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그림 김미진


최 관장은 회고전에 관해 몇 가지 문제점을 더 지적하다가, 갑자기 화제를 돌리며 목소리 톤을 낮췄다.


-명명희 선생님, 요즘은 어떠신가?

-네?

-벌써 연세가 일흔 중반이잖아. 어디 예전만 하시겠어.

-아, 네에.

-그래도 작업은 꾸준히 하시는 거지?

-저기… 매일 작업실에 계시는 것 같아요.

-흠… 그렇다니 다행이네.


명명희 화백은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원로 화가로, 일제 강점기 시절 홀로 일본 유학을 다녀온 선구적이고 독립적인 여성 작가였다. 시중에 진품을 위조한 모조품들이 횡행할 정도로, 그녀의 작품 가치는 한층 더 치솟아 있었다. 서윤이 갤러리 리온에 입사한 뒤 처음 참여한 전시도 바로 명명희 화백의 개인전이었다. 그 전시를 계기로 서윤은 선생 측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신뢰를 쌓아왔다.


-내년 상반기 중에 명명희 선생의 미공개작들을 모아 개인전 기획했으면 좋겠는데. 어때?

-아, 글쎄요…


서윤은 잠시 머뭇거리다 끝내 뒷말을 잇지 못했다. 명명희 선생은 한동안 위작 사건에 휘말려 법적 송사를 치른 뒤로, 대외 활동은 물론 전시에서도 한발 물러난 채 지내왔다. 그 일 이후로는 외부인과의 만남마저 피하고 있었다.


-선생님 건강 더 나빠지기 전에, 특별전처럼 전시 한번 기획해 봐.

-제가요?

-이 일만 성사되면, 내가 힘 좀 써볼게.

-네? 무슨…

-너, 모교에서 미술사 강의하고 싶잖아. 거기 학장을 내가 잘 알아. 어때, 나쁘지 않은 거래지?


최 관장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인간관계란 보이지 않는 거래와 은밀한 욕망으로 촘촘히 엮인 그물 같은 것. 그런 셈법을 읽고 조율하는 데 있어 그녀만큼 노련한 이도 드물었다.


서윤은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입시학원 강사 일을 병행하며 미술사 석사 학위를 받았다. 리온에 입사한 뒤에는 문예진흥원 연구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1년간 뉴욕대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미술사를 공부하고 돌아왔다.


리온은 이름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화랑이었지만, 권위적이고 이기적인 오누이 밑에서 직원들은 늘 소모품처럼 다뤄졌다. 오너의 잇속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는 이곳에서, 서윤의 큐레이터라는 직함은 허공에 잠시 걸어둔 명패처럼 공허했다.


언제 잘릴지 모를 현실을 떠올릴 때마다, 차라리 대학 강단에서 미술사를 가르치며 경력을 쌓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 속내를 관장은 이미 빤히 꿰뚫고 있었다. 내년이면 어느새 서른. 리온에서 점점 좁아지는 자신의 입지를 생각할 때, 관장의 눈 밖에 나는 일은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였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휴가 줄게. 당분간 갤러리에 나올 필요 없어.

-네? 그게 무슨… 손문기 선생님 오프닝은 어쩌고요?

-손 화백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는 거 나도 잘 알지. 그런데 어차피 돌아가신 분이잖아. 기자들 대접하고 홍보는 최 실장이 맡을 거고, 서윤 씨가 컬렉터들을 직접 상대할 것도 아니고, 그렇지?


그녀의 청소년기를 보듬어준 옛 스승을 기리는 회고전이었다. 오프닝 행사에는 예전 방화동 화실 식구들도 몇몇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동안 수고 많이 했잖아. 좀 쉬어야지. 그렇다고 마냥 무작정 쉬라는 건 아니고…

-그럼…

-이번 기회에 명명희 선생 작업실도 방문하고… 미공개 작품들이 얼마나 쌓였는지 확인하는 게 좋겠지? 선생 개인전 기획안도 한번 작성해 보고. 아, 참… 대전 시립 미술관에 좋은 전시회 있던데 거기 포함해서 몇 군데 둘러봤으면 해. 이번 기회에 우리 리온을 위해 서윤 씨 능력을 한 번 보여줘. 지금 우리가 원하는 건 바로 그거야.


