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김미진

 

도준은 거침없는 동작으로 깎아지른 오대산 절벽을 기어올랐다. 손바닥은 흡반처럼 바위에 착착 들러붙고, 손가락 하나하나가 차가운 바위의 미세한 틈을 정확히 짚어냈다. 등에는 로체에 오를 때 짊어질 무게와 비슷한 배낭을 멘 채였다. 그러나 지상에서의 무게와 고도에서의 무게는 질적으로 달랐다. 표고차가 커질수록 중력의 압박은 천근만근으로 증폭되기 마련이었다.


앞으로의 트레이닝 동안 그는 배낭 무게를 조금씩 늘려갈 작정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이 과정이 고통 속에서도 분명 성장의 발판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내년 5월의 로체 남벽 등정을 준비하며, 그는 체력을 조금씩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무거운 장비와 모래주머니를 두른 채 산등선을 서너 시간씩 내달리는 건 기본이었다.


한 손 턱걸이, 팔굽혀펴기, 거꾸로 매달리기, 들어올리기, 수영 같은 훈련도 빠짐없이 이어졌다. 히말라야에서 혼자 버티기 위해서는 과학적이고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8천 미터급 고지에서는 강인한 육체와 정신만이 유일한 무기였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모든 근육을 더욱 정밀하게 단련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몸이 고달플수록 마음은 더욱 굳건해졌고, 정신은 고도의 집중력으로 투명해졌다. 인간의 한계를 매일 갱신하는 훈련은 더 이상 고행이 아닌, 오히려 해방의 순간이 되었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로체 남벽을 향해 있었다. 그곳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도준에게 주어진 운명이었다. 그 운명은 필연처럼 끊임없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존재를 이끌어갔다.


로체의 크레바스 같은 빙벽 낭떠러지에서 친구 민혁을 잃은 후, 벌써 8년이 흘렀다. 그날의 비명처럼 터져나간 자일, 그리고 눈보라에 파묻힌 계곡의 침묵은 여전히 가슴 깊은 곳 풀리지 않은 한으로 남았다. 영영 아물지 않을 그 상처에는 상실의 고통이 피처럼 고여 있었고, 도준은 자신이 민혁 대신 살고 있다는 죄의식을 좀처럼 떨쳐낼 수 없었다.


그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곱씹었다.


그때 내가 먼저 내려갔더라면...’


한순간의 우연이 결국 생과 사의 향방을 엇갈리게 했다. 되돌릴 수도, 지울 수도 없는 그 찰나의 순간. 이제 남은 건, 민혁 대신 숨을 쉬고 있다는 살아남은 자의 뼈아픈 자각과 아직 말라붙지 않은 상흔뿐이었다.


도준과 민혁은 고등학교 시절, 우이동에서 출발해 북한산 백운대 능선을 오르던 첫 동계 등반에서 서로를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둘은 말없이 통하는 동질감을 느꼈고,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깊은 교감이 형성되었다. 산을 향한 순수한 열정은 곧 끈끈한 우정으로 이어졌고, 청소년기의 그들의 관계는 바위처럼 단단해져,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이 뿌리내렸다.


민혁은 작은 체구에서 비롯된 놀라운 끈기와 추진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산을 대하는 감각은 태어날 때부터 몸에 밴 듯 정확했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언제나 선두에 서서 길을 여는 대담함이 있었다. 다만, 긴 호흡으로 먼 걸음을 내딛는 일에는 다소 서툴렀다. 도준과 민혁은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을 지녔지만, 그들은 본능적으로 서로의 장단점을 파악하며 상호 보완적인 자일 파트너가 되었다. 험난한 고비마다 함께 견뎌낸 세월은 그들의 동지애를 더욱 굳게 다져주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비가 조용히 내리던 오후였다. 도준과 민혁은 모리스 에르조그의 최초의 8000미터를 처음 펼쳐 들었다. 1950, 프랑스 원정대가 인류 최초로 안나푸르나에 오른 기록이 담긴 책이었다.


원정대의 리더였던 에르조그는, 손가락과 발가락 대부분을 잃는 대가를 치르면서도 정상에서 느낀 황홀한 기쁨을 생생히 전했다.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던 인간 정신의 불꽃이, 페이지마다 깊게 새겨져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산악인들의 성서처럼 전해져 온 이 책의 첫머리에는 그의 목소리처럼 짧지만 가슴을 파고드는 한 문장이 있었다.

 

There are other Annapurnas in the lives of men.


사람들의 인생에는 또 다른 안나푸르나가 있다.

 

책장을 넘기며, 도준과 민혁은 오직 무산소 등반만이 주는 독특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지구상에는 모두 14개의 8000미터급 봉우리가 있다. 그중에서도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곳은 로체 남벽이었다. 수많은 산악인의 우상이던 라인홀트 메스너조차 끝내 오르지 못한, 악명 높은 벽. 성난 짐승처럼 거칠고 잔혹한 그곳이, 오히려 더욱 강렬한 유혹으로 다가왔다.


그로부터 9년 후인 1989, 폴란드의 전설적 등반가 예르지 쿠쿠치카가 로체 남벽 8,350미터 지점에서 추락해 생을 마감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의 죽음은 전 세계 산악인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직 아무도 넘지 못한 벽이 있다는 사실이 모두의 흥미를 자극했다. 도준과 민혁 역시 이 사건에 깊은 자극을 받은 터라, 마침내 로체 남벽을 향한 현실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가자. 언제까지 꿈만 꿀 거야?

-메스너는 중간에 포기했고, 쿠쿠치카는 꼭대기에서 밧줄이 끊어졌지. 우리가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진 않아. 둘 다 알파인 스타일로 도전했잖아. 관건은 속도야. 최대한 빨리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

-쿠쿠치카가 8,350미터까지 갈 수 있었던 건, 파트너가 있었기 때문일 거야.

-그들은 실패했지만, 우린 다를지도 몰라.

-우리가 해낸다면 세계 최초야. 메스너도 우리 이름 보면 놀라겠지?

-신문에 우리 얼굴 나오면, 메스너도 씁쓸하겠지. 근데 어쩌겠어. 우리가 미래인 걸.


그해 가을, 마침내 네팔 땅을 밟은 두 청년의 눈빛은 결연한 의지로 불타올랐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이한 결단의 순간, 이제는 그 무엇도 그들의 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운명처럼 다가온 도전 앞에서, 그들의 결심은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굳건했다.


루클라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뒤, 남체와 탕보체, 추쿵을 지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그들은 중앙 루트를 개척하며 8,511미터 정상까지 단숨에 오르겠다는 열망으로 가슴이 뜨거웠다. 로체샬을 7,100미터까지 오르며 고소 적응을 마친 뒤, 라마제를 올린 다음 드디어 본격적인 등반 길에 나섰다. 6,400미터, 아슬아슬한 마의 구간을 간신히 넘은 뒤에도 그들은 여전히 위협적으로 치솟은 급사면을 따라 쉼 없이 올라갔다. 하늘은 내내 맑았고, 이대로라면 곧 정상을 밟을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었다.


-조금만 더 힘내.

-네 걱정이나 해.


두 친구는 서로를 다그치듯 격려하며, 한 번 떨어지면 끝이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몸을 위로 밀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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