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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가난이 온다 - 뒤에 남겨진 / 우리들을 위한 / 철학 수업
김만권 지음 / 혜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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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 교수님의 강연을 들었다. 20대의 외로움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에 함께 울컥했다. 학자가 자신의 연구 주제에 저렇게까지 진심일 수 있다는 사실이 존경스러웠다.

책을 다 읽고 뒷 책날개에 적힌 “만권 오빠처럼 잘 우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라는 이진민님의 글을 읽었다. 아마도 강연회장이 아니라 몇 명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하는 자리였다면 교수님의 글썽이던 눈물이 쏟아지는 장면을 목격했을 것 같았다. 진심을 담아 연구하고 저술하고 대중을 만나는 진짜 지식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달에 나온다는 <외로움의 습격>이 기다려진다.

저자는 디지털 기술이 세상을 바꾼 제2기계 시대, 인공지능과 공존하기 위한 5가지 질문을 던진다.

1.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 냈다는 기술은 현재 얼마나 발전한 것일까?
2. 기술의 발전은 자본주의 본질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3. 21세기 자본주의는 왜 극소수의 승자와 엘리트만을 위한 것이라 비난받고 있을까?
4. 승자와 엘리트의 독식 사회에서 노동은 그에 합당한 존중을 받고 있을까?
5. 21세기 새로운 기술의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궁금했던 지점의 질문들이 순서대로 나와 있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이 차근차근, 친절하게 나온다.

산업혁명(제1 기계 시대) 당시 벌어진 기계파괴 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이 기술의 발달에 대한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기계의 도입과 함께 발생한 임금 삭감, 노동자들의 권리 제한 때문이었듯이, 4차 혁명의 문제는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기술을 다루는 인간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또한 당시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임금을 올려주고 노동3권을 보장한 점, 그리고 사회 보험의 형식을 통한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한 점 등을 들어 ‘각자를 위한 노동’으로 몰리는 제2 기계시대에 새로운 윤리가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신자유주의의 확산, 플랫폼 노동, 플랫폼 자본의 등장, 불평등의 심화로 인한 울트라 리치 영향력의 확대, 포스트 민주주의 시대 정치적 좌절감의 심화, 우파 포퓰리즘 등장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제2 기계 시대는 제1기계 시대와는 달리 결핍의 시대가 아니라 오히려 풍요가 넘쳐 나는 시대이다. 노동에 내재한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라는 본성 자체를 재정립해야 한다. 노동 자체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해결책, 노동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노동이 삶의 일부가 되게 하는 방법을 여섯 가지 제시한다.

1. 인간이 기계와 파트너십을 맺을 권리 ‘디지털 시민권’-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사회 영역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권리
2. 로봇이 일하게 하고 그 이익을 나누어 갖자: 로봇세
3. 초국적 플랫폼에게서 우리가 일한 몫을 받아 내자: 구글세
4. 지속적인 소비력을 나누어 주자: 기본소득
5. 인생을 설계할 자금을 주자: 기초자본
6. 노동 ‘안’에서 지어지고 있는 새로운 대안: ‘전국민 고용 보험’

그리고 공정함이라는 가면을 쓴 능력주의의 함정을 지적한다.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은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연대할 때 열린다.

‘위기에 뒤로 남겨지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라.’

마지막 문장의 '뒤로 남겨지는 사람'을 보는 순간, 학습된 위기감이 느껴졌다. 능력주의의 유령이 내게도 웅크리고 있음을 확인한다. 다시 정신 차리고 내 뒤에, 내 손이 필요한 없는지 살펴봐야겠다. 바뀐 시대, 공존과 연대, 새로운 돌봄을 위해 주위에 더 많은 눈길을 건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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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는 짝사랑 쉬는시간 청소년 시선 2
신지영 지음 / 쉬는시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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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사람 출판사의 청소년 문학 브랜드인 도서출판 쉬는시간에서 두번째 청소년 시집이 나왔다. 신지영 시인의 <최고는 짝사랑>


제목을 보고 사춘기의 몽글몽글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시집인 줄 알았다. 제대로 한 방 맞았다. 시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가슴 한켠에 통증이 느껴졌다. 거칠게 깨진 유리조각으로 긋는 듯 했다. 