최 관장은 ‘내’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했다. 우리라니. 그 ‘우리’ 속에 ‘나’는 존재하는 걸까.


-네… 알겠습니다.


서윤은 손바닥에 자국이 날 정도로 손을 꽉 움켜쥐었다. 이곳에서 과연 얼마나 더 버텨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창밖에는 어둠이 일렁이고 있었다. 먼 거리에서, 아득한 밤의 소음이 번져왔다. 그건 먼 우주에서 실려 온 정체 모를 수신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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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김미진

 

그림을 끝까지 지켜낸 알바생은 신음을 삼킨 채 이를 악물고 버텼다. 서윤도 화폭이 기우는 쪽으로 휘청였으나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두 사람은 그림 양 끝을 꼭 붙잡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아?


서윤이 묻자, 알바생이 ‘괜찮아요’라며 애써 웃어 보였다.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에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때, 등 뒤에서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대체 뭐 하는 거야?


리온 갤러리의 대표, 최희숙 관장이었다. 하필 그 순간,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관장이 1층 메인 전시실로 막 들어서던 참이었다.


-미친다 정말. 지금 이 작품이 얼마짜린지 알아?


쓰러진 사다리와 긴장한 직원들을 훑어보던 그녀는 곧바로 서윤이 바치고 있는 그림으로 시선을 옮겼다. 서윤이 무언가 말하려는 찰나, 관장은 손을 들어 그 말을 잘랐다.


-이 작품 훼손되면 누가 책임질 건데? 너야?


조명을 조정하던 남자 직원이 한쪽 다리를 절며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사다리가 갑자기 흔들려서…

-많이 다쳤어요?


서윤이 조심스레 물었다. 남자 직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고, 알바생은 어깨를 으쓱하다가 어정쩡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최 관장의 관심은 오로지 그림 상태에만 쏠려 있었다. 그녀의 안경 너머 시선은 차가웠고, 말투는 그보다 더 냉랭했다.


-이 정도라 그나마 다행이군. 쯧쯧, 칠칠맞지 못하게… 앞으로는 좀 더 조심들 하시지, 응?


직원들은 숨을 죽인 채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서윤 씨, 잠깐 내 사무실로 올라와.


최 관장은 마지막 말만 툭 던지곤 엘리베이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알바생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서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 미소는 금세 사라졌다. 손으로 떠받치고 있는 그림의 무게가 조금 전보다 훨씬 묵직하게 느껴졌다.

 

1968년에 처음 문을 연 리온 갤러리는 인사동 거리에서 한국 근현대 미술을 선도하며, 역사 깊은 화랑으로 자리매김했다. 이곳에서는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박서보, 이우환, 정창섭, 최욱경 같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뿐 아니라, 가끔은 샤갈, 마티스, 클림트, 라울 뒤피, 앤디 워홀 같은 외국 거장들의 작품도 특별 전시되었다. 또한, 장래성 있는 젊은 작가들을 꾸준히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 제작과 프로모션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왔다.


관장실은 리온 갤러리의 지난 세월을 집대성한 기록과 자료로 가득한, 말하자면 작은 보물창고였다. 리온의 실질적 오너이자 관장인 최희숙은 60대 후반의 여성으로, 한국 화단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었다. 그녀의 출발은 지금은 철거된 소공동 반도호텔 지하 갤러리의 카운터였다. 막 여고를 졸업한 풋풋한 나이에 그곳에서 맺은 화가들과의 인연은, 시간이 흐르며 한국 화랑계를 대표하는 화상으로 성장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3층 복도 끝, 리온 갤러리 관장실에 들어서면, 40평 남짓한 공간에 오래된 자료와 화집, 엽서, 도록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최희숙 관장은 데스크에 앉아 서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응시했다. 그 번뜩이는 표정에 서윤은 순간, 어깨가 움츠러드는 기분을 느꼈다.


