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7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러분이 잠자리에 들면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상상해 보자. 당신은 죽는다 .당신은 죽고 내일 아침부터 다른 사람이 당신의 삶을 대신 산다. 그는 여러분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다. 모든 희망, 꿈, 두려움, 소망을 기억한다. 그는 자신이 당신이라고 생각하고 당신의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전날 밤 잠자리에 들었던 그가 아니다. 당신은 겨우 오늘 아침부터 존재했을 뿐이고 오늘 밤 눈을 감을 때까지만 존재한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삶에서 실제적으로 달라지는 점이 있을 까? 달라진 점을 눈치챌 수는 있을까?p19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미키7이다.

미르가르드라는 행성을 떠나 얼음으로 뒤덮인 행성 니플하임에서 소모품 역할을 하는 작업자인 익스펜더블.

익스펜더블은 항성 사이를 이동하는 동안 우주선 외부를 수리하거나 개척지 동식물에 노출되거나 필수 의약품 임상 실험에 참여하고, 적대적인 토착 생명체가 있으면 전투에 투입되는 등…새로운 개척지를 찾는 우주선에서 온갖 위험한 상황에서 기계보다 인간의 몸이 훨씬 더 오랫동안 견딜 수 있고 기계로는 할 수 없는 의학 실험 등에 필요하고 기계보다 교체하기 훨씬 쉬운 존재이다. 그야말로 소모품. 


미키 반스에서 시작해 미키2, 미키3,..6번의 죽음을 경험하고 일곱 번째 생을 사는 미키7.

이야기는 미키7이 일곱 번째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다행히 크리퍼(개척지 생명체)에게서 벗어나 살아 돌아왔지만, 손실 처리된 자신 대신 재생 장치에서 복제된 미키8이 침대에 누워 있다.


미키7과 미키8은 공존할 수 없다. 둘 중 한 명이 죽거나 모두를 속여 둘이 공존하거나.

그렇다면 모든 기억과 인격을 똑같이 가지고 있는 미키7과 미키8은 같은 존재인가? 다른 존재인가? 


에잇은 왼손을, 나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우리는 손을 모아 쥐고 동시에 외쳤다.

“하나……”

“둘……”

“셋……”

“가위, 바위, 보!”

보를 말하기 전까지 나는 바위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나라는 사실이 생각났고, 그렇다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보자기를 내야겠지? 에잇이 이생각도 하고 있을까? 내가 보자기를 낼 거라 생각하고 가위를 낼 수 도 있다. 그럼 바위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결정을 바꾸기에는 늦은 마지막 순간이 왔고 내 손은 아직 주먹을 쥐고 있었다.p63


학교에서는 전쟁에 여러 이유를 붙였기에, 나는 인종이니, 종교니, 자원이니 정치 철학이니 하는 으레 시민전쟁의 원인이 되는 문제들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으려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료에 따르면, 이 전쟁이 시작된 이유는 까마귀와 비슷하게 생긴 토착 조류에게 지각이 있다면 그들을 보호하고 존중해야 하는지, 먹을 만하다면 양념에 재웠다가 그릴에서 한 시간 동안 구워야 하는지를 놓고 의견이 갈렸기 때문이다.p209


어이없으면서도 공감이 간다. 


서로 만나게 되었을 때 개척민들은 끊임없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행성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시간. 시간이 열쇠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것 뿐이다.p372


책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 분쟁, 차별과 배제 등을 베이스로 상상을 나래를 끝간 데 없이 펼친다. 

곧 봉준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다고 한다. 

이 매력적인 이야기가 봉감독의 손에서 어떤 영화로 탄생할 지 자못, 정말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나답게! 자기방어 수업 발견의 첫걸음 6
박은지(데조로)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기 방어의 궁극적 목표는 상대와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어릴 적 합기도를 비롯해 다양한 격투기를 배웠다. 다양한 생명이 건강하게 공존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 2011년부터 자기방어 교육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 초등학생부터 80대까지, 장애나 질환이 있는 사람을 포함하여 활발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자기 방어 수업의 세 가지 열쇳말로 ‘자기’, ‘방어’, ‘훈련’을 제시한다. 