1부 유령의 교실에서는 공동체라는 이름 아래 교실과 학교에서 강요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멈춰 있는 소년


책을 펴고

시선을 글자에 묶고

무릎을 억지로 굽힌다


붉은 피가 휘도는 몸은 

당장이라도 교실 밖으로 튕겨 나갈 듯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움직이지 않기 위해

발끝에 힘을 모은다


묶인 마음을 풀지 않는 한

누가 보아도


썩 착한 아이

썩 괜찮은 아이

썩어 가고 있는 아이(p16, 모범수)


 ‘작년에 있던 유령들이 올해도 가득하다'(p18유령의 교실)



'어젯밤 꿈에 쭈그려 앚아 담벼락에게 물었다


그늘로 지어진 구석을 나에게 주겠어?

좁고 낮은 질문이라도 키울 수 있게


(중략)


그래도 가만히 눈치만 보고 있으면

오래도록 녹지 않을 수 있었다


입학하고 내내

봄눈이었다(p21, 봄눈1)



2부 파벨라의 고양이에서는 브라질의 빈민촌처럼 보호받아야 할 성장이 배제된 채, 생존에 매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파벨라는 브라질의 빈민촌을 가리킨다. 대낮에도 총격이 벌어지는 곳으로 범죄자가 많고 약물 문제도 심각하다. 범죄 조직 간에 잦은 총격전이 벌어지고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자라 조직으로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쓰레기 매립지가 있는 파벨라에서는 쓰레기를 뒤져서 먹고사는 사람들도 많다.(p34)



‘하이바를 쓰면

나 하나 구할 수 있다고

어쩔 수 없는 나 하나 구하자고


오늘도 배달의 용사는 

하이바 쓰고 골목을 달린다(p36 배달의 용사)



3부 태어난 마음 


‘널 보는 

순간이 매일 설레도

고백은 하지 않아

(중략)

의자가 날아가지 않고

그릇이 깨지지 않고

엄마 아빠처럼 싸우지 않아도 되는


나의 사랑은 평화롭지

무엇도 망치지 않고

누구도 아프지 않지


아무도 상처 입지 않는 사랑

최고는 짝사랑!'(p71 최고는 짝사랑)


‘할배가 주워 주기 전까진

나도 찌그러진 캔이었다


나를 건진 날이 

세상에서 제일 수지맞은 날이라는 그 말이 

날 살게 했다


건질 것 하나 없는 내가

나를 건진 날이었다(p55 건질 것 있는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마음. 작은 눈길과 손길 하나에도 부여잡고 싶은 마음이 느껴진다.


4부 말 있는 말


‘내게 말해 줘

아무 문제 없다고


거친 말처럼

나 세상에게 달려갈 뿐인 걸’(91 말 있는 말)


‘여름은 어떻게 생겼어?


눈사람이 물었다

(중략)


가난한 개미에게 

그늘을 만들어 줬을 때


알았지


여름은 꼭 너처럼 생겼어(p93 첫사랑)


‘오늘은 날이 좋아

비늘이 더 빛날거야(p96 이름을 찾아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넘어진 자리에서 툴툴 털고 일어서는 아이가 보인다.


‘삐뚤어져서 용케도 자라는 아이들, 어디가 고장 난지도 모르고 삐걱거리는 아이들. 그래도 아이들은 열심히 자란다. 자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상처가 아물지 않아도 벌어진 채로 흉터가 되지 못해도 아이들은 자신을 키워낸다. 그런 씩씩하고 쓸쓸하지만 아름답고 순박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p106, 위험한 고양이들의 랜덤워크 중)


책의 마지막 장에는 독서 활동지가 수록되어 있다. 시를 자기와 연결하여 마음을 끄집어내는 작업을 도와준다. 


시집의 군데군데 나타나는 삽화의 아이는 신발을 한 짝만 신고 있다. 벗겨진 맨발에 신발을 신겨 줄 것인지, 신고 있는 운동화를 마저 벗겨줄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아이는 어디에 속하고 싶은 건가?