-작품 배치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왜 그 작품을 이제야 옮기는 거지?


그녀는 안경테를 손끝으로 밀어 올리며,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


-최 회장님 사모님께서 그 작품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지 않으면 다시 가져가겠다고 하셔서요.


서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회장 사모님까지 나서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좀 지나치지 않나?

-아, 당연히 그렇지요. 그런데…

-우리가 정당하게 빌린 거잖아.

-물론이죠. 그런데, 이번 전시회를 위한 협찬이라서…

-답답할 노릇이네.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

-네? 그게 무슨…

-‘공작 도시’ 시리즈는 함께 묶어서 전시해야, 그 후광을 살릴 수 있지. 안 그래?

-네, 당연히… 이번 회고전 도록에도 차례대로 함께 실려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작품은 ‘공작 도시’ 시리즈 중에서도 대표작이야.일반에게 공개되는 것도 거의 처음이잖아. 그런 작품을 뚝 떼서 따로 전시한다고? 맨 앞에만 전시하면 장땡인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워낙에 고집이…

-알았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러니 그 작품은 원래 자리로 돌려놓도록 해.

-아, 네에… 알겠습니다.


그녀는 옛 스승의 전시회를 끝까지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실에 어깨가 무거웠지만, 정작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현실 앞에서 마음이 흔들렸다. 관장이 알아서 한다니, 더는 나설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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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김미진


월요일 오후, 인사동의 리온 갤러리는 전시회 준비로 분주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툴루즈 로트렉’이라 불리던 손문기 화백의 회고전으로, 오프닝 행사는 이틀 뒤인 수요일 정오에 열릴 예정이었다. 내일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휴관일이라서 오늘 안으로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다.


-부딪치지 않게 조심해.

-네, 걱정하지 마세요.


서윤은 새로 들어온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커다란 캔버스를 옮기고 있었다. 나무 액자까지 씌워진 100호짜리 그림은 두 사람이 간신히 들 수 있을 만큼 묵직했다. 다른 방해물들을 피해 가며, 두 사람은 그림 표면이 가능한 한 흔들리지 않게 조심스레 이동했다. 그때 최승주 실장이 2층 사무실로 올라가려다 그녀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나 선생. 전시 화보와 도록은 어떻게 된 거야?

-수요일 아침에 인쇄소에서 직접 가져오기로 했어요.

-초대장 발송은?

-지난주에 모두 완벽하게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중에 이걸 다 끝낼 수 있겠어?


그가 짜증 섞인 표정으로 전시실을 둘러보며 던진 말이었다. 아직 설치를 마치지 못한 작품들이 벽을 따라 여럿 남아 있었다.


-거의 다 됐어요. 이제 작품에 레이블만 붙이면 됩니다.


서윤이 미소를 지으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나 선생, 분류 번호, 사이즈, 사용된 재료, 하나하나 꼼꼼히 잘 점검해. 저번처럼 뒤섞이는 일 없도록 조심하고. 다들 아셨죠?


최 실장의 목소리가 한 톤 높아지자,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불편한 기색으로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그는 관장 최희숙의 남동생이자, 갤러리 운영 전반에 막강한 권한을 쥔 인물이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공기가 싸늘해지며 사람들의 마음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긴장과 불안이 번져갔다. 리온 갤러리에 5년 넘게 몸담아온 서윤조차도 최 실장 앞에서는 업무에 필요한 말 외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이곳에서 오래 일한다는 건, 능력보다도 침묵과 인내를 먼저 배웠다는 뜻이었다.


서윤은 리온 갤러리의 큐레이터였다. 전시 기획과 작가 섭외, 작품 리스트 정리, 도록 제작과 홍보 등 갤러리 실무의 중심을 맡고 있었다. 그녀는 늘 생각했다. 전시란 곧 균형의 예술이라고. 주제의 통일성과 시선의 흐름, 여백의 배치와 조명 각도 하나하나가 철저한 계산 아래에서야 비로소 조화를 이룬다고 믿었다. 그 조율은 캔버스 너머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동료들 사이의 공기, 말의 온도, 침묵의 간격까지. 서윤은 전시를 준비하는 공간 전체를 ‘하나의 작품’처럼 가다듬고자 했다.


