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음지는 판자촌을 떠올리게 한다. 판자촌은 어떠한 곳인가.. 자신들이 살던 터전을 빼앗기고 서울로 상경하여 서울 사람들이 사는 평지에서는 살지 못하고 비탈진 언덕에 옹기종기 판자를 얽히고 섥히게 엮어 살던곳.. 그곳에서 유난히 서럽고 서러운 사연들이 가득한 곳.. 연탄가스에 흥분하면서도 또한 연탄가스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그러한 곳... 이 아니던가.. 아니나 다를까 복천은 고향에서 남의 황소를 훔쳐 팔아 그것을 여비로 삼아 야반도주한다. 다행히 서울로 상경한 그날 맘좋은 고향 아주머니를 만나 정착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그러한 도움을 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때이며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상경한 때라 서울사람들 인심또한 녹록치 않다. 그런 살벌한 인심을 복천을 서울냄새라 여긴다. 아무리 가까이 하려 해도 비릿하게만 여겨지는 서울냄새.. 그 서울냄새가 더 지독하게 느껴진 것이 복천을 도와준 고향아줌마네 가족이 죽고 난뒤이리라. 연탄가스로 인해 도와주던 아줌마네 가족이 죽고난후 사후처리하러 온 시동생은 사람시신보다 돈을 먼저 찾는다. 사람은 대충 묻어서 화장해버리고 돈만 찾아 떠나버린다. 그당시 서울인심의 대표로 표현된게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일제말부터 해방..그리고 6.25전쟁 후까지 가지지 못한 사람들.. 서민이라 명명된 그 사람들은 살기가 힘들때다. 더군다나 피난까지 내려와 살던곳이 없어진 사람이 더 많을때라 인심이 각박할 때로 각박한 시기였다. 인정과 사람보다는 오로지 돈이 먼저인 시기이기도 하였다. 그 예로 복천이 처음 서울 올라와서 건설현장에 막노동하러 갔을때에도 무리를 지어 새로운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그곳뿐만이 아니라 어느곳이라도 일자리를 찾아들어가기는 힘들었다. 일자리보다 사람이 더 많을때이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그 사람들 각자가 너무나 없는 삶을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서울냄새가 싫은 복천은 고향말을 잊지 않고 사용한다. 고향말을 통해서 그나마 고향사람들과 어쩌다이기는 하지만 만나서 고향의 정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서울냄새를 지독히 싫어하지만 서울에서 살아내야 했고 그곳에서도 정을 만들어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야 고향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탈진 음지는 살기 어렵던 시대를 열어가는 시민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대가 변해 끝났다고 하지만 비탈진 음지에 살던 사람들은 현재에서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서평은 해냄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