시를 읽는 내내 그려졌던 그 아이가 이 시집을 읽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프게 커가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그 마음을 들여다 보고 눈길을 건네주고 들어주었다면 상처를 흉터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 좀더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통증이 내게도 전해진다. 좋은 시집이다. 좋은 시를 담아내는 시집을 펴낸 도서출판 쉬는시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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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를 날리면 - 언론인 박성제가 기록한 공영방송 수난사
박성제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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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동방아 순방길에 MBC 기자단을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을 불허한다는 대통령실 발표가 있었다. 치졸할 행위였다. ‘날리면’을 ‘바이든‘’으로 보도한 복수였다.(나는 아직도 바이든으로 들리는 귀를 가지고 있다)
한동안 보지 않던 MBC 뉴스를 시간 맞춰 시청했다. 캐리어와 촬영 장비, 취재 도구를 잔뜩 이고 지고 끌며 공항으로 향하던 MBC 기자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몰상식의 일상화. 그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중에 MBC 전 사장이었던 박성제씨가 책을 출간했다. 언론인답게 작명 센스가 돋보인다. <MBC를 날리면>

“중국 진나라 때 권력에 눈이 먼 조고라는 환관이 있었다. 어리석은 황제를 꼬드겨 승상이 된 후 어전에 사슴 한마리를 끌어다놓고 말이라고 불렀다. 그의 권세를 두려워한 많은 신하들이 말이라고 맞장구쳤지만,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고 바른말을 한 신하들도 있었다. 조고는 거짓으로 죄를 덮어씌워 그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P13) 지록위마”

책은 <사기>의 ‘지록위마’를 인용하며 글을 시작한다.

1부 MBC 살리기1: 험난한 뉴스 재건의 길
2부 MBC 살리기2: 공영방송 사장은 저널리즘으로 평가받는다
3부 ‘MBC 죽이기‘의 시작
4부 언론, 어떻게 바꿀 것인가

2012년 공정방송 파업으로 해직당한 후, 2018년 복직하여 보도국장을 거쳐 MBC 사장이 된 그는 세월호 보도를 거치면서 손석희라는 리더를 만난 JTBC가 어떻게 조직을 바꾸어 놓았는지를 보여주며 리더의 중요성을 말한다.

“언론사처럼 구성원들의 자존심이 센 조직에서 뉴스를 책임지는 국장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까? 평등한 소통, 민주적 의견 수렴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개혁을 위해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시기에는 의지와 실행력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리더는 결정하는 자리다. 의견 수렴은 충분히 하되, 돌파할 때는 돌파해야 한다. 그리고 결과에 책임지면 되는 것이다.” (P81)

‘엠빙신’으로도 불리던 MBC가 사립유치원 운영 비리, 김용균씨 사망, 버닝썬 게이트와 고성 산불 보도를 거치며 신뢰도 1위를 기록한다. 언론은 무엇보다 시청자를 믿고 우직하게 사회적 의제를 찾고 보도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지난 위기와 아픔 속에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하여 세월호 유족이 건넨 노란 리본을 단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다.
‘중립’이라는 태도가 어떤 상황에서 매우 비겁하게 작용하는 것을 많이 접한다. 저자 역시 ‘진실 앞에 중립은 없다.’고 말한다.

“객관적인 언론인 같은 건 없다. 이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객관성‘이라는 말을 쓸 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분명히 밝히는 게 중요하다…좋은 언론인은 균형을 찾지 않는다.” (p198 마리아 레사 <권력은 현실을 어떻게 조작하는가>, 북하우스 인용)

이후 대통령 장모 최은순의 수상한 소송, 전용기 민간인 탑승, 김건희 녹취록, 바이든-날리면 보도가 이어지면서 바뀐 정권의 매서운 칼바람이 MBC로 불어온다. 방송장악 기술자 이동관의 컴백과 MBC 민영화 음모, KBS 수신로 분리 징수 협박으로 언론 장악을 촘촘하게 완성하려는 정권에 맞서 공영 방송 지키기와 함께 언론개혁이 이루어져야 함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언론 개혁이 꼭 필요하기는 하지만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향의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고 쓰고 있다. 동의한다.
‘나쁜 언론’을 처벌하는 게 아니라 ‘좋은 언론’이 많아지고 영향력이 커지도록 법과 제도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의한다.
그런데 어떻게?