최 실장이 자리를 뜨자, 전시실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다들 조금만 더 힘내요. 오늘 오버타임을 해도, 내일은 푹 쉴 수 있잖아요.


서윤이 ‘내일’이라는 단어에 살짝 방점을 찍으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직원들을 둘러보았다.


-내일? 아, 내일!


직원 하나가 긴 숨을 내쉬며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 다시 힘 좀 써봐요.


서윤의 말에 알바생이 다시 캔버스를 번쩍 들었다. 그 바람에 액자가 휠 듯 출렁이며 캔버스 표면이 크게 흔들렸다.


-아아, 맙소사! 작품은 아기 다루듯 천천히.

-아, 죄송합니다.


알바생이 얼굴을 붉히며 난감해했다.


이 전시는 서윤에게도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손문기 화백에게서 직접 그림 지도를 받으며 미술의 기초를 다졌다. 방화동 공항시장 근처에 있던 손 화실은 스승의 거처이자 작업실이었고, 입시생과 취미생이 함께 모여 그림을 익히던 공간이기도 했다. 드나드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그곳에는 늘 가족 같은 친밀감이 흘렀다.


선생은 늘 제자들에게 따뜻하고 자상했다. 작고 구부정한 몸이었지만, 그 안에서는 묵직한 에너지가 배어 나왔다. 깊고 맑은 눈매와 걸걸한 숨소리, 말투와 웃음, 드로잉 도구를 다루던 손끝의 습관과 팔레트 위에 물감을 짜던 손놀림까지, 모든 것이 아직도 기억 속에 또렷했다. 선생은 가끔 화실 식구들과 야외 스케치를 다녀오곤 했다. 김포의 한 시골 마을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고, 가져간 재료로 소박한 한 끼를 나누던 날들. 그가 남긴 그림일기와 예술과 삶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 그 모든 것이 겹겹이 쌓여,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서윤을 만들어주었다.


리온 갤러리는 인사동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와 역사를 자랑하는 화랑이었다. 이곳에서의 전시는 곧 한국 미술계 한가운데에 작가의 이름을 새기는 일이기도 했다. 손 화백의 존재감은 이제 분명한 보폭으로 한국 화단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미술 교과서에서 그의 이름을 마주하게 될지도 몰랐다. 이미 세상을 떠난 스승의 회고전을 직접 준비하고 있는 지금, 서윤에게 이번 전시는 끝까지 책임지고 감당해야 할 하나의 과제이자 의무였다.


-그렇지, 그렇지. 조금만 더 왼쪽으로…

-넵!


알바생의 이마에는 땀이 번들거렸다. 점심 이후 그는 거의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불평 한마디 없이 일하고 있는 그를 보며, 서윤은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옮기고 있는 작품은 손 화백의 1980년대 대표작, ‘공작 도시’ 연작 중 하나였다. 마티에르의 질감을 밀도 높게 쌓아 올린 회색 화면 속엔, 무너진 철근과 도시 구조물이 서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뒤엉켜 있었다.


서울을 배경으로 한 도시 풍경화에는 거대한 기계 도시의 혼란과 욕망이 거칠고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하철 2호선 공사로 뒤엉켰던 도심, 해머 드릴의 쇳소리. 데모 진압대가 쏜 최루탄 가스와 시위대의 함성,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자동차들, 무질서하게 파편화된 거리의 모습. 그 속에 잠복한 디스토피아적 환영과 자본주의의 그늘을 손 화백은 누구보다 일찍, 누구보다 날카롭게 포착해 냈다.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로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서윤은 여전히 회색 지대의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선생의 그림 앞에서, 그 시대를 통과해 온 자신의 그림자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되살아나는 듯했다. 알바생과 ‘공작 도시’를 들고 중앙 갤러리 입구로 향하던 그때, 사다리가 비틀거리며 한쪽으로 쏠리는 모습이 서윤의 시야에 들어왔다.