  1. ‘자기’ 자기 발견을 뜻한다.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투명하게 몸과 마음을 바라보는 시간

  2. ‘방어’ 다른 사람과 나 사이에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연습

  3. ‘훈련’ 지난 경험을 떠올려보고 지금의 내가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대응할지 상상해보고 호신술을 배움.


책은 ‘자기방어 수업’의 교재이다. 한 단원씩 마무리가 될 때마다 연습을 할 수 있는 워크숍이 친절하게 실려 있다. 앎을 연습함으로써 지식의 체화가 가능하게 해준다.



1부 자기: 발견하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견하는 시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몸과 소통하여 나에게 숨겨진 힘을 찾고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며 침착하게 대응하는 연습을 하는 시간


많은 사람들이 연예인들의 ‘만들어진’ 몸을 보고 비교하며 몸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회에서 몸을 바꾸지 않는 사람은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정상과 보편을 나누는 기준이 획일적으로 만들어진 사회는 많은 사람들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결국 비교는 누군가를  ‘비’참하게 만들거나 혹은 ‘교’만하게 만든다. 이런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비교를 계속하는 장치로 TV와 같은 대중 매체 그리고 SNS가 있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011778.html


페이스북 내부 연구진은 지난해 3월 내부 게시판에 올린 프레젠테이션 자료에서 “10대 소녀의 32%는 자신들의 몸에 대해 불만을 느낄 때 인스타그램이 더 비참하게 만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또 “인스타그램에서의 비교는 젊은 여성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묘사하는지 변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신체에 대한 인식에 인스타그램이 큰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다.

앞서 2019년 연구에서는 “10대들이 불안과 우울 증가의 원인으로 인스타그램을 지목했다”며 “이런 반응은 연령대와 상관 없이 일관되게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영국 사용자 중 13%는 자살 충동 원인으로 인스타그램을 지목했다고 밝혔다. 미국 사용자 중에서도 6%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다양한 이용자들의 게시물을 모아서 보여주는 ‘둘러보기’ 페이지가 이용자들을 유해한 콘텐츠에 빠져들게 할 수 있다고 지적한 연구도 있었다._2021.9.15. 한겨레신문



2부 방어: 우리를 지키기


직감을 이용하여 상황을 판단하고 각 상황별 대응방법을 알려주고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폭력에 대응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

자기 방어 훈련의 목표는 위험하거나 취약하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기술을 연습하고, 자신감을 높이는 것이다.



3부 훈련: 반복을 통해 능숙해지기

문제를 마주하고 경계를 세우면서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고 공동체에서 함께 협력하여 방어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


자기 방어 기술은 결투에서 승리하거나 남을 해치기 위한 기술이 아닙니다. 진정한 자기방어는 나를 잘 돌보고,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평소 체력을 키우는 운동을 하고, 잘 먹고, 자존감을 갉아먹는 고정 관념과 편견을 뽑아내세요. 일상을 건강하게,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 가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상황이 있다면 실제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세요. 힘껏 바람을 불어 막연한 두려움을 날려 버리는 겁니다. p145


스스로 힘을 가진 자가 되세요. 건투를 빕니다.


자기방어 수업이 필요하고, 친절하게 구성된 책이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자기방어가 필요한 사회라는 사실이 씁쓸했다. 그래서 저자의 마지막 말인 “스스로 힘을 가진 자가 되세요. 건투를 빕니다.”라는 말이 왠지 슬프게 전해졌다.(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책의 삽화는 건강하고 당당한 캐릭터들이 자신을 지키는 씩씩한 장면들로 이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와 같은 든든한 언니가 이렇게 지켜주려고 애쓰고 있으니!

부디 다들 아프지 말고 잘 살아 남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너 1 베어타운 3부작 3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베라는 남자』의 작가 프레드릭 베크만의 책을 만났다.


『베어타운』, 『우리와 당신들』에 이른 『베어타운』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말을 너무 많이 하고, 노래를 너무 크게 부르며, 너무 자주 울고, 살아가는 동안 무언가를 너무 많이 사람하는 그대들에게”


작가의 시작 글. 그대들은 책 속의 인물들이기도 하고 책을 읽는 나이기도 하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냥 넘어가지지 않았다. 앞 문장이 뒷 문장을 끌어당기고, 뒷 문장을 읽으며 앞 문장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대단한 이야기꾼에게 사로잡혔다. 


