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외래 환자들이 가지고 오는 문제들을 듣고 있으면, 본인의 어린 시절 가족 드라마를 반복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목과 등장인물은 바뀌지만 내용은 언제나 비슷하고 결과도금세 알 수 있는 그런 아침 드라마들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시청자는 알아도 주인공은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것처럼, 실제우리들은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의 반복되는 내용을 전혀 모릅니다.

아이들의 놀이는 재미있고 신나는 일만을 반복하거나 상징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주위에서 일어난 일,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상과의 관계, 특히 가족 간의 관계를 재현하며 이를 수도 없이 반복합니다. 가족 안에서 맺어진 대인 관계의 원형이 마음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은 아이가 앞으로 타인과 자신을 바라보는 틀이 될 것입니다.

어느 순간 우리가 그렇게 부당하게 반복돼 온 내 마음의 덫을 깨닫는다 해도, 쉽게 바꾸긴 어렵습니다. 여태껏 나와 타인을 이해하던 그 방식을 포기한다는 것은 내가 지금껏 알았던나와 이 세계를 포기하는 것과 같이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오는 것이더라도 마음에 자리 잡은기본 프로그램을 쉽게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나 이외의 대상을 알게 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는부모라는 존재는 너무나 거대하고 중요합니다. 부모가 없으면죽을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맺어지는 부모와의 첫 번째 대상관계는 아이에겐 절대적입니다. 거기서 벗어난 패턴은불안과 공포를 유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릴 적부터 드리워진 이 반복되는 인생의 덫을벗어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은 나에게 어떤 패턴들이 반복되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식적 인지행동치료의 대가 제프리 영(Jeffrey E.
Young)은 《새로운 나를 여는 열쇠》라는 책에서 이것을 ‘인생의덫‘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11가지의 인생의 덫이 있다고 보았는데, 앞에서 살펴본 사례들도 이 11가지 덫 안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원하지 않아도 내 인생을 특정 패턴으로 반복되게 만드는덫의 기원은 어릴 적 자아상, 그리고 당시 세상을 보던 시각과연관되어 있습니다.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속엔 아이가 있어서어떤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 어떤 아이가 내 마음에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달래주고 성장시키는 것이 덫을 벗어나는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1. 버림받음의 덫
2. 불신과 학대의 덫
3. 의존의 덫
4. 취약성의 덫
5. 정서적 박탈의 덫
6. 사회적 소외의 덫
7. 결함의 덫
8. 실패의 덫
9. 종속 혹은 복종의 덫
10. 가혹한 기준의 덫
11. 특권의식의 덫

같은 덫에 빠진다고 같은 양상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크게 보면 인생의 덫에 빠졌을 때 행동하는방식은 다음 세 가지의 조합임을 알 수 있습니다.

1. 굴복ㅡ 반복되는 덫에 굴복하게 되면 그런 환경에 저항 없이 몸을 내 맡김

2. 회피ㅡ사람을 아예 안 만나고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지 않기

3. 반격ㅡ덫을 벗어나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과도하게 연기하는 것(버림받기 전에 이별 통보하기)

인생의 덫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나에게 있는 덫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원이 어려서부터 시작된 것임을알아야 합니다. 아직도 마음속엔 어린 시절의 아이가 있음을알아야 합니다. 그 아이에게 말을 걸고, 위로해 주고, 안아 주어야 합니다. 마음속의 아이가 힘을 가지게 되고 성장할 때 우리는 덫에서 벗어날 희망을 얻게 됩니다.

자신의 마음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위로해 주고 대화를 나누세요. 뭐라고 해야 할지 어려워하지 마세요. 자신의 기억을생생히 떠올리고 그 옆에 성인이 된 자신이 있다고 상상하세요. 무슨 이야기든 나누세요. 정 나눌 말이 없으면, 그저 안아주어도 좋습니다. 그 아이를 혼자 내버려 두진 마세요. 그동안따로 떨어져 그 시절에 머물러 있던 내 마음속 일부분과 현재의 내가 소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속 아이와의 대화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않습니다. 그동안의 내생각이 틀렸다는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

어릴 적 갖게 된 자아상과 세상을 보는 시각을 불변의 진리인 듯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잘못된 자아상이나 선입견, 정보 등이 있다면 그것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 작업이 덫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덫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내 모습과 그 덫에 대해서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던 기억,
수치스러운 기억, 부정적 자아상을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않고먼저 인정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억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다락방에 꽁꽁 숨겨 놓았던 기억과 감정을 다른 기억들이 있는 방으로 옮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저절로 긍정적인 기억들, 반대되는 기억들과 융합되어 그 힘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본인에게 맞는 대응 문장을 만듭니다. 내용이구체적이면 더욱 좋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듯 내가 나에게 말해 줄 대응 문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1. 덫에 관련된 기억들, 인생에서 반복되는 문제들을 인지적으로 이해하고직면합니다.
2. 그 이후에는 ‘나를 인정하기‘를 통해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다른 긍정적인 기억, 자신이 가진 긍정적인 자원들과 섞이게 합니다.
3. 마지막으로 그 기억에 붙어 있는 감정적인 요소를 벗겨 냅니다.


