 31년 전 도미니카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것, 즉 자유의지를 가질 때만 비로소 커피 한 잔이나 럼주 한 잔도 더 맛있게 음미할 수 있을 것이었고, 담배 연기와 무더운 여름날의 수영, 토요일마다 보는 영화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메렝게 음악, 이 모든 게 육체와 정신에 더 좋은 느낌을 선사할 것이었다'.( 1권 252쪽 )

 

 독재자가 지배하는 모습과 논리는 어디서나 언제나 이리도 비슷한 걸까? 읽는 내내 우리의 역사와 오버랩되었다. 

 

 이야기는 다섯 부류의 사람들이 펼쳐나간다. 독재자 트루히요, 독재자 주변에서 특별 혜택을 받고 사는 기득권을 지닌 상류층 사람들,  트루히요가 만들어낸 환상과 현실적으로 배부름에 만족하는 대다수의 국민들, 독재와 인간성 말살에 저항하며 결국 트루히요의  암살을 꿈꾸는 사람들,  트루히요 가장 측근이었고 그 시대에 많은 것을 누렸지만 결국 몰락하고만 상원의원 카브랄의 딸, 우라니아. 1권 처음 부분은 다소 복잡하게 얽힌 시간과 인물들로 인해 읽기에 조금 적응이 필요하다. 또한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이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어 갈수록, 특히 2권에서는 엄청난 흡인력으로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행복했다.하느님이 용서해줄거라고 믿었다. 임신 6개월 된 올가와 루이스 마리아노를 두고 떠난 걸 용서할 것이다. 하느님은 트루히요가 죽더라도 그가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그런데 이런 빌어먹을 짓에 가담하는 바람에 그는 자신의 자리와 가족의 안전을 위태롭게 했던 것이다.......그는 이 모든 걸 하느님이 이해하실 것이고 자기를 용서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2권 98쪽 )

 

  결국 독재자 트루히요는 암살당했지만 독재자 암살에 가담했던 사람 중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독재자는 죽었지만 독재자의 그림자가 사라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서서히 새로운 역사의 시대로 진입한다. 시간은 더디고 그에 따른 또 다른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현실은 오히려 소설보다 잔인한 것 같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자신의 탐욕과 독재자의 언저리에서 차지한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부인, 아니 딸까지 트루히요에게 바칠 수 있는 기득권층. 자신의 판단 가치관 모두 보류한 채 독재자의 생각과 손끝에 전부를 걸고 살아간다. 반면 가족의 희생과 죽음까지 불사하며 목숨 바쳐 트루히요를 암살하는 사람들. 그로 인해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재산과 목숨까지 잃게 된다. 그런데도 인간성 회복을 외치며 독재 시대의 청산을 위해 생을 마감한다.

 

 트루히요가 살아있는 시대에 사람들은 비교적 분명한 가치관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독재자의 그림자만 남아 있는 시대는  혼란스럽다. 그림자에 지레 질식하여 스스로의 판단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과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채 시간을 맴돈다. 31년 독재의 그림자는 사라지는데 긴 시간과 휴유증을 남기고  독재자가 사라진 세상에서도 사람들을 통치한다.  대중들 스스로가 그것을 허락함으로서.....

 

 이 소설의 가장 핵심 인물인 카브랄의 딸 우라니아. 카브랄은 독재자 트루히요에게 자신을 바쳐 평생을 충성했지만 어느 순간 이유도 모른채 내침을 당하자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14살의 딸, 우라니아를 70대인 트루히요에게 바친다. 영문도 모르고 갔다가 영혼까지 상저입은 우라니아는 35년간 아버지는 물론 친척들과도 관계를 끊는다. 독재 시대에서 더 인간성을 말살당하는 여성의 이중적 고통을 그리고 있지만 우라니아는 최상류층 출신의 뛰어난 외모에 지적인 재능까지 겸비하고 운도 무척 좋아 미국에서 공부하며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여성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소설의 축이자 이 소설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문득, 나를 둘러싼 현실을 읽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구 반대편이라는 지리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염소의 축제( 우리의 정서와 조금 다른 염소에 대한 이미지가 낯설지만 )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또한  재미있지만 가볍게만 읽을 수 없는 소설이다. 며칠 지나면 다시 일상에 파묻혀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아갈 거다. 하지만  작가의 뛰어난 역량 덕분에 잠시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 인간성, 인간 존중에 대해 생각했고 현재의 우리 사회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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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문화는 역사를 타고 흐른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회화에서도 기득권을 지키려는 측은 변화가 두렵다. 동료까지 죽이면서까지 지켜야할 무엇...... 다소 복잡하게 전개되어 처음 읽기 시작할 때 적응이 필요하지만 점점 책 속으로 몰입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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