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읽는 시간 - 관계와 감정이 편해지는 심리학 공부
변지영 지음 / 더퀘스트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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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 컴플렉스에 걸린 사람이 많다. 물론 나도 그랬었고, 거절할 땐 거절하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휘둘리지 않는 힘이 필요한 나에게'라는 부제를 보고 마음이 찡했다. 거절하지 못하고 휘둘리며, 마음은 원하지 않는데 겉으로는 '헤헤' 거리는 다중이를 벗어나고 싶었다.

<내 마음을 읽는 시간>은 상담심리학자이자 공생연(공부와 생활이 하나되는 삶을 지향하는) 소장인 변지영 소장이 쓴 책이다. 마음을 다루는 책이라서 그런가 글 전체가 섬세하고 조용하면서도 구체적이었다. 이 책은 '내가 왜 힘든가'에 집중한다. 그리고 마음을 달래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내가 왜 그렇게 힘들어 했던가. 회사와 가정의 균형을 맞추는 게 왜 그리 힘들었던가. 단순히 '번아웃 증후군'이라고만 스스로 판단했지, 그게 어떤 연유로 어떻게 생긴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 원인을 명쾌하게 파악해주었다.

 

 

자기분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관계나 일에 융합되어
자신의 직무나 역할에 부담을 더 많이 느끼고,
이로 인해 직무소진, 이른바 '번아웃 신드롬'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일하는 것을 넘어서서
직장과 나를 하나로 여긴다든지, 내 생활과의 경계 없이
일이 전부가 되는 경우 역시 일종의 융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랬다. 직장과 나를 하나로 여기는 것을 회사에서는 좋아할지 모르지만, 내 자신에게는 정말 못할 짓을 한 거였구나 생각했다. 스스로 채찍질을 해가며, 밤과 낮 구분 없이 매일 야근을 하고,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컸다. 결과적으로 프로젝트는 무사히 마무리했지만, 그 프로젝트 이후로 난 속도가 풀린 채 미끄러져 내려갔다. 마음을 붙잡을 여유조차 없었던 때,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우선 시간에 대한 경계 설정이 중요합니다.
시간에 대해 경계를 잘 설정한다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하면서,
그 밖에 우선 순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일정들을
균형 있게 잘 조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을 그때 알았다면 나는 지금도 회사에 있었을까. 아마 알았더라도 한번 떨어진 자존감을 다시 세우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저자는 '삶을 탄탄하게 구축하는 법'으로 '1. 마음챙김 2. 자기자비 3. 조망수용'을 들고 있다.
마음챙김이란 영어로 Mindfulness라고도 하며, 고대 인도어의 일종인 팔리어 '사띠(Sati)'를 영어로 옮긴 용어이다. 단순히 '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명상과 마음 훈련을 통해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상위인지 능력을 향상하는 걸 일컫는다.

또한 자기자비란 역경에 처했을 때나 자신의 취약함을 지각했을 때 자신을 비난하는 대신 친절한 마음으로 자신을 보살피는 것이라 한다. 가까운 사람이 갑자기 아플 수도, 갑자기 사고가 날 수도 있다. 그런 경우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라며 원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누구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인간보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보편성'과 '자기친절', '마음챙김'이라는 것을 자기자비의 세 가지 요소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조망수용은 '타인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능력이자 자기 자신을 타인의 입장에 두어 생각해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타인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를 통해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타인의 관점을 수용하고 상대의 기대에 부합하게끔 행동할 수 있다고 말한다.

휘둘리지 않고 사는 게 쉽지는 않다. 어울려서 가까워지다보면 휘둘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중심을 잡고,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구체적으로 그 마음을 표현하라고 조언한다. 그냥 우울하고 슬프다고 하지 말고, 현재 상태를 쪼개고 쪼개어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슬픔의 크기가 실제로 많이 줄어든다고 한다. 마음에 귀 기울여야겠다. 그래야 내가 힘들지 않고, 상대방도 힘들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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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아이랑 해외여행
이희경 지음 / 넥서스BOOKS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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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아이랑 해외여행>이라는 제목만 듣고도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우리 딸들이 조금 더 크면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게 이 엄마의 소원인데, 때마침 그런 이야기를 먼저 책으로 만나게 되어 영광이었다.

