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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과 신자유주의 - 새로운 정치 질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ㅣ Philos 시리즈 28
게리 거스틀 지음, 홍기빈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5월
평점 :
삶이 팍팍하게 느껴질 때,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를 생각하면 현실은 달라지지 않더라도 ‘이게 내 탓만은 아니야’라는 위로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었다. 내게는 ‘신자유주의’가 그랬다.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이 중시되고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이 최소화되는 가운데 보호받지 못하는 개인.
책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뉴딜질서가 어떻게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는지 그리고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어떻게 해체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자본주의를 관리하고 노동을 강화하고 복지국가를 확립하고자 했던 영역 모두에서 실패를 거듭한 미국은 뉴딜을 통해 이 모든 영역에서 분명한 성취를 이루었고 이는 냉전이라는 정치적 배경하에서 가능했다.
1970년의 오일쇼크, 베트남 참전 등의 일련의 사태에서 경제적 위기가 가속되었고 이러한 미국 경제의 쇠퇴는 뉴딜질서를 부정하게 된다. 즉, 뉴딜질서가 자유시장, 기술적, 경영적 혁신, 경제성장을 질식시켰다고 보는 신자유주의 운동이 시작된다.
이 책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기원에서부터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지배력을 발휘했던 이야기, 그리고 2010년대에 걸쳐 파편화되고 쇠퇴하면서 종말을 맞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무역 그리고 자본, 재화,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을 높게 받드는 신조다. 이는 탈규제를 경제적 선으로 찬양하며, 정부가 시장의 작동에 더 이상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는 지난 40년간의 미국 신자유주의를 경제적 관점만이 아니라 ‘정치 질서’로 파악하고 있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는 제도나 정책 몇 가지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 세계 전체, 세상 전체로까지 확장된다.
하지만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이전의 극우와 극좌라는 용어로 정치적 방향을 재단할 수 없는 샌더스와 트럼프가 등장하고, 저자는 이를 신자유주의 정치질서의 해체라고 설명한다. ‘시장의 자유’라를 일정한 정치 질서의 핵심 원리를 전제로 받아들이고 진보와 보수를 추구했던 제도권 내의 우파와 좌파와 달리 그러한 전제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세력들이 등장하며 기존 주류의 정치 노선은 사실상 완정히 패배를 맞이하였고 이전의 세상은 끝이 났다고 보았다.
하지만 뉴딜 질서와 신자유주의 질서를 이어 21세기의 새로운 질서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새로운 질서가 뛰어나고 상징적인 정치인 한 명의 출현으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뉴딜질서를 대표한 루스벨트의 경우 이전 시기 꾸준히 발전해 왔던 미국 제도주의 경제학과 영국의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레이건도 수많이 축적된 신자유주의적인 정치경제 사상, 이론, 정책 아이디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치 질서란 정치 생활에서 작동하는 핵심 아이디어들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어느 한 정당의 열광적인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정치적 스펙트럼을 폭넓게 포괄하여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을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뉴딜 질서는 미국인 대다수에게 자본주의는 역동적이지만 위험하기도 한 것이며, 강력한 중앙정부만 있다면 이를 공공의 이익에 맞게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만들었다. 신자유주의 질서는 미국인 대다수에게 자유시장을 도입한다면 자본주의를 불필요한 국가 통제로부터 해방시켜 번영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모든 계층의 미국인에게, 그 다음에는 전 세계로 확산시킬 수 있다고 설득해 냈다. 이 두 명제 그 어느것도 오늘날에는 예전과 같은 권위를 갖지 못하며 또 사람들의 지지를 누리지도 못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것은 정치적 무질서와 기능부전일 뿐이다. 이제 다음으로 나타날 질서는 무엇일까? 이것이 지금 미국 그리고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P536
새롭게 등장할 질서는 세상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
우려와 기대를 자아내는 고민을 위해 널리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