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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써틴
볼프강 홀바인.하이케 홀바인 지음, 이병서 옮김 / 예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대단한 책을 보았다. 우리가 생각만 하던 것을 현실에 옮겨온 듯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예전 서양에는 전해 내려오는 전설같은 동화가 있다. 바로 피리부는 사나이였다. 피리부는 사나이는 한 마을에 쥐떼로 인해 피해를 보는것을 보고 그 쥐떼를 다 없애준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쥐떼가 제거된 후에 그 피리부는 사나이에게 줄것을 주지 않았다. 그레서 피리부는 사나이는 그 마을의 아이들을 데리고 그 마을을 떠난다는 이야기다. 그 뒷이야기는 여러가지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다시 이야기로 만들어졌었던걸로 안다. 실제로 그 뒷이야기가 글로 쓰여져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장난아닌 장난으로 입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했었다. 우리도 어릴때 그 책을 읽으면서 과연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란 생각을 했었다.
그 이야기의 절정이 바로 이 책인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선과 악을 가지고 있다. 악마에게 내가 가진 선을 팔고 권력, 명예, 부를 누릴수 있다면 충분히 그럴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흔히 tv 에서 보는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런경우가 아닌가 생각되어지기도 한다. 지금의 현 정치가나 재벌가들의 경우도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니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악의 성격들이 쉬이 드러나기도 한다. 본인과 다른 행동을 하거나 생각이 같거나 하지 않으면 폭발하는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행동도 부모의 관점에서 자식의 행동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니 일종의 폭력인 샘이다. 그렇게 선을 구하기 위해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나 힘들다. 그래서 적당히 악을 내뿜으면서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다.
이 책에선 12명의 아이들이 선한 영혼을 대신하고 또 다른 현실에서 12명의 어른들이 악의 역할을 대신한다. 그 어른들은 본인이 사회를 살면서 누리는 현재의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끝까지 악마와 타협을 한다. 자기 영혼하나 주는 대신 사회생활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면 나두 저들처럼 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 본다. 처음엔 그들을 묶고 있는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현실을 살아가려면 선만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긴 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기에 그들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응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사람이 진정한 인간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작가는 우리에게 일러주는 것 같다. 그렇지만 끝까지 현실과 타협하지 말고 사람이 되라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물론 그것이 우리 모두의 꿈이자 바라는 일일 것이다. 게다가 작가는 책에서의 주인공인 안나마리아에게 13을 선사한다. 이 안나 마리아는 13일 13시 13분 13초에 태어났으며 모든 생활이 항상 13이란 숫자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이름도 써틴이다. 이 13은 서양에선 완성의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했을 때 인원이 13이다. 그래서 이 13은 완벽한 숫자인 것이다. 이 책을 푸는 열쇠이기도 하다.
가끔 환타지 소설은 현실과 동일시 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색다른 세상을 보는 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