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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 문학상 제정 작가 10인 작품선 ㅣ 대한민국 스토리DNA 15
김동인 외 지음 / 새움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23년 만에 다시 읽었다. 그동안 내게 <무진기행>은 '청소년이 읽어야 할
필독서'에 항상 등장하는 목록 중 하나였고, '무진'이란 곳은 실재하지 않은 가상의 도시라는 것. 이런 팩트만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이 소설을 23년 만에 다시 읽은 지금은, '<무진기행>이
이렇게 재미있는 연애소설이었어?' 라는 감탄사였다.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간소설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세련되고 섬세한
묘사가 책에 몰입을 하게 만들었다. 와~ 그래서 소설가 김승옥 씨가 이렇게 유명한 거구나 새삼
느꼈다.
이번에 새움출판사에서 나온 무진기행은 김승옥 단편선을 모은 것이 아니라
'문학상 제정 작가 10인 작품선'이란 부제를 달고 온 만큼, OOO 문학상의 주인공들을 10명 모아서 그들의 대표작을 묶어 만든 책이다.
김동인, 김승옥, 김유정, 백신애, 이무영, 이상, 이효석, 채만식, 현진건,
황순원.
이렇게 10인 작가의 작품이 1개 또는 2개씩 실려 있어서 이들의 작품을 한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10명이나 되는 작가 중 왜 김승옥인가, 왜 무진기행이 책 제목으로 정해졌을까, 궁금했다. 인지도나 작품의 유명도를 따진다면 다른
작가들도 못지 않을 텐데 말이다.
책의 앞날개에 적힌 출간년도를 보니
<무진기행>이 가장 최근(1964년)에 발표되었고, 그밖에 다른 작가의 작품들은 주로 1920년~1930년대에 발표되었다. 그 중엔
가장 최근작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유추하건대, <무진기행>의 섬세한
묘사가 지금 감성과도 딱 잘 맞는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황순원, 이상 작가의 작품을 다시 읽어볼 수 있어서도 좋았고, 백신애의 '나의 어머니'는 처음 읽었는데 짧지만 재미있었다. 학교 선생이었다가
여성운동으로 해직되어 (어머니의 눈으로는) 놀고 먹는 백수딸이 꼴보기 싫은 어머니. 그만큼 어머니의 구박도 컸지만, 유쾌한 신여성인 '나'는
연극 연습에, 모임에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실정.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서 혼자서 킥킥
댔다.
오빠도 XX사건(이렇게 나옴)으로 감옥에 가고, 그
동생인 '나'는 백수이니 그 어머니 속이 얼마나 타겠는가. 엄마의 기분을 맞춰주는 철없는 딸의 모습이 유쾌했다. 이 소설이 1929년에
발표됐다고는 전혀 믿겨지지 않을 만큼 요즘에도 잘 맞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백신애'라는 작가는 잘 몰랐는데 이번에 '나의 어머니'와
'광인수기'를 읽은 후 그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는 궁금증이 생겼다.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백신애 작가는 1908년에 태어나신 분인데, 그 당시 니혼대를 졸업했을 정도로 신여성이었다. '나의 어머니'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고 한다. 경북 영천이면 우리 시골과도 가깝네.)
다시, <무진기행>으로 돌아와 페이지마다 눈에 띄는 글들이 정말 많았다. 필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주인공인
윤희중을 보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에단 호크가 떠올랐고, 영화 <마담 뺑덕>의 정우성이
떠올랐다. 여행지에서 만난 불꽃같은 사랑. 윤희중은 다시 돌아와서 하인숙을 다시 만났을까,
궁금하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시간에 쫓겨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하는 그때와 여유롭게
책 자체를 즐기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받아들이는 마음가짐도 다르다. 감수성이 가장 뜨거울 청소년 시절에 이렇게 좋은 문학작품을
대하고도 단어와 문맥, 전체 줄거리에만 치중해야 하는 문학수업시간이 아쉽고 그 순간이 안타깝다. 문학은 문학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데, 거기에
'시험','교과서', '필독' 이런 단어가 붙으면 그 순간부터 읽기 싫어지니 말이다. 우리 아이 세대엔 문학 자체로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