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안네는 세계 1,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유대인 학살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 "안네의 일기"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속편은 아니다. 그 당시 전쟁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진정으로 그 전쟁으로부터 굿바이를 하고픈 또다른 안네의 이야기이다.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영화들은 그 시대를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영화이다. 이 두편의 영화와 많은 책들을 보면서 생존자들이 그러한 고통속에서 지내고 있는지를 잊어버렸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관심밖에 있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막연하게 마지막까지 살았으니까 잘 살고 있으리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당시 포로수용소에 갇히고 살아난 이야기를 아무도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야기만으로 그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저 가슴 밑에 꼭꼭 숨겨놓고 살아내고 있었다. 상처를 치유하지도 않고 그대로 안고 살아 내었다.
그속에 부모를 잃고 포로수용소내의 삶을 견뎌낸 아이들도 있었다. 아무 설명도 이유도 없이 편안하게 살던 곳에서 내몰려 죽음의 공포에서 살아났던 아이들. 자신들의 눈앞에서 엄마아버지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자랐던 아이들. 열악한 포로수용소내의 조건을 견뎌내었던 아이들. 그들이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어떻게 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서 설명을 요구해도 어떠한 어른들도 그것에 대해서만은 입을 다물어 버리고 설명해 주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서 예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들은 전쟁의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정신적 외상" "공포증"과 함께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가령 먹지 못했기에 냉장고에 먹을거리를 꽉꽉 채우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일. 기차에 실려 가면서 느꼈던 공포를 어쩔 수 없어 전쟁이 끝난 지금도 기차를 타지 못한 일. 어떠한 말을 하면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어떠한 이야기든 함부로 입밖으로 내뱉지 못한 것들은 모두 전쟁의 휴유증으로 인해 상처를 안고 지금도 겪어내야만 했던 일이었다. 그들은 오로지 살아남는 것만이 최우선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남는 것과 살아가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오로지 살았기 때문에 그 삶을 연장해서 살아가야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 수가 있었다. 그 평범함을 갖지 못한 아이들이 살아내기에 그들의 상처는 너무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게 꿋꿋하게 살아낸 아이들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따갑기만 했다. 항상 특별함을 꿈꾸지만 그렇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 다른 이들을 이쁘게 봐주지 않는다. 이야긴 비단 그 시대를 겪은 아이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도 다문화 가정. 한부모 자녀 가정 등을 바라보는 시선또한 그러한 듯 하다.
인생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므로 다르다고 다른 시선으로 보지 말고 더불어 잘 살아가는 시선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라는 것을 일러주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