정권에 바른 말을 하는 공영방송을 지켜야 한다는 말에는 적극 동의하지만 언론 개혁은 언론인의 손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가 되지 않았다. 아직 언론에 대한 신뢰가 충분하지 않은가 보다.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는 가운데 방법론적으로 가능할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언론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 좋은 언론인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여러 언론인들이 있기에 희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미디어 수용자로서 수많은 그릇된 정보 속에서 ‘진짜 뉴스, 좋은 언론인’을 구별하는 능력을 키워나가기 위해 스스로도 애쓰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다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오랜 시간 피 흘리며 쫓아 보낸 어둠의 시간이 또 덮치고 있다.
불행한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알 수 없다.
그 답은 과거에도 그랬듯, MBC 구성원과 시민들에게 달렸다.
꺾이지 않는 저널리스트들의 신념과
잠들지 않는 시민의식이
죽었던 MBC를 살려냈다.
이제 다시 싸움의 시작이다. MBC 구하기”(p226)

MBC가 ‘만나면 좋은 친구’로 계속 남아 있길 응원한다.

끝나지 않는 공영방송 수난사.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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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
최태현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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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30주년.

전야제에 대학 동창들이 시청 광장에 함께 모였다.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여러 감정들이 올라왔다. 다른 친구들도 그랬나 보다.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TV로 중계되는 기념식에서 대통령의 기념사를 들으며 순간 울컥해지며 눈물이 났다. 톡방에 글을 올렸더니 다들 같은 마음이라며 공감의 메시지를 전했다. 위로. 명확했다. 위로받은 기분이었다.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두산백과 두피디아)

 

시대가 직면한 문제를 함께 풀기 위해 세운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가 갖고 있는 역설적 한계에 대해 책은 여러 측면에서 접근하여 문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 제도로서서의 민주주의가 아닌 작은 단위의, 일상적인 민주주의에 주목하라고 한다. 특히 민주주의의 마음에.

민주주의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내용인 만큼 여러 개념과 서술에서도 저자의 마음이 많이 엿보인다. 일반적으로 쓰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작은 자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데, ‘작은 자의 본질은 마치 비가 내리는 날 작은 우산을 들고 사람과 차들을 피해 천천히 길을 걷는 사람처럼 이 세상에서 많은 권력을 추구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존재, 이 땅의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면서 많은 것을 소비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정의한다.

책은 작은 자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는 대표의 한계, 작은 자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않는 정책의 한계, 그럼에도 철인왕과 같은 능력자를 대표로 선출하고자 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한계, 그 체제를 굳건히 떠받치고 있는 관료제의 영혼없음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해법이 아니다. 정부가 바로 문제다.-로널드 레이건, 1981120일 미국 대통령 취임사

 

권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올바르게 권력을 행사할 사람일 수 있다는 권력의 역설을 지적하면서 대표자의 선출 방법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무엇이, 누가, 누구에 의해 대표되는가, 그리서 무엇이, 누가, 누구에 의해 대표되지 않는가’(p95)에 주목해야 함을 말한다.

 

그래서 결국,

민주주의는 정치체제, 제도가 아닌 마음에 초점을 두어야 함을 말한다.

작은 공()’_국가 단위가 아닌 상대적으로 좁은 범위의 사람들이 함께 하지만 그 이름으로 인해 억압되지 않는 삶의 단위(p304)

 

현실 정치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 우리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고 우리의 대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현실 정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20대 여성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이념의 세례를 받은 기성 세대들은 정치적 무관심이라고 폄하할 수 있겠지만, 그의 일상은 동물권을 위해 채식을 하고 있으며,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옷을 사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 노숙자 야학에서 봉사를 하며,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주고, 장애인의 인권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공공성과 작은 공 측면에서 희망이다.

절망의 역설은 희망이라고 한다.

