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나날들>1978. 리차드 기어 출연/테랜스 맬릭 감독

 

‘아름다움’은 유죄일까. 스크린이라는 캔버스 안에 시적 차원의 회화적 감각을 맘껏 담아낸 감독들이 있다. 최근에 감명 깊게 본 두 작품은 테렌스 감독의 ‘천국의 나날들’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붉은 사막’이다. 이들 감독들은 사각의 스크린을 자신만의 화폭으로 만들어 버렸다.

 

 

<붉은 사막>1964/ 이탈리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

 

작품 제목과 다르게 ‘천국’이나 ‘사막’은 영화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은유이며, 상징이며, 부재의 갈증, 욕망의 목마름, 아픈 영혼을 쓰담듬는 추억의 환기일 뿐이다. ‘천국’보다 낯선 시간의 꼭짓점들을 지나다 보면 문득 그런 의문이 떠오른다. 이들 감독들은 무슨 마음으로 이런 영화를 찍은 것일까. 어떤 의도로 이토록 노골적인 아름다움을 펼쳐 보인 것일까.

 

 

 

 

 

 

 

 

 

 

 

 

 

 

모티브 이미지 <크리스티나의 세계>1948 엔드류 와이스/ 영화<천국의 나날들>리차드 기어와 브룩 아담스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중 하나인 엔드류 와이즈는 광활한 대지의 텅 빈 모습을 사실적인 기법으로 포착했다. 뒷모습의 여자는 얼굴을 돌린 채 저기 먼 지평선 끝에 있는 집을 바라본다. 영화 속 장면에도 그림과 흡사한 집과 지평선과 구도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여자의 얼굴을 우리는 영화를 통해 만날 수 있다. 탬페라 비슷한 매체로 그린 그림은 어딘가 거칠고 횡폐한 느낌을 던져준다. 영화 장면은 서정적인 풍경의 농경시를 닮고 있다. 모티브 그림에서 전해 오는 비극적인 기미는 빌과 에비, 두 청춘의 안타까운 마음을 통해 애뜻하면서도 거칠고 야성적인 모습으로 재창조 된다. 

 

시카고 제철공장에서 일하던 빌은 우발적으로 공장장을 살해하고는 동생 린다와 애인 에비를 데리고 도망친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텍사스 어느 밀농장이다. 이곳에서 일자리를 얻은 빌은 에비를 자기 동생이라 속이고 오빠처럼 행동한다. 젊은 농장주가 아름다운 에비에게 청혼을 하자 빌은 차라리 그와 결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애비를 그쪽으로 떠민다. 먹고 살 일이 무엇보다도 다급했던 당시의 일이다. 빌은 에비를 온전히 소유할 수로 보호할 수도 없다. 누구보다도 에비를 사랑했던 그는 결국 삶의 감당할 수 없는 모순 속에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 스토리 라인은 빈 공백이 많고 결코 친절한 흐름으로 일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 일에는 'less is more'일 때도 많다. 이 영화가 그렇다. 아름다운 풍광에 좀더 치중하기 위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적당히 걸러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대신 낡은 삽자루 하나만 손에 들고도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배우가 영화의 주요 장면들과 밀착되어 있다.  리차드 기어는 적어도 용광로에 집어넣는 톱밥의 각도를 알고 있다.  ‘그래, 저거야 저거!’하는 감탄사를 절로 자아내는 타고난 배우의 표정, 재능의 몸짓... 석탄재가 부유하는 어두침침한 배경을 버려둔 채 카메라는 재빨리 색채의 향연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푸른 허공을 가로지르는 기차와 파도처럼 일렁이는 밀밭. 텅 빈 듯 멀어지는 들판 끝에서 노스탈지 가득한 석양이 한없이 지고 있다. 테렌스 감독은 하루에 한 시간씩, 석양이 질 때를 기다렸다가 이 영화를 촬영했다고 한다. 그가 담아낸 영상 속 저녁노을은 천천히, 아주 매혹적인 모습으로 화면 전체를 감싸 안는다.  스틸 사진에 응고된 영상만으로 어찌 우수어린 황혼녘 이미지들을 다 전달할 수 있겠는가.  

 

 

 

 

 

 

 

 

 

 

 

너무 아름다운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비평가나 사실주의 감독들은 말한다. 현실이라는 엄혹한 실태는 그늘진 향기와 비속한 언어들로 대충 얼버무려져 있다. 저토록 달콤하고 환상적인 장면들은 진실의 눈을 가리는 일종의 ‘사기’라고 할 만도 하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 레스터(케빈 스페이시)의 사무실 책상에는 ‘Look Closer’는 글귀가 붙어 있다. 가까이 보라! 그러나 피사체와의 근접 거리가 때론 현실을 위태롭게 만든다.

 

우리는 완벽하게 푸른 잔디밭에 감동한다. 그러나 어떤 잔디밭도 완벽하지 않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잔디들 사이에 삐죽 올라온 잡초들, 벗겨진 흙더미, 자갈, 어디선가 굴러온 쓰레기 봉지 따위로 지저분한 모습이 드러난다. 멀리서 바라본 것처럼 잔디밭의 색깔도 그리 아름답지 않다. 잡초와 이물질로 가득한 그 현장이 잔디밭이라는 실체의 참모습이다. 이 우주 어디에도 진실로 완벽한 것은 없다.  아름다움에 대한 미적 추구 역시 완벽성과는 거리가 멀다. 

 

 

<붉은 사막>1964/ 이탈리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

 

‘붉은 사막’의 추상적인 면과 강렬한 색채 대비는 현실 속 소외의 감정과 소통 부재를 암시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극도로 예민해 보이는 여주인공과 그녀에 대한 욕망을 감추지 못하는 한 남자의 불온한 시선이 벽 하나를 두고  대치한 모습이다.  그들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그 심리적 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없는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붉은 사막>1964/ 이탈리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

 

영화감독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피사체를 훔쳐 보고 세상의 눈은 스크린을 통해 그 감독을 훔쳐 본다. 영화는 결국 서로가 서로를 훔쳐보는 행위이다. 영화감독은 자신이 훔쳐본 것들을 대상화 하고 다시 조합해 낸다. 그런 과정을 통해 추억을 복원하고 꿈을 재해석 하는 것이다. 첫번쨰 영화를 찍을 돈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구든 영화감독이 될 수 있다고 트뤼포가 말했던 것 같다. 과연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것일까. 꿈의 사슬들이 서로 엇갈리며 찰그랑거린다. 엷은 안개 처럼 다가와 어느새 스며드는...너무 아름다워서 치명적인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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