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의 나날들>1978. 리차드 기어 출연, 테렌스 말릭 감독
‘아름다움’은 유죄일까. 스크린이라는 캔버스 안에 시적 차원의 회화적 감각을 끝까지 밀어붙인 감독들이 있다. 최근 깊은 인상을 남긴 두 작품은 테렌스 말릭(Terrence Malick)의 영화 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의 붉은 사막(Red Desert)이다. 이들 감독은 사각의 스크린을 저마다의 화폭으로 바꾸어 놓았다.
작품 제목과 달리 ‘천국’이나 ‘사막’은 영화 속에 실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은유이며 상징이다. 부재가 남긴 갈증, 욕망의 목마름, 상처 입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추억의 환기일 뿐이다. ‘천국’보다 더 낯선 시간의 꼭짓점들을 지나고 있으면 문득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이들 감독은 어떤 마음으로 이런 영화를 찍었을까. 어떤 의도로 이토록 노골적인 아름다움을 펼쳐 보였을까.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인 엔드류 와이즈는 그림 'Christina's World'에서 광활한 대지의 텅 빈 풍경을 사실적인 기법으로 포착했다. 뒷모습의 여자는 고개를 돌린 채 저기 먼 지평선 끝에 있는 집을 바라본다. 영화 속 장면에도 그림과 닮은 집과 지평선, 그리고 비슷한 구도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여자의 얼굴을 우리는 영화를 통해 만날 수 있다. 탬페라에 가까운 매체로 그린 그림은 어딘가 거칠고 황폐한 기운을 전한다. 영화 속 장면은 서정적인 농경의 풍경시를 닮아 있다. 모티브가 된 그림에서 전해 오는 비극의 기미는 빌과 에비, 두 청춘의 안타까운 마음을 통해 애틋하면서도 거칠고 야성적인 정서로 다시 태어난다.
시카고 제철공장에서 일하던 빌은 우발적으로 공장장을 살해하고 동생 린다와 애인 에비를 데리고 도망친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텍사스의 어느 밀농장이다. 이곳에서 일자리를 얻은 빌은 에비를 자신의 동생이라 속이고 오빠처럼 행동한다. 젊은 농장주가 아름다운 에비에게 청혼을 하자 빌은 차라리 그와 결혼하는 편이 낫겠다며 그녀를 그쪽으로 떠민다. 먹고사는 일이 무엇보다 다급했던 시절이다. 빌은 에비를 온전히 소유할 수도, 제대로 보호할 수도 없다.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했던 그는 결국 삶이 안고 있는 감당하기 어려운 모순 속에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
스토리 라인은 곳곳에 빈 공백이 있고 결코 친절한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 일에는 ‘less is more’일 때도 있다. 이 영화가 바로 그렇다. 아름다운 풍광에 더 많은 무게를 두기 위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과감히 덜어낸 셈이다.
대신 낡은 삽자루 하나만 손에 들고도 독특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배우가 영화의 주요 장면들과 맞닿아 있다. 리차드 기어는 적어도 용광로에 톱밥을 밀어 넣는 각도쯤은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 바로 저거야!’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배우의 표정과 몸짓. 석탄재가 떠다니는 어두침침한 공장 배경을 뒤로하고 카메라는 어느새 색채의 향연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푸른 허공을 가로지르는 기차, 파도처럼 일렁이는 밀밭. 텅 빈 듯 멀어지는 들판 끝에서 노스탤지어 어린 석양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말릭 감독은 하루에 단 한 시간, 석양이 지는 순간을 기다려 이 영화를 촬영했다고 한다. 그가 담아낸 영상 속 저녁노을은 서서히, 매혹적인 빛으로 화면 전체를 감싸 안는다. 스틸 사진에 응고된 장면만으로는 그 황혼의 깊은 정조를 온전히 전할 수 없다.
너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비평가들이나 사실주의 감독들은 말한다. 현실이라는 엄혹한 실체는 그늘진 냄새와 비속한 언어들 속에서 어수선하게 뒤엉켜 있다. 저토록 달콤하고 환상적인 장면들은 진실의 눈을 가리는 일종의 ‘사기’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 등장하는 주인공 레스터(케빈 스페이시)의 사무실 책상에는 ‘Look Closer’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가까이 보라. 그러나 피사체와의 지나친 근접은 때로 현실을 위태롭게 만든다.
우리는 완벽하게 푸른 잔디밭에 감동한다. 그러나 어떤 잔디밭도 완벽하지 않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잔디 사이로 솟아난 잡초들, 벗겨진 흙더미와 자갈, 어디선가 굴러온 쓰레기 봉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서 바라보던 그 고른 색감도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 잡초와 이물질이 뒤섞인 그 자리야말로 잔디밭이라는 실체의 진짜 모습이다. 이 우주 어디에도 완벽한 것은 없다. 아름다움에 대한 미적 추구 또한 완전성과는 거리가 멀다.
붉은 사막의 추상적인 화면과 강렬한 색채 대비는 현실 속 소외와 소통 부재의 감정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극도로 예민해 보이는 여주인공과 그녀를 향한 욕망을 숨기지 못하는 한 남자의 시선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다. 물리적인 거리는 가깝지만, 그 심리적 간극은 서로를 이해하고 끌어안을 수 없을 만큼 멀다.
영화감독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피사체를 훔쳐본다. 그리고 세상의 눈은 스크린을 통해 그 감독을 훔쳐본다. 영화란 결국 서로가 서로를 훔쳐보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감독은 자신이 훔쳐본 장면들을 다시 대상화하고 재배열한다. 그 과정을 통해 기억을 복원하고 꿈을 새롭게 해석한다.
첫 번째 영화를 찍을 돈만 마련된다면 누구든 영화감독이 될 수 있다고 트뤼포가 말했던가.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또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꿈의 사슬들이 서로 엇갈리며 찰그랑거린다.
엷은 안개처럼 다가와 마음에 내려앉는 이미지들.
너무 아름다워서, 치명적인 작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