“단순하게 생각해.”

종종 인생의 어느 시점에 조언으로 사용되는 말, 베어타운과 헤드의 하키에도 적용되는 충고. 하지만 그 말은 ‘일을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는, 악한 의도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어린 여자아이의 입을 막고 그의 존재를 마을에서 제거함으로써 마을을 평온하게 만들고자 하는 소시민들의  ‘악의 평범성’을 보여준다. SDS!. 쏘고, 덮고 쉿!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많다. 베어타운과 헤드의 얽힌 관계도.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 편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전, 첫 장부터 인물관계도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우리는 도울 수 있는 경우에, 도울 수 있을 때,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돕는다.p41


사람들 말로는 나이를 먹으면 지혜로워진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나이를 먹을수록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경험만 쌓일 뿐이다. 그 결과 지혜로워지기보다는 시니컬해질 가능성이 더 크다. p53


위기가 닥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잠결에서조차 가장 중요한 걸 찾게 되어 있다. 타인의 숨결, 같이 박자를 맞출 타인의 맥박, 아이들 아빠가 어쩌다 한 번씩 딸이나 아들의 등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어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한다. 숨을 쉬지 않을지 모른다고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지만 부모 노릇에는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p61


우리는 어릴 때는 떠나보낸 사람을 생각하며 슬퍼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자기 자신을 생각하며 더 슬퍼한다. p195


여기 사는 우리 이야기는 모든 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와 같다. 우리는 이야기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경우는 당연하게도 거의 없다. 이야기들이 원하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갈 따름이다. 해피엔드로 끝나는 이야기도 있고 제발 거기만은 아니길 바라는 바로 그곳에서 끝나는 이야기도 있다. p323


“저는 작가보다는 우화나 동화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습니다. 이 책을 집어 든, 오직 당신 한 사람만을 위해서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을 주고 싶습니다. 베어타운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강인한지, 자발적으로 척박한 곳에 살면서 그 자부심을 얼마나 누리는지, 그 사람들이 숲속에 살며 어떤 생각을 하고 마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위너』를 읽었을 때, 제가 이 이야기를 위해 저의 모든 것을, 100퍼센트를 바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_프레드릭 배크만


마지막 책날개의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야 그가 원했던 것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온전히 그의 이야기에 빠져 있던 시간이었다.

남은 2권으로 따뜻한 겨울을 준비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은 순간이다 - 삶이라는 타석에서 평생 지켜온 철학
김성근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0대의 나이에도 야구장에 꼿꼿하게 서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대한민국 최장수 야구 감독. 2022년~2023년 김성근 감독과 나눈 인터뷰와 여러 매체의 인터뷰 기사를 토대로 책이 완성됐다. 

오랜 기간, 지금까지도 자신의 자리에서 베스트로 활동하는 노감독의 이야기는 잔잔하지만 강력한 응원의 메세지를 전해준다. 


나는 야구라는 것으로 인생을 전하고 싶었다. 단순히 이기고 지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절망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야구에는 ‘다음 경기’가 있지 않은가p12


야구나 인생이나, 한시도 멈춰 있는 순간이 없다. 순간순간의 움직임을 포착하며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기본은 똑같다. p2


인생이란 결국 순간이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오늘, 내일 마주치는 순간들, 매 순간에 한 결정과 행동이 쌓이고 쌓여 인생이 된다.p22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인 단어는 ‘의식’이었다.

마음가짐.

상황에 인정하는 것과 굴복하는 것의 차이.

상황은 인정하되, 굴복하지 않고 언제나 가장 나쁜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비관적으로 생각하되, 비관을 바탕으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나아가는 지점에서는 낙천적으로 행동하기를 말한다. 그는 평생 그렇게 살았다.


1942년에 교토에서 출생한 김성근 감독은 야구를 하기 위해 한국 영주 귀국을 선택한다. 1964년. 아직 한일 간에 수교가 이루어지지 않은 때라 그렇게 집을 떠나면 다시는 못 올 수도 있는 상황. 막내아들의 생활에 대해 가타부타 관여를 하지 않던 어머니가 유일하게 완강히 반대하셨던 게 그의 영주 귀국이었다. 결국 야구를 선택한 아들을 받아들이며 다시 못 볼 수도  있는 아들과 사진을 찍고는 형제들을 불러

 “이 아이는 여기 있을 아이가 아니다. 보내주자.”

