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혼자서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 그렇지만 간혹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자신이 그러한 경우에 넣었던 타인에 의해 그렇게 되었던 간에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한다면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 자신의 삶을 타인이 쥐고 흔들면서 운명이라는 사슬에 밀어넣는 것..참으로 기이하기도 하다. 당하는 입장에선 기분나쁜 경우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했던 오대수 역이었을 것이다. 어느날 자신을 한 감옥에 가둬두고 자유를 완전히 빼앗겨 버렸으니까. 그것을 관람하고 장악한 사람은 자신이 전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하는 오대수나 보는 우리들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줄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자유의지는 평상의 삶을 살때는 크게 좌우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자유의지를 행하지 못할때 자유의지가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올드보이랑은 조금 다르지만 쓰리의 주인공 나..나시무라는 굉장히 유능한 소매치기다. 그래서 그런건지..쓰리에서 서리가 연상되었다. 처음엔 제목이 쓰리여서 3을 생각했었는데 읽다보니 서리..가 생각난다. 물론 한글로 쓰면 다르지만 말로 하면 비슷하게 발음되기 때문일 것이다. 각설하고 그는 소매치기이지만 돈에는 그렇게 집착하지 않는 듯 하다. 다만 소매치기 하는 것에서 스릴을 느끼게 되어 자기 직업을 즐겨하는 것이다. 같은 일을 하던 친구인 이사카와를 그리워 한다. 둘은 소매치기를 하고는 있지만 죄의식은 느끼지 못한다. 소유를 인정하지 않으니 절도자체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분배를 본인들 맘대로 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은 인정을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일 끝에 친구를 잃어버려 그를 그리워 하다가 다시 친구를 잃게 되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진다. 한번 빠진 것에선 본인의 의지대로 발을 빼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한 사람의 자유를 좌지우지하는 그 사람에게 끝까지 벗어나려고 노력을 한다. 나의 운명을 잡은 사람의 손에 그대로 안주 하느냐 아니면 어떠한 경우에라도 나의 자유의지대로 행하는 삶을 찾을 것이냐의 이야기인것 같다. 소매치기는 당연 지탄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본인들이 어떠한 철학을 가졌더라도 분배는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재미있다. 주인공인 나에게 끌려가기도 한다. 파렴치한 여자가 아이를 제대로 길러내지 못하는 모습에 아이가 조금의 희망을 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면에선 입가에 살짜기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