-앗, 조심해!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다리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조명을 조정하던 남자 직원은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다리가 쓰러지면서 이동 중이던 '공작 도시'를 그대로 덮칠 기세였다.

그 순간, 알바생이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등으로 사다리를 밀쳐내며, 한쪽 팔로는 그림을 감쌌다. 간발의 차로 더 큰 충격을 막을 수 있었던 건, 그가 발등으로 그림 아래를 받쳐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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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김미진


도준은 땀에 흠뻑 젖은 채, 오대산 매표소 앞에 세워둔 4륜 구동 랜드로버로 돌아왔다. 십여 년 전에 한국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관의 영사가 귀국하며 남기고 간 차였다. 겉보기엔 제법 낡고, 세월의 흔적도 역력했지만 달리는 데엔 아직 큰 문제가 없었다. 필요할 때마다 도준이 직접 손을 대어 엔진을 만지고 낡은 부품을 갈아 끼워온 덕이었다. 그렇다. 그는 그런 일을 혼자서 해낼 수 있었다. 그의 특별한 재주 중 하나는, 뭐든지 잘 뜯어고친다는 점이었다.

 

손재주는 어려서부터 유별난 구석이 있었다. 그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보다 속을 들여다보는 일에 더 흥미를 느꼈고, 한번 분해한 것은 기어이 다시 조립해 내는 묘한 집중력과 끈기를 보이곤 했다.물론 그 실험이 매번 성공한 건 아니다. 덕분에 집 안의 라디오며 시계가 수난을 겪는 일도 잦았다.


부엌 창가에 놓인 라디오가 이유 없이 먹통이 되기라도 하면, 그는 어머니의 꾸중을 피해 달아나거나 동네 전파사의 딱딱한 의자에 오래 앉아 있어야 했다. 양팔에 토시를 낀 수리공 아저씨가 돋보기를 들여다보며 작은 부품을 갈아 끼우고 납땜질을 하는 동안, 어린 도준은 몇 시간이고 꼼짝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외아들이었던 도준은 부모님의 아낌없는 사랑 속에서 자랐다. 호기심 많고 늘 뛰어다니기 바쁜 아이였지만, 두 분은 언제나 곁에서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그 다정했던 나날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직 부모의 품이 간절하던 어린 시절, 도준은 양친을 잃고 덩그러니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유난히도 추웠던 그해 2월, 열세 살 도준은 잠시 강원도 고모 집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동대문 시장에서 옷감 장사를 하던 양친은 구정 대목 탓인지 간간이 전화만 할 뿐 좀처럼 데리러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도준은 결국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 너무 심심해. 빨리 좀 데리러 와. 안 그러면 나 혼자 서울 갈 거야.


어린 아들이 떼를 쓰듯 투정을 부리자, 부모는 그날 가게 문을 닫고 밤길을 달려 마침내 고모 집에 도착했다.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도준은 망설임 없이 짐가방을 챙겨 부모님을 따라나섰다. 칠흑 같은 어둠 속, 그들 일가족이 탄 소형 세단은 비포장도로 위를 덜컹거리며 밤의 정적을 깨웠다.


-준아, 편하게 눈 좀 감고 자렴.


엄마의 잔잔한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귓가를 포근히 감돌았다. 도준은 두 분의 웃음 섞인 대화를 들으며,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것이 마지막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강원도의 구불거리는 산길, 새벽 한 시 무렵. 비극의 그림자가 조용히 그들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잠결에 요란한 클랙슨이 들린 것도 같았다. 아버지가 몰던 세단은 마주 오던 트럭을 피하려다 미끄러졌고,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 차가운 계곡 아래로 추락했다.


어두운 혼돈 속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차는 이미 전복된 상태였다. 앞좌석에 탄 부모님은 피투성이로 정신을 잃고 있었다. 도준은 거꾸로 매달린 채, 차 안에서 필사적으로 ‘엄마’ ‘아빠’를 부르며 몸부림쳤다.


