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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위에 새긴 생각
정민 엮음 / 열림원 / 2017년 10월
평점 :

돌 위에 새긴 생각, 전각(篆刻). 처음엔 돌 위에 새긴 생각이라길래, 그저 마음에 새기는 좋은 글귀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정말 돌에 글자를 새긴 전각이라니. 페이지를 넘기며 전각과 한시, 풀이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멋진 예술작품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책을 엮고 지은 정민 교수님은 한시를 널리 알리는 데 큰 공을 세운 국문과 교수이다. 오랜 기간 구독하던 월간 <좋은 생각>이란 생활잡지에도 한시를 쉽게 소개해준 교수님으로 또렷하게 기억한다. 서른 중반, 그가 교환교수로 대만에 머물 당시 전각을 배웠고 한동안 몰입을 통해 이 작품들을 완성했다고 한다. 국문학자로만 알고 있던 교수님께 이런 실력이 감춰져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림이 더해지니 한시가 더욱 힘을 발휘했다. 한자를 한 자, 한 자 새기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과 깨달음이 전해졌을까. 감히 그 생각의 깊이를 가늠할 순 없지만, 그렇게 깊은 생각을 거쳐 나온 작품이라 그런지 깊은 사유를 가능하게 했다.
귀 있어도 맛없는 말 듣지 않으며
손 있지만 뜻 없는 이에겐 읍하지 않네.
남의 선함을 들으면 의심부터 하고
남의 약함을 들으면 덮어놓고 믿는다.
이것은 마음속에 가득한 살기다.
너무 즐거울 때는 많은 말을 하지 마라.
노려움이 지극할 때도 많은 말을 하지 마라.
좋은 글귀와 즐거운 해석도 이 책을 읽는 묘미다.

귀하지도 않게 부유하지도 않게
천하거나 가난하지도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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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도 참 야무지구나. 그런 거 있으면 내가 하겠다.
유쾌한 즐거움이 솟아난다.
한시는 어려울 것이라고만 생각했지만, 막상 그 뜻을 알고나면 이보다 더 함축적이고 인생을 비유하는 게 없다. 중문학을 복수전공하게 된 것도, 한자의 매력 때문이었지. 한 글자를 놓고, 한 시간을 떠들 수 있는 희한한 글자. 한 글자에 인생이 담겨 있고, 삶의 고단함과 즐거움이 함께 존재한다. 이렇게 한시를 읽으니, 마음이 정돈되는 듯하다.
한 글자 한 글자 돌에 새기듯, 내 마음에도 한 글자씩 새겨지는 한시의 매력. 이건 시간을 두고 찬찬히 읽어야 할 책임에 틀림없다. 그 어느 시집보다도 깨달음을 많이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