라는 장면에서 김성근 감독이 한시도 쉬지 않고 어떤 예외도 두지 않으며(3번의 암수술도 아무도 모르게 받고 바로 경기장에 섰을 정도로) 자신의 ‘의식’을 단련시키는 모습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짐작이 갔다. 

그렇게 떠난 오사카공항에서 날씨가 좋지 않아 비행기가 뜨지 못하고 다음날로 출국이 연기되어 집으로 돌아와 보니, 자신의 방이 이미 말끔히 정리되어 자신이 이 집에 살았다는 흔적이 싹 사라져 있었다는 일화에서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정함 속에 담긴 애정이었다.


각진 돌멩이들은 산골짜기 속 물을 따라 바다까지 흘러 내려온다.

거센 물살을 타고 여기저기 부딪히며 내려온다. 

부딪히는 속에서 연마되고, 어떤 데서는 스톱 되고, 고생하고, 고통을 겪고,

어떻게든 탈출할 방법을 찾아 흘러가고 또 흘러간다. 

결국 세월이 흘러 바다에 가까워 갈 때는 요만한 돌멩이가 되고 마침내 모래가 된다.


그게 인생이다. 


그런데 물을 따라 흘러 내려오다 보면 돌은 반드시 어딘가에 막힌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인생이 꽉 막히고 답답한 순간이 온다.

평범한 사람은 누군가가 구해주기를, 혹은 문제가 알아서 해결되기를 기약도 없이 기다리는 반면, 뛰어난 사람들은 문제 속에 푹 빠져서 깊이 탐구하고 골몰한다.


물이 어디서 고였을 까? 지형이 원래 나빠서일까? 원래는 흘러야 할 구멍인데 어디가 막혀 있을까?

하루종일 매달리고 온통 그 생각에 빠져 밥도, 잠도 다 내던질 만큼 죽자 살자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끝내 자기 안에서 답을 찾는다. 상식적이지 않은 자기만의 아이디어로.

그렇게 찾은 비상식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누군가는 이를 보며 치사하다느니, 비겁하다느니 비난한다.


나는 야구 인생 내내 그랬다. 비상식을 찾아 결국 이겼지만 현역 감독 시절 내내 잘했다는 소리는 얼마 듣지 못했다.

그러나 내게 제일 중요한 건 결과였다. 다른 사람들의 존경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원하는 것은 결과뿐이었다.

승부에서 이길 수 있는데 점잖고 상식적이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상식 속에만 있으면 앞으로 가지 못한다.

고이고 막히는 순간을 수없이 넘어오며 나의 비상식은 어느새 상식이 되었고,

나라는 돌도 요만한 돌멩이가 되었다가 이제는 모래가 되었다.

마침내 물도 잔잔해졌다.


나라는 인간은 그렇게 80여 년을 흘러온 것 같다.


그의 인생과 인생을 관통하는 마음가짐에 관한 이야기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묵직하다. 언제나 깨어있고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자신의 자리에서 베스트가 되기 위한 고심을 멈추지 않았기에 결국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 

긴 글이 아니었음에도 읽고 난 후의 여운이 만만치 않다. 감동이 크게 밀려온다. 계속 곱씹고 되새기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이 만든 가난 - 가장 부유한 국가에 존재하는 빈곤의 진실 Philos 시리즈 25
매슈 데즈먼드 지음, 성원 옮김, 조문영 해제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장 부유한 국가에 존재하는 빈곤의 진실”


가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난 너머를 들여다 보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함을 피력하며 도시 빈민가의 주거 문제를 다룬 <쫓겨난 사람들>의 저자인 프리스턴 대학교 사회학교수인 매슈 데즈먼드가 사례와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 결과를 내놨다.


먼저, 가난의 성격에 대한 정리. 명료하다. 


-가난은 통증, 육체적 통증이다.

-가난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그런데 사회는 그걸 치료하는데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고통에 대처할 때가 많다.

-가난은 통증일 뿐만 아니라 불안정이기도 하다.

-가난은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질 거라는 끊임없는 두려움이다.

-가난은 자유의 상실이다.