 

난 우리 아이들 좀 더 크면, 크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의 저자인 이희경 씨는 딸이 7살 때 함께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일곱 살이 그렇게 어린 나이가 아니었구나. 저자는 젊은 시절에도 해외여행을 많이 가본 터라 아이와 여행을 가는 데에도 두려움이 없었다. 게다가 동네에 소문을 냈더니 그동안 용기를 내지 못했던 엄마들이 같이 가자고 해서 여러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여행을 떠났다.

 

사실 무엇보다 필요한 게 '용기'였다. 마음은 굴뚝같으나 용기가 없어서 떠나지 못하는 엄마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무슨 일이든 직접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걸 좋아하지만, 해외여행만큼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저자처럼 이끌어 줄 누군가가 있다면 함께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구나 생각했다.

 

처음엔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아이와 해외여행을 다니며 느꼈던 바를 기록한 여행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은 여행을 당장 떠나도 될 만큼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정보가 많았다. 아이와 해외여행을 떠나면 무엇이 좋은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장점이 보이고, 저자와 같이 여러 엄마들과 아이들이 함께 떠나면 단 둘이 가는 것보다 어떤 점이 좋은지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여행 준비기와 여행지에서의 생활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우선 초등학생이라면 10~15일 정도의 여행기간이 적당하고, 중 고등학생은 한 달 이상도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봐도 일주일은 너무 짧고 2주 정도가 딱 적당해 보인다. 가기 전에 학교 선생님께는 어떻게 사전에 상의를 해야 하는지까지 나와 있을 정도로 세세하다. 그리고 강조하는 건, 숙소도 교통도 저렴한 것부터 비싼 것까지 다양하게 경험해 보라는 것이다. 그런 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중간중간에 아이와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그게 아이와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사회 정치 문화 예술 분야에서 인생 전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여행에서 돌아와 보면 아이의 생각주머니가 확실히 달라졌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행의 장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실천하지 못했던 것뿐. 당장 아이와 떠날 사람은 꼭 봐야 할 책이고,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떠날 엄마와 아이도 이 책을 보면 가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자라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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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흔드는 글쓰기 - 위대한 작가들이 간직해온 소설 쓰기의 비밀
프리츠 게징 지음, 이미옥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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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 <마음을 흔드는 글쓰기>. 이 책을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과연, 바이블답다. 이렇게 밑줄을 많이 쳐보기는 처음이다. 글마다 '이건 꼭 읽어야 할' 내용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줄을 긋다가 포기했다. 모든 글에 줄을 그을 수는 없지 않은가.

'위대한 작가들이 간직해온 소설 쓰기의 비밀'이란 부제가 이 책을 더욱 읽고 싶게 만들었다. 마치 위대한 작가들의 비밀 창작노트를 엿보는 느낌이 들었고, 그의 문하생이 되어 글 쓰는 법을 체득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큰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환경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스토리를 구성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상세하게 제시하는 소설 작법 도서이다.

책은 크게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 삶, 읽기, 글쓰기
2장 : 스토리와 캐릭터
3장 : 삶이 쓰는 이야기와 헐리우드의 지침
4장 : 화자와 서술 시점
5장 : 구성과 줄거리 모델
6장 : 공간 : 신탁, 메아리, 함께 연기하는 자
7장 : 언어
8장 : 수정과 퇴고
부록 : 자극과 과제 _ 연습이 대가를 만든다.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꼭 알아야 할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줌으로써, 갈피를 잡지 못하는 초보자들에게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가장 눈에 띄는 건 1장인 '삶, 읽기, 글쓰기'였다. 저자인 프리츠 게징은 '왜 글을 쓰는가' 물음을 던지는 것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그건 이 책을 읽는 사람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모든 사람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글을 쓰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글을 쓰라는 것, 가장 기본적이지만 늘 잊고 있던 사실이다.

