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김선주 지음 / 삼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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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신앙인이긴 하지만 개신교인은 아니다. 또한 비평을 비평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다. 이것을 먼저 밝혀두는 것이 맞을 것 같아 이렇게 적는다. 다른 교인들은 비평을 비평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 교인들은 "다빈치 코드" 조차 볼 수 없어 하는 것을 많이 봤다. 그래서 이 책은 받아들일수 있는 사람만이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럼 작가의 의도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진정한 교인들이 보아야 자신들의 교회를 바르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책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정해진 것 같아 조금은 아쉽다. 자신들의 이름이 들어간 사람들과 여전히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만 보면 작가의 생각이랑은 다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한국 개신교를 신랄하게 비판해 놓은 책이다.
그 글에 대해서 공감을 하며 우리네 신앙인들의 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 해본다.
열심한 신자라도 정치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누구나 아전인수격이 되어버리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것 같다.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에 발이 닿는 순간 그 사람의 그전까지의 모든 것은 정치를 잘 할 수 있게끔 하는 하나의 도구로 전락하고 마는 것 같다. 그당시 그사람이 속한 사회가 개신교이든 가톨릭이든 불교이든 간에 말이다. 더군다나 위로 오를 만큼 힘이 있는 사람들은 더 한 것 같다. 그것이 권력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권력은 모든 것을 무시하는 것 같다. 본인의 양심이라든가. 종교적 신앙심이라든가 말이다. 그러니 신앙에 열심인 사람들은 무슨 권력이든 그곳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아야만이 자신의 길이 온전히 지켜질거라 생각된다. 간혹 커다란 교회가 아닌 자그마한 모임의 회장을 맡고 그 단체가 부풀어져서 돈이라는 것의 맛을 조금만 보면 사람들은 변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러니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권력이 나빠서일 것이다.

또 하나의 공감은 심청이 이야기다. 우린 심청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그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아버지를 위해서는 나 하나 희생해서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봉사인 아버진 어찌 살아야지란 생각을 조금 하기는 했지만 어짜피 어린 심청이를 잘 키웠으니 혼자 살아가지 못하진 않을 거란 낙관적인 생각이 더 강했기에 심청이가 한 행동에 자연스럽게 공감을 했을 것이다. 가끔 우리는 효와 이성에 의해서 갈등하게 된다. 어른들의 나쁜 가르침에 이걸 이야기하자니 버릇없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고 그렇지 않자니 그냥 행해야 할 것이니 그 행동이 어중간하게 행해질 밖에 없다. 그래서 한 결과가 좋지 않으니 또 한번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우리나라는 이성보다는 효를 우선시 하는 사회라 그곳에서 길들여져 온 세대들은 또 그렇게 밑으로 교육을 하는 것이다. 어른이 그릇된 일을 시키더라도 일단은 행하고 보는 것 말이다.
 

자연스럽게 내려온 사고를 거스를 수 없듯이 우리네 종교인들도 이 글을 발판삼아 종교적인 길을 갔으면 좋겠다. 유능한 사람들일수록 유혹이 끊이지 않겠지만 그들이 길을 잘 가야 교회가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교회를 대표하는 이니까 목자로서의 제대로된 인식이 필요할 때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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