책을 읽는 동안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민주주의의 역설에 공감하면서

그럼 나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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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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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출간한 이희영 작가의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를 읽었다.
책 표지에 오렌지색 바탕의 교실이 그려져 있다. 초여름 바람에 날리는 커튼이 있는 창가에 한 소년이 바깥을 보고 있다. 소년의 눈길이 닿는 곳에 동화같은 집과 정원이 보이고 잔디 위에 여학생이 서 있다.(책을 다 읽고 나니, 여학생이 서 있는 그 집이 가우디 속의 그곳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살면서 ‘아차’하는 순간이 있다. 혹은 후회할 일이 생기리라는 예상 속에서도 멈추지 못하는 순간.
선우혁의 고등학교 입학. 집에서 가까우니 굳이 다른 학교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는 자연스러운 결정이었지만, 그와 많이 닮아 13년 차이나는 쌍둥이라고 불리던 형이 다녔던 학교를 선택했을 때, 부모님은 온전히 기뻐해주지 못했다. 형이 졸업하지 못한 학교. 십여년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형의 공간에서 혁의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된다.
고등학교 입학 후, 혁은 형의 담임선생님, 메타버스 속의 곰솔, 형의 친구 등을 통해 형을 만나간다.
혁에게 형은 다섯 살 동생을 잘 돌봐주는 든든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형의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은 형의 다른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다양한 지위와 역할, 상황 속에서 내가 드러내는 나의 모습 또한 다르게 펼쳐진다.
“부조는 그 나름의 분명한 아름다움이 있다. 부조 작품을 보며 누구도 조각된 면 너머를 원하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타인이 보여 주는 모습을 존중하되, 그것이 전부라 단정 짓지 않으면 된다.좋은 인상을 주었든, 나쁜 이미지로 남든 간에 말이다.”
소설에서는 십대의 아이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과 학교라는 집합적 공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 지가 잘 그려져 있다.
“학교는 용광로와 비슷해…용광로는 여전한데 그 안에 정말 다양한 것들이 들어가거든. 아이들은 모두 각자의 틀을 가지고 뜨거운 쇳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담아내지. 이렇듯 다양성이 존중되는 학교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어. 바로 소문이 퍼지는 속도와, 그와 비례해 점점 더 과장되는 말들. 이건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
“내가 있는 곳은 말이야, 수업 시간에 반 아이들 삼분의 일만 잠들어도 오늘은 성공했어. 기뻐하는 지독한 현실이야. 복도를 걸으면 ‘샘, 안녕하세요’ 사방에서 인사가 날아오는데 ‘어, 그래, 안…..’ 말할 땐 이미 나를 스쳐 지난 후지.“
소문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왜곡. 형과 곰솔과의 관계 역시 그랬다. 소문을 대하는 아이들의 반응은 불량식품을 먹는 모습 같았다. ‘원료가 뭔지, 어떤 성분이 들어갔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소문의 진실이나 개연성 따위는 사탕 껍질처럼 쉽게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결국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존재이다.
선우진과 곰솔의 관계는 소문을 다루는 학교의 방식 안에서 누구하고도 공유할 수 없는 둘 만의 관계가 되었고 둘은 서로를 통해 낯선 스스로를 만나는 시간을 쌓아간다.
형의 흔적을 찾아가면서 혁은 시간이 흘렀다고 모든 것이 마모되는 것이 아니고 나무에 나이테가 세월이 지날수록 오히려 선명해지는 것처럼 추억과 사랑과 그리움이 남는다는 것을 알아간다.
사람은 언제 죽는가?
한 사람의 존재를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때가 곧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회적 참사를 겪으면서 나온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문구의 의미가 글을 읽으면서 크게 다가왔다..
좋아하던 겨울과 귤 사이에 끼워든 진의 사고 때문에 겨울도 귤도 가까이 할 수 없었던 곰솔이 한쪽 면만 조각된 부조 너머 형의 모습을 알아가는 동생 혁으로부터 여름의 귤을 선물받는다.
“고마워”
기억과 애도, 따뜻한 위로 그리고 성장.
청소년 소설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답을 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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