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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뜬 거울
최학 지음 / 문예사조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책표지가 무척이나 정감이 있다. 잔잔한 연못위에 연꽃이 두송이 피어있는.. 예전엔 절이나 어디 조용한 곳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연꽃이 요즘엔 관광지화 된 곳이 많아 조금만 유명한 관광지에 가면 연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최학님의 시집 표지에 있는 연꽃은 아직 그런 조용한 곳을 찾아가야만 볼 수 있는 연꽃인 것 같다. 시인님의 글에 예전 풍경을 그린 모습이 많이 담겨 있어서 그럴 것이다.
주인을 기다리다 지친 토방의 신발은 온몸이 부르트고
툇마루에 늙은 뒤주는 입 다문 채 말을 잃었다.(p42 빈집 - 중에서)
이렇게 옛풍경이 되어버린 툇마루 한 켠에 앉아 있는 뒤주를 이야기하시니 그 옛날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그곳으로 나도 함께 따라가는 것 같다. 시집에서 이렇게 풍경이 함께 눈앞에 아련거려지는 것을 느낌도 참 오래간만이다. 아마 정서가 약간 농촌적인 것이어서, 우리 주변에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 되어진다. 그 외에도 시인님을 따라 가면서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산사면 산사를 따라가서 풍경을 느끼고 수산시장이면 수산시장을 따라다니면서 그 바다를 그리워 하는 고기의 눈을 함께 보게 된다. 그리고 바닷가에 함께 서서 새벽의 바다가 눈뜨는 것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슴이 따뜻한 풍경이 그려진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 시 한편 한편마다 그대로 함께 한다. 아주 이쁜 풍경이다. 게다가 아련하게 기억의 저 밑에만 가라 앉혀 놓았던 것을 꺼내기도 하고 어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나의 추억인 마냥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추억의 그 길을 하나 하나 따라간다.
시어 하나하나도 참 섬세하다. 시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시어들이 이렇게 이쁜 줄은 또 몰랐다. "별꽃= 개울물에 별꽃이 핀단다 , 조약돌을 사리로 비유하기도 하신다." .. 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떻다라고 말은 못하지만 시를 모르는 사람들도 참 따뜻하게 시를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육군에 근무하셧다고 믿지 못할 만큼 글들이 섬세하시다. 글의 깊이에는 연배가 느껴지지만 시어는 남자라기 보다는 여성적이면서 섬세하시다. 그래서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일 것이다. 아무래도 육군에서 높은 자리까지 오르신 분들은 감정이 없고 무뚝뚝하면서 이성적으로만 움직이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선입견을 깨우쳐 주시기도 하셨다. 다른 누구 못지않게 시들이 부드럽고 정감있기 때문이다.
" 성냥의 자서 p67 " 에서만이 군인이었던 시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 출전앞둔 병사처럼, 산허리 벙커속 전사되어" 란 말이 시의 또따른 표현으로 나타내어지고 있다. 성냥이 성냥갑속에 갇혀있는 모습을 군인들에게 비유하셨다. 그러고 보면 영락없는 군인이기도 하시다.
시를 이해하는 것도 때가 있나 보다. 아무리 괜찮은 시라고 주어도 읽지도 못하고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내가 이 "바다에 뜬 거울"은 속속들이 내 머리속으로 들어와 마음속 깊이 자리 하고 있는 것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