그리고 글을 쓸 때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추천하고 있다. 학창시절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의무감에 읽었다. 그래서인지 재미가 없었다. 신들의 이름은 왜 그리도 복잡하던지. 그런데 대학 시절에 영어로 된 신화 읽기 수업을 들을 때 신화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다. 그 뒤로 꽤 많이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성경'.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집안 어디에나 성경이 있어서인지 오히려 성경을 잘 보지 않았다. 한때 성경 통독도 시도하고, 필사도 했던 나이지만, 그 두꺼운 분량에 지레 겁을 먹고 펜을 놓아 버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이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동기부여가 정확하게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읽으니 읽고 바로 잊어버렸다.

그런데 성경이야말로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의 입을 거쳐 내려온 방대한 스케일의 이야기이다. 그런 관점에서 성경을 다시 읽어본다면, 인물이 보이고, 사건이 보이고, 배경이 보이고, 시대가 보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성경을 신앙서적으로만 보는 것에서 벗어나, 거대한 이야기책으로 보면 또 어떤 즐거움이 생길까 궁금해진다.

어떤 분위기에서 글을 써야 하는가, 하루에 몇 시간을 써야 하는가, 어떤 작가는 아침형이고, 어떤 작가는 새벽형이라는 구체적인 사실까지 보여주는 등 바로 실천할 수 있는 내용도 많았다. 이건 굉장한 독서력이 아니고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법칙이다.

작가인 프리츠 게징은 독일 소설가로, <마음을 흔드는 글쓰기>를 1994년에 처음 출간하였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지 23년이나 되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실천해도 이질감이 없는 건, 글 쓰기의 법칙은 시대가 변해도 변함없는 진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소설 쓰기의 정석을 보여준다. 그리고 볼수록 깨닫게 된다. 단순히 스토리텔링이 풍부한 사람이 소설을 잘 쓰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글만 잘 쓰는 사람이 소설을 잘 쓰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룰 때, 위대한 소설이 탄생한다는 것을.

지금 당장 펜을 들어 소설을 쓰기 전에, <마음을 흔드는 글쓰기> 먼저 읽는 선행학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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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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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원제는 When breath becomes air.
워낙 베스트셀러이기도 했고, 주변에 읽어본 사람들의 감탄사와 추천사를 많이 들어본 터라 그 누구보다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두 번이나 아픈 상처를 준 '암'이란 단어가 소름끼치도록 싫었다. 그래서 표지를 열기가 두려웠다.

이 책은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읽었다. 남은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나는 속으로 '안 돼, 결국 이렇게 해서 떠난 거잖아. 좀 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중간중간 책 읽기를 멈추었다. 방금 마지막 장을 덮고나서 한참 아무 말도 못하고, 어떤 글도 쓸 수 없었다.

폴 칼라니티. 1977년생. 스탠포드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전공하고, 영문학 석사. 이후 예일대 의학대학원에서 의학을 전공하며, 신경외과 레지던트 마지막을 마치며, 꽃길만 남은 그에게 다가온 암이란 존재. 서른 여섯에 폐암에 걸린 것을 알고 투병을 하다가 서른 여덟, 짧은 생을 살다 떠났다.

이 책이 마음을 울린 건 화려한 스펙의 전도유망한 의사가 암에 걸려서 세상을 떠났다는 팩트가 아니다. 투병기간 동안 뜨거운 열정을 담아 써내려간 이 책에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현장에서 살다간 한 젊은 의사의 인생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환자들에게 생명과 희망을 불어넣어주던 그였기에, 누구보다 환자들의 마음을 잘 알았다. 그래서인지 '왜 하필 내가...'라는 원망보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덤덤한 그의 자세에 존경스런 마음까지 들었다. 물론 그에게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아니, 그 누구보다 컸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차도가 보이자, 다시금 병원 현장으로 와서 온 마음을 다해 수술에 임했다. 하지만 다시 종양이 생기고 커졌다는 글을 보고 내 마음이 다 아려왔다. 더 많은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건강하게 해주시지, 왜 또 다시 아프게 하는가, 감정이 격해졌다.

하지만 오히려 폴이 차분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마치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어렵게 얻은 딸 케이디와 아내 루시를 두고 폴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마지막까지 불태웠던 열정의 씨앗은 갓난 아기의 마음에 뿌리를 내려 평생 그 마음 속에서 열매를 피웠으면 좋겠다.