-가난은 정부가 당신의 편이 아니라 당신의 적이라는 느낌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경범죄 기소와 소환의 형태로 국가에 시달린다.

-가난은 당혹감과 수치심을 일으킨다.

-가난은 쪼그라든 삶과 인성이다. 

-하지만 가난은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가난은 물질적 결핍과, 만성통증과, 투옥과, 우울증과, 중독 등등이 겹겹이 누적된 형태일 때가 많다.


「1장 가난이라는 문제의 성격」을 읽고 든 생각은 부끄럽지만, ‘다행이다’였다.(‘다행’이라는 감정이 책을 읽는 동안 여지없이 파헤쳐지고 부끄러움이 오롯이 남는 경험이었다.)

부끄러움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가난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전방위적인 구조에 대한 설명이 조목조목 이루어진다.


먼저, 노동. 

우리가 더 많은 부와 값싼 물건을 즐기려고 노동자들에게 생활임금을 허락하지 않을 때 노동자들은 무엇을 거부당하는가? 행복, 건강, 생명 그 자체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자본주의인가? 우리에게는 이 정도의 자본주의밖에 허락되지 않는가?

노동자를 싸게 부려 먹는 행태가 반복되고 더이상 일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실직하고, 빈곤은 악순환한다.


둘째, 주택

수백만에 달하는 가난한 세입자들이 착취적인 주택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이 더 나은 조건을 감당할 능력이 안 돼서가 아니다. 더 나은 조건이 그들에게 제시조차 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p131

가난하기 때문에 더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고 가난한 동네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들.


셋째, 복지

가난을 없애기 위한 정부의 정책은 계속 생산되고 복지 예산은 늘어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가 닿지 않는 문제를 지적한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빈곤층의 복지 의존성이 아니라 복지 회피였다. 가난한 사람들 상당수가 잘 모르고 서툴고, 신청 절차가 까다로워서 오히려 가난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복지 프로그램 의존도가 오히려 높아졌다,


넷째, 금융

배제는 착취를 낳는다. 제1금융권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비싼 수수료와 비싼 이자를 감수하고 대안적 금융거래를 한다. 


책은 분명한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는 명료한 문체, 간결한 문장, 설득력 있는 객관적 자료 제시 등으로 읽기에 좋았다. 무엇보다 “이렇게 명백한데, 이걸 읽고도 가만 있을래?” 하는 느낌표의 말투가 마음을 툭툭 계속 쳐댔다. 

본문에 앞서 있는 조문영 연세대 교수의 해제로 일목요연하게 책의 내용을 먼저 접하고 읽어 나갈 수 있어 이해가 쉬웠다. 특히 미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를 우리 사회에 적용하고 있어 삶과 연결시키는 작업이 훨씬 수월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시가 있어 함께 적는다.


그 쇳물 쓰지마라/제페토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정성으로 다듬어/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2010년 충남 당진의 철광업체에서 20대 노동자의 용광로 추락사를 시로 적은 내용인데, 그러고도 한참동안,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자를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보여주는 여러 사고들이 일어났다. 구의역, SPC계열사,쿠팡 노동자 사고 등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싸구려 노동에 쓰러져 갔다.


다시 나의 부끄러움을 살펴보자.

쿠팡의 새벽 배송을 중단했다가 며칠 못 가 다시 주문을 누르고, 최저가 제품을 찾아 헤맸으며, 알량한 자산을 지키지 못할까 불안해하는 모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공정과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입으로 이야기하고 다녔다. 


나는 다른 사람의 등에 올라탄 채 그 사람의 목을 조르고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다니게 만들지만, 나 스스로는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마치 그 사람에게 대단히 미안하다는 듯, 어떻게 해서든 그 사람이 더 편한 삶을 살면 좋겠다는 듯 행동한다. 그 사람의 등에서 내려올 생각은 하지 않고_ 레프 톨스토이


저자는 빈곤을 없애기 위해 대단히 똑똑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저 빈곤을 충분히 싫어하는 마음만 있다면 가능하다고 한다. 


담장 너머로 돈을 던지는 대신 그 담장을 허물어뜨리자고 한다.


그러기 위해 


관계를 형성하라. 

당신의 삶에서 노동계급과 빈민과 관계를 맺을 방법을 찾아라p298


널리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