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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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때 이 책을 읽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과 자꾸 겹쳐서 책을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어쨌든 대통령은 조국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고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상류 계급이 아니었던 저자가 계급이 존재하는 영국이 싫어서 능력 본위의 나라라고 여겼던 미국으로 귀화한 후 쓴 것이다. 미국에서 중상류층으로 살면서 본 미국은 영국보다 더 계급적이고 특히 중상류층은 확고히 고정되어 있어 계층 간 이동은 거의 불가능하며 사회에 불평등이 만연되어 있다고 쓰고 있다.

그동안 사람들은 흔히 상위 1퍼센트 부자와 연대감으로 묶인 나머지 99퍼센트 사람들을 대별했다. 그러나 저자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중상류층이라고 할 수 있는 상위 20퍼센트와 나머지 80퍼센트 사람들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더 큰 간격이 존재한다고 한다.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고 간결하다. 상위 20퍼센트에 속하는 중상류층들은 대중과 확연히 구분되며, 불평등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고 세대를 거쳐 전승된다고 한다. 중상류층은 공정하지 못한 '기회의 사재기'로 불평등을 조장하였고 자신들이 특권을 누려왔음을 인정해야 하고, 그런 불평등을 극복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독자를 향해 우리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중상류층이 아닌 나는 책을 읽기 시작하며 어색했지만 그래도 읽고 나니 요즘 한바탕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조국 사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얻을 수 있었다. 또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상위 20퍼센트의 중상류층을 설득하고 싶어 하는 저자의 마음도 다가왔다.

미국은 겉으로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돈, 교육, 부, 직업 등에서 불평등 요인들이 서로 단단히 결합해 있으며 하나만으로도 누가 어느 계급에 속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계급 격차가 존재한다고 한다. 현재 미국에서 중상류층의 계급적 지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또 다른 어느 나라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세습되고 있다고 한다.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제임스 헤크면은 부모 잘못 만나는 것을 '가장 큰 시장 실패'라고 불렀다.

미국 중상류층의 인생은 썩 괜찮다. 불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쉽게 회복되었고 이제는 풍요로운 경제 트랙에 다시 올라탔다고 한다. 경제를 넘어 교육 수준, 직장에서의 통제력, 동네의 질, 자신 있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능력, 건강, 식생활, 수명, 가족의 안정까지 포함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는 자녀 양육의 차이라고 한다.

초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벌어지는 격차는 빈곤층의 격차 문제라기보다는 중상류층과 나머지의 격차라고 한다. 좋은 대학에 간 학생 중 절반가량은 중상류층 출신이고 더 좋은 학교일수록 중상류층 출신의 비중이 높다고 한다.

중상류층 아이들은 보통의 아이들과 매우 다르게 자라며 불평등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되고 강화되고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고착된다고 한다.

세대 간 소득 수준의 연계성 조사를 보면 아래쪽보다 위쪽에서 더 경직성이 강하다고 한다.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가난하게 될 정도보다 부유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부유하게 될 정도가 더 크다고 한다. 고소득은 가난의 대물림보다 더 경직되어 대물림된다.

부모의 높은 학력과 높은 소득 두 가지는 모두 자녀가 커서 높은 학력과 높은 소득을 갖게 될 가능성을 높인다. 부유한 집안의 자녀와 손주는 대대로 계속 부유할 테지만 직접적인 상속보다는 교육을 통해서, 즉 유산보다는 학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저자는 아주 독특한 주장을 하는데 계층의 하향 이동성을 높여야 한다고 한다. 자신의 자녀가 하향 이동할 가능성이 있고 중상류층의 지위를 가질 것이라는 확신을 덜 할수록 재분배 정책을 더 많이 지지할 것이라고 한다. 상당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 그런데 불평등이 심화되어 있는 현실은 중상류층에서 떨어지는 순간 모든 행복과 삶의 안정성이 함께 깊이 추락하는 구조이다. 그래서 상위 20 퍼센트의 중상류층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자녀도 중상류층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한다.

장래 자녀에게 높은 칸의 사다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기회 사재기'를 포함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해, 즉 경쟁의 판을 조작해서 자녀의 하향 이동을 막는다. 그 결과 중상류층의 아이들은 노동 시장에 진입할 무렵이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능력을 갖추고 경쟁에서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고 한다.

유리한 위치에 선 승리자들은 그 결과를 발생시킨 모든 불평등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확신하기 쉽다. 패배자들에게 자원을 분배하는 것이 오히려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이 부자인 이유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는 착각에 빠진다고 한다.

4년제 대학은 별로 똑똑하지 않게 태어난 부유층 아이들에게 유용한 제도로 하향 이동을 막아주는 가장 좋은 방어선이라고 한다. 불법이 아닌 한 부모가 자녀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기 아이에게만 불공정한 이득을 주기 위해 다른 아이들의 기회를 제약하는 관행은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

대학 신입생 선발 과정도 경제력, 연줄, 노하우가 있는 사람들이 유리하도록 기울어져 있고 장학금 제도도 중상류층의 자녀들이 더 유리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대학에서 노동 시장으로 넘어가는데 유리한 입지를 선점할 수 있도록 하는 인턴 제도 또한 중상류층 자녀들을 겨냥하고 있으며 그들끼리의 알음알음으로 인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이야기지만 이번 조국 사태를 겪으며 드러난 우리나라 중상류층의 모습과 같아서 조금 놀라웠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들이 기득권과 권력층에 포진해서인지 점점 미국을 따라가며 불평등하게 되어버린 대학 입시 제도뿐만 아니라 장학금 제도 또한 왜곡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느새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계급 사회가 되었고 대물림까지 하고 있었다.

저자는 현재의 불평등한 미국 사회의 변화를 위한 제안을 하고 있다. 중류층이나 하류층 중에 많은 계획하지 않는 임신과 출산 줄이기, 가정 방문 교육 프로그램을 늘려 육아의 질을 높이기, 더 훌륭한 교사들이 하류층 지역에서 가르칠 수 있도록 하기, 대학 학자금 조달 기회를 공정하게 만들기, 베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를 없애 중상류층이 좋은 학교를 독점하는 것을 막기, 대입에서 동문 자녀 우대 없애기, 인턴 기회 개방하기 등이다.

위에서 말한 저자의 제안이 우리나라에서도 유용해 보이지만, 중상류층 자신들이 불평등하게 기회를 사재기하며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제약하고 있다는 자각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 같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인정해야만 운동장을 바로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기득권 층은 불공정한 기회 사재기와 불평등한 여러 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었음을 인정할까? 현실을 지켜보면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누가 쓴 글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이번 조국 사태는 정치권에서 진영 싸움처럼 끌고 가지만 실은 기득권 싸움이고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계속 누리려고 하는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인다고 했던 글이 생각난다.

저자는 자신을 포함하여 중산층에게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중상류층은 자신의 막대한 권력을 공정성이나 형평성에 대한 고려 없이 자신의 지위와 자리를 지키기 위해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지위가 전적으로 자신의 능력에 따른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우리는 이기적이 되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조세 혜택을 당연한 특권인 듯이 받아들이고 우리의 목적을 위해 다른 이들의 기회를 차단하는 식으로 이기적이다.

우리나라의 기득권층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희망이 있을 것 같다. 새삼스레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가 떠오른다. 우리는 가야 할 길이 멀고도 멀어 보인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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