얼마 전 친한 친구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엊그제는 배우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인지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지 못한 채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어떻게 사는 게 후회하지 않는 삶인가. 매순간 가장 행복하게 사는 것 말고는 달리 답이 없을 듯하다.

맨 마지막 부분에 폴의 글을 보고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작년 여름, 세상을 떠나신 내 아버지가 마치 나에게 보내는 편지 같았다. 가정적이고 자상했던 우리 아버지, 아니 아빠에게 내가 더 없는 기쁨이 되었기를.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쉬시기를.

깊어지는 가을만큼 생각도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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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 - 대한민국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 12인이 말하는 내 힙합의 모든 것
김봉현 지음 / 김영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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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음악을 좋아했다. 고딩 시절, 듀스의 노래에 심취해 있었고, 랩을 좋아해서 신해철의 <안녕>, <재즈카페>의 가사를 적어보는 걸로 창작의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론 힙합 음악을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지코의 음악을 듣게 되었고,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출연한 <쇼미더머니>를 시즌 4를 보고, 시즌 1부터 다시 보기를 했던, 늦깎이 힙합빠순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끝난 쇼미더머니 6까지 한 회도 빼놓지 않고 정주행했다. 좋은 랩과 노래 앞에선 아이 둘이라는 것도, 나이도 잊은 채 10대 시절 그때로 돌아갔다.

그래서인지, 이 책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을 받자마자 가슴이 쿵쾅쿵쾅 떨렸다. 힙합 신에서 가장 핫한 아이콘인 12명의 최고 래퍼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도끼, 더콰이엇, 빈지노, 팔로알토, 제리케이, 스윙스, 허클베리피, 산이, 딥플로우, JJK, 타이거JK, MC메타...

힙합빠는 물론 '힙알못'도 이들의 이름은 한번씩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래퍼들이다. 쇼미더머니를 열심히 본 덕에 한 두명을 빼고는 다 아는 사람들이라 더 반가웠다. 집이 크고 돈이 많은 걸로 잘 알려진 도끼와 더콰이엇, 독일인 여친으로 알려진 빈지노, 착한 목소리의 팔로알토, 현대카드를 다녔던 제리케이, 호불호가 명확한 스윙스....아 특징들을 꼽자니 끝도 없다. 한 사람 한 사람, 랩에 대한 철학과 깊이감을 잘 알 수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 님의 인터뷰가 래퍼의 깊은 사유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힙합 관련 책들을 이미 여러 권 냈던 저자이기에, 힙합팬들은 익숙한 음악평론가이다. 역시 그가 가진 힙합 지식의 스케일이 엄청났고, 래퍼가 '어떤 래퍼의 무슨 노래'라고 말하면 척 하고 알아듣는 수준 높은 인터뷰였다.

특히 허클베리피라는 래퍼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노래는 잘 몰랐던 래퍼이다. 그런데 음악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말투가 '리스펙'을 부를 만큼 진지하고 깊었다. 단순히 랩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이 남다른' 래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답변 하나하나가 인상적이었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12명의 인터뷰를 모두 읽어보았다. 무대 위에서 정신을 쏙 빼도록 랩을 하는 래퍼들만 봤지, 이렇게 진중하고 진지하게 힙합에 대해, 삶에 대해 고민하는 줄은 몰랐다. 어떤 게 진짜이고, 어떤 게 가짜인지, 그들이 생각하는 'Keep it real'은 무엇인지, 힙합 정신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쇼미더머니>를 아직도 부정적으로 보는 래퍼가 많구나 싶다가도, 시즌을 더해가며 인기가 많아지는 것도 시대의 흐름이니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이는 래퍼도 있었다.

생각하는 건 자기 마음이지만, 분명한 건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으로 인해 나처럼 힙합을 좋아했지만 잘 몰랐던 아줌마까지도 힙합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노래를 찾아 듣고 있다는 것이다. 디스와 배틀, 사이퍼, 프리스타일, 플로우, 라임, 펀치라인...온갖 다툼이 난무하는 거친 세계이지만, 힙합만큼 인간적인 음악 장르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나의 힙합 사랑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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