처음엔 희미한 신음이 들려왔지만, 곧 그마저도 사라졌다. 그는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꼼짝할 수 없었고, 그 끔찍한 순간을 지켜보며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그 경계에 멈춰 서 있었다. 죽음은 너무도 잔혹한 얼굴로 다가왔고, 그날의 공포는 어린 소년의 영혼 깊은 곳에 새겨졌다.


119 구조대가 도착한 건, 여명의 빛이 산자락을 타고 번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다 제 잘못이에요. 데리러 오라고 떼만 쓰지 않았더라면…


뜨거운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흘러내렸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리고 부모님의 죽음이 전부 자신의 탓이라는 죄책감은 오래도록 그를 괴롭혔다.


그의 일가친척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가까이 왕래하는 혈육이라곤 고모네 일가족이 전부였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고모마저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도준은 고모부를 아버지처럼 의지하며 살아갔다. 고모부에게는 아들 둘이 있었지만, 고종사촌들과는 나이 차이가 커 함께 어울릴 일이 거의 없었다. 도준은 일찍이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세상의 무게에 서서히 익숙해지며 자신만의 삶을 배워나갔다.


부모님이 남긴 얼마간의 재산 덕분에 당장은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지만, 대학을 마칠 무렵엔 은행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등반과 등산 장비에 가진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결과였다.


부모님이 여전히 살아계셨다면, 매일 산에서 살다시피 하는 아들을 두고 무엇이라 했을까. 어머니라면 끊임없이 잔소리를 쏟아냈을 테고, 아버지는 중간에서 방패막이 되어주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뿐인 외아들에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분들이 아닌가. 문득 부모님의 얼굴이 또렷이 떠올랐다. 그리움인지, 체념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스며들며 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오대산 등산로 입구에는 산행을 준비하는 등산객 서너 명이 모여 있었다. 매표소를 온종일 지키는 나이 든 직원이 도준을 보자 창구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을 걸었다.


-오늘도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오는 거요?
-네, 그러믄요.


도준은 뒤를 돌아보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날씨도 추운데 기운이 펄펄 솟는구려. 지극정성일세. 대체 무슨 일 하는 사람이기에 이렇게 날마다 산을 뛰어다니는 거요?
-운동 삼아 그러는 거죠. 그럼, 또 뵙겠습니다.

-조심해서 가요.

 

매표소 직원은 손을 흔들고는 다시 창구 안으로 고개를 집어넣었다.

 

도준은 랜드로버 운전석에 올라 엔진이 예열되기를 잠시 기다렸다. 차창 너머 보이는 나무들의 헐벗은 가지 사이로 촉촉한 봄기운이 감돌았다. 머지않아 연한 초록 새싹이 돋아나고, 풍성한 녹음이 능선을 따라 번져갈 것이다. 그는 땀이 밴 목덜미를 수건으로 한 번 훑어낸 뒤, 횡계에 있는 고모부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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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김미진

 

마침내 오대산 정상에 선 도준은, 겹겹이 이어진 능선들을 바라보았다. 초봄의 골짜기마다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고, 그 위로 맑고 싱그러운 공기가 가득 퍼져 나갔다. 주변은 깊은 고요에 잠겨 있었다. 자연이 드리운 정적 속에서, 그는 잠시 또 다른 세계의 입구에 서 있는 듯한 낯선 감각에 사로잡혔다. 배낭을 내려놓고 몸을 풀며, 스포츠 음료를 한 모금씩 음미하듯 마셨다. 차가운 이온수가 목을 타고 내려가자, 전신의 세포가 마치 스펀지처럼 그것을 빨아들였다.


오늘따라 유독 민혁과의 추억이 자꾸 떠오르는 이유는, 함께 자주 오대산을 오르던 시절이 그리워서일 것이다. 어쩌면, 오늘이 민혁의 생일이라서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그리운 옛 친구는 로체 남벽이라는 인생의 미결 과제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이제 남겨진 자가 친구가 가졌던 그 꿈의 무게까지 이어받아야 한다.


