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길 - 양세형 시집
양세형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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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양세형씨가 시집을 냈다.

정말 궁금했다. 그의 말맛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글맛은 어떨까? 더군다나 시라니. 


“시라는 것에 대해 잘 모릅니다.


400점 만점 수능시험, 저는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었지만 88점을 받았습니다. 

사람도 삶도 여전히 답을 알아맞히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88편의 글을 용기내어 담아봅니다.”


출사표처럼 쓰여진 서문에는 겸손함, 재치와 함께 세상에 존재하는 평가방식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그의 재능이 담겨있다. 


<아빠가 해주는 

삼겹살김치볶음 먹고 싶어요>


걷다가 그냥 걷다가 

보고 싶어 눈을 감았어요.

오늘은 어제보다 더 반갑네요.


오늘은 약속을 취소해야겠어요.

계속 보고 싶어서

눈을 뜰 수가 없네요.


저를 그렇게 보고 싶어 눈을 감았나요?


이젠 저를 계속 바라보고 있겠죠?



<아빠와 아들>


비 오는 걸 유난히 좋아했던 아빠

비가 오면 먼지 낀 창을 한참 보셨죠.


신기하게 저도요,

비가 오면 창을 한참 봅니다.


그리고 떠올립니다.

아빠가 창을 바라보는 모습을요.


혹시 할아버지가 비를 좋아하셨나요?



「1부 지치고 괴롭고 웃고 울었더니」에는 돌아가신 아빠를 그리워하는 시들이 가득 차 있다.. 꾸밈없이 써내려간 시를 읽으니 우린 누구나 자기 안의 작은 아이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신 없는 번호지만

지울 수가 없다.


“여보세요”를 듣기 위함이 아니다.


그냥.

그냥..

그냥…

-아빠 번호, p38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내 핸드폰에도 지우지 못한 아빠의 번호가 있다.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또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로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2부 내 힘이 되어줘」에서는 아빠를 그리워하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고


「3부 짝짝이 양말, 울다 지쳐 서랍에 잠들다」에서 어른이 된 그 아이가 사랑을 겪고


「4부 인생에도 앵콜이 있다면」의 그 아이는 개그맨을 직업으로 선택하고 세상을 살아낸다.



<코미디 빅리그>


듣고 싶은 게 있어요.

당신의 웃음소리요.


언젠가 잃어버린 저의 웃음은

당신의 웃음소리로 채워집니다.


듣고 싶은 게 있어요,

당신의 박수 소리요.


언젠가 잃어버린 저의 자신감은

당신의 박수 소리로 채워집니다.


듣고 싶은 게 있어요.

당신의 함성 소리요.


언젠가 잃어버린 저의 희망은

당신의 함성 소리로 채워집니다.


당신의 웃음은요,

당신의 박수는요,

당신의 함성은요,


우리를 꽃피웠답니다.


그런 우리는요,

당신을 꽃피우려 했답니다.


무대 위에서 바라보는 그대님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밭이랍니다.



재미있는 양세형씨를 양세형 시인님으로 따뜻하고 깊게 만난 경험이다.

특히 책의 곳곳을 꾸미고 있는 박진성 작가의 조각 작품이 시를 한층 더 다정하게 만들어 주고 있어 시집을 덮는 순간, 내 안의 작은 아이가 토닥토닥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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