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장하석 지음 / 지식채널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과학이란 이름의 또 다른 종교를 극복해야한다.

저자는 진지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무척 성실하게 과학과 철학이 만나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전개해가고 있다. 전형적인 학자의 모습이 그려지며 책의 주제와 내용에서 신선한 느낌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과학은 당연히 자연에 대한 진리를 추구한다고 믿고 있었고 자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올바른 지식은 하나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정답 찾기에 몰두해온 학교 교육과 세뇌된 역사적 산물 일 뿐임을 깨달게 되었다.  이 시대 과학은 이미 신의 경지에 올라서 있다. 유일신(일원주의)에 대한 믿음처럼 오로지 과학적 정답도 하나라고 믿고 과학을 숭배해 왔음을 이 책은 지적하고 있다.

 

  “과학은 인간을 초월하는 진리의 추구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자연을 깨쳐나가는 문화적 과정이다.”(10)

 

PART1. 과학지식의 본질을 찾아서

  큰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포퍼와 쿤의 사상을 통해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서로 상충하는 견해를 가질 수 있음을 보이고 있다.

  포퍼는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판정신이며 종교적, 독단적, 음모론처럼 사람을 홀리는 것은 비과학적이라고 했다. ‘반증주의철학을 세우고 과학은 끝없는 추측의 반증의 과정이라고 했다.

  반면 쿤은 하나의 패러다임이 성립하면 과학은 그것을 충실히 따라가며 기초적 논의와 논란은 접어두고 난해하고 정밀한 전문지식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과학연구의 목적은 기존 패러다임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정상과학이론을 주장했다. 과학혁명을 통해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면 관측되는 사실, 개념의 의미가 모두 달라진다.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세상이라는 것은 패러다임을 통해서 걸러져 나온 것이다. 진짜 자연그 자체를 인간은 알 수 없다. 인간은 관측을 통해서 자연을 알게 되는데 그 관측은 특정한 패러다임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있는 자연은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바뀐다는 것이다.”(141)

 

  진리에 더 가까이 접근함으로써 과학이 진보한다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며 과학이란 자연에 대한 진리가 아니라 진상을 밝히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노이랏의 주장처럼 과학자들은 배를 타고 가면서 조금씩 고쳐서 더 짜임새 있고 물이 새지 않게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PART2. 과학철학에 실천적 감각 더하기

   “과학자들이 어떤 연구과정과 어떤 사고방식으로 그 결과를 얻어냈는가는 일반인들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학 방법론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과학의 결과만 믿는 것은 맹신에 불과하고, 믿지 않는다면 근거 없는 비이성적인 거부입니다. 또 과학의 본질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 과학정책을 세운다고 나선다면 그 또한 큰 문제일 것입니다.”(282)

 

  무조건 외웠던 화학혁명의 아버지 라봐지에(이렇게 쓰는 것이 실제 발음에 더 가깝다고 저자는 말한다.)에 대한 재조명을 하고 있다. 그의 이론은 당시 상당히 발전했었던 플로지스톤 이론을 살짝 바꾼 것에 불과하며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작업을 통해 얻은 명성일 뿐이라고 한다. 그가 플로지스톤 이론을 사장시키지 않았다면 오히려 화학이 더 발전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또 물은 H2O라고 누구나 당연하다고 여긴다. 조금의 의심도 안 해본 H2O가 쓰이기까지의 과정은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9. 물은 항상 100도에서 끓는가?’, ‘10. 집에서 하는 전기화학은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만하다. 옛날 과학자들이 갖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밝혀낸 과정을, 고 문헌을 뒤져 찾아내고 직접 실험을 통해 증명해보이고 있다. 물론 엄청난 실험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대단히 복잡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과학적 탐구의 과정과 과학적 사실이 받아들여지기까지의 과정이 독자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다.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과학적 사실들이 사실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과학의 간단한 문제도 정확한 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현대처럼 과학이 권위적이지도 않았고 아마추어 과학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PART3. 과학지식의 풍성한 창조

  저자는 인본주의 과학철학다원주의적 과학을 주장한다.

  “사실 과학을 하는 과정의 모든 단계에 인간의 본성, 인간의 능력과 한계, 인간의 욕망과 목적 등이 다 들어갑니다.”(348) “과학이 과학자들의 순수한 연구만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349)

 

   이제는 과학이 진리를 추구하고 그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꿈에서 깨어나야 할 것 같다.

과학의 독재도 독재다. (중략) 특히 전문가나 높은 사람이 하는 말이면 무조건 신봉하는 태도를 키운다면, 우리의 일상생활과 정치형태에 아직도 팽배해있는 권위주의적 태도를 더욱 권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반면, 시민들이 진정한 독립적 과학탐구를 배우는 것은 권위주의와 이데올로기의 맹종을 막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입니다.”(411)

 

   모든 사람의 목표가 동일하다면 대다수가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고, 그 많은 사람들은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책을 덮고 나니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든다. 과학이란 절대적이지도 않고 통일된 정답 추구는 더더욱 아니다. 자연에 대한 진리라는 말에 매달릴 필요도 없다. 다원주의적 과학을 인정하는 다원주의적 사회를 이루기 위해 이제 그만 감고 있던 눈을 떠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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