도준은 정상 정복만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정상에 오른 순간마저도 등반에 있어 하나의 과정이라 여겼다. 어떤 루트를 택하느냐, 어떤 방식으로 오르느냐가 더 중요했다. 그는 등반 중 마주하는 수많은 변수들을 분석하고, 거기서 최선의 해답을 도출하는 데 탁월했다. 특히 로체 남벽은 오랜 시간 그의 연구 목록에서 단연 최우선이었다.


도준은 이번에도 로체 남벽 8,350미터까지 최초로 오른 예르지 쿠쿠치카와 로베르트 파블로프스키의 기술을 적용할 생각이었다. 가볍고 빠른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은, 대규모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는 전통적 히말라얀 방식과 달리, 등반 루트와 속도, 시기까지 모든 판단을 스스로 내려야 하는 고독한 방식이다. 그만큼 더 큰 결단력과 강한 내면의 힘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경량 장비 하나로 신속하게 고도를 끌어올리는 방식은 순수한 등반의 성취감을 안겨주는 동시에 고소에서의 급격한 기후 변화에도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동료의 도움도, 세르파도, 고정 로프도 없이 오롯이 자신만을 믿고 나아가야 하기에 위험도는 극단적으로 높고, 체력 소모 또한 혹독하다.


로체 남벽은 베이스캠프를 떠나는 순간부터 3,300미터에 이르는 가파른 설벽이 기다린다. 발 디딜 틈조차 없어, 앞발로 포인트를 찍으며 첫걸음을 내디뎌야 하고, 수직 암벽에서는 수시로 눈사태와 스노우 샤워를 견뎌야 하며, 몸을 한 치씩 끌어올릴 때마다 폐를 짓누르는 공포와 맞서야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서 결국 남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하지만 등반은 정상에 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산을 끝까지 내려오기 위해서는 체력 안배가 생사의 갈림길이 되며, 올라갈 때 60을 쓰고, 내려올 때 40을 남겨두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다. 도준은 그 모든 과정을,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은 완전한 자유 등반으로 오르겠다고 결심했다.


눈사태와 암석 낙하를 피하려면 밤과 이른 새벽, 얼어붙은 눈을 딛고 오르는 것이 유리했다. 낮 동안 폭포처럼 무너지는 눈사태를 피해 충분히 휴식하고, 한밤중 상단부를 공략해 정상을 찍는 전략이었다. 단시간 내 홀로 정상에 닿고 돌아오기 위해선 폭발적 근력과 순발력, 초인적 집중과 의지, 무릎 꿇지 않는 투지와 끈질긴 정신력이 필요했다. 로체 남벽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벽이자, 대자연의 너그러움 없이는 허락되지 않는 영역이었다. 그 길은 어떤 이에게도 가볍게 열리지 않았다.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다. 서른다섯, 그의 나이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는지도 모른다. 체력이 바닥나기 전에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했다. 공기 희박한 허공에 매달려 직벽과 맞서 싸우며 끝까지 버텨내려면 단 한 번의 실수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도준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두려움은 어쩌면 신이 마지막까지 인간에게 남겨준 생존의 감각일지도 모른다. 수없이 맞서온 감정이지만, 이번만큼은 그 무게와 깊이가 달랐다. 이건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침묵의 경고. 정말 이 벼랑 끝에 다시 매달리겠다는 건가. 나는 거기서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나는 스스로를 죽음에 내맡기려 하고 있다. 이게 도대체 내가 하고 있는 일이란 말인가.


-아, 아니야.


그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잡념을 털어내자. 민혁의 이름조차 마음에서 지워버리자. 지금 필요한 것은 오직 로체뿐. 저 위에서 나를 위협하는 것은 육체의 한계가 아니라, 마음 깊숙이 자리한 불안이다. 그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와도 나는 꺾이지 않으리라. 이미 올라가기로 결심한 이상 그저 묵묵히 오를 뿐이다. 말도, 후회도, 돌아볼 이유도 없다.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다시금 의지의 불꽃이 타올랐다. 이는 투지가 아닌, 스스로를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냉정한 결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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