이제 세 번째 단계에 해당되는 작업을 ‘나를 변호하기‘라고부르겠습니다.

그런 불쾌하고 격한 감정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이 나를 변호하기입니다.

기억에 붙어 있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떼어 내고 바꾸려면다시 녹여야 합니다. 열을 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열이란 격한 감정 상태입니다. 당시에 느꼈던 감정에 해당하는 만큼 열을 가해야 합니다. 격한 감정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괴롭혔던 과거의 기억들에 대해 자신을 변호하는 문장을 만듭니다. 앞의 ‘나를 인정하기‘에서 마음속 아이에게 들려줬던 말들을 변형해도 됩니다. 단, 자신을 대변하고 보호하듯 강경한 어조의 문장을 만듭니다. 지경 씨는 다음과 같이 정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엾은 본인을 대변하는 인권변호사가 되어 강력한 구호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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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느끼는 세분화되지 않은 불쾌한 감정 덩어리는 큰공포를 줍니다. 그것은 아기에게 생존과 관련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느끼는 배고픔, 불안함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원초적인 공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언어를 배우고, 자신의 감정을 세분화하면서 아이는 그런 공포를 극복합니다. 슬픈 감정에 대해서 ‘이건 슬픔이야‘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규정할 때, 그것은 이미 생존 문제와는 동떨어진 것임을 스스로에게 알려 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함으로써 너무나 추상적인 감정이라는존재를 마음속에서 구체화하고 조절 가능한 존재로 다룰 힘을얻게 됩니다.

따라서 분노를 다스리는 것은 부모를 용서하고 타인을 용서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부터 인정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부모의 요구를 따르지 못했고 부모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자신을 인정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낮아진 자존감도 거기에서 회복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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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상황을 재현하고 다시 사랑을 이루려 노력하는그녀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런 은밀한 욕구 이면에는 커다란 죄책감 또한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마음이 죄책감을 만들며, 터부를 깨는 것에 대한 불안이 존재합니다. 이런 죄책감과 불안은 무의식적인 것이므로, 현실에선이유를 알 수 없는 만성적인 불안감과 공허함, 죄책감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성인이 된 후에 모두에게 다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설명한 다른 과거의 흔적들이 귀환하는 것처럼 이 또한 어떤 상황이 되면 그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은 대부분 과거 오이디푸스 시기를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현재의 경험들입니다.

이런 성적 불감증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겪는 남성이나여성에게 흔히 나타납니다. 상징적인 아버지를 차지했지만, 마음 안에 있는 죄책감은 성적인 쾌감을 느끼는 것을 억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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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콤플렉스 - 사이코 북스 01
로버트 M. 영 지음, 이정은 옮김 / 이제이북스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개념을 정리하고, 이에 대한 다양한 학파의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 멜라니 클라인 학파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프로이트 학파의 이론과 비교설명해 내용이 명료하게 잡힌다. 최근의 학설도 소개해 좋았다. 다만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문장들이 있어 별점은 4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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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해소라 여길 수 있는 우울적자리의 통합은 ‘상징 형성과 합리적 사고를 위한 능력‘
발달의 필수조건(sine qua non)이다. 59) 대상에 대한 보다 확장된 지식은 시간과 공간 속에 있는 존재에 대한 지식의 연속성을 깨닫는 것과, 이를 통해 그 대상이 지닌 다른 관계들을 깨닫는 것을 포함한다. 

브리튼은 또한 ‘우울적 자리와 오이디푸스적 상황을 결코 끝나지 않으며 새로운 삶의 상황마다, 발달의 각 단계마다, 경험과 지식의주요한 축적과 더불어 재작업되어야만 하는 것‘ 으로 보았다.

오이디푸스적 상황에 대한 이런 견해는 또한 자기지식(self-knowledge)이나 통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만약 사랑과 미움 속에서 인식되는 부모 사이의 고리가 아이의 마음 속에 허용될 수 있다면, 아이는 자신이 참가자가 아닌 목격자가 되는 제 삼의 대상관계의 원형을 갖게 될것이다. 그런 다음 대상관계들을 관찰할 수 있는 제 삼의자리가 생겨난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또한 제 삼의 자리에서 우리 자신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우리에게타인과 상호 작용하는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며, 우리 자신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다른 관점을 지닐 수있는 능력, 즉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

환상과 정신병적 불안에 대해서는 한 페이지나 반 페이지에 걸쳐 자세한 색인이 있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겨우 몇 행으로 설명되어 있을 뿐이었다. 관련된 모든 글들을 읽은 후, 이 확연한 불일치를 이해하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거기서 찾아낸 해답은 그것들이 분리된 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클라인학파는 정통 프로이트학파와 신프로이트학파의 발달도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었다. 클라인학파가 초기 정서적 과정의 내용에 주의를 두고 있었던 반면, 프로이트학파는 자신들의 형식에 대한 과학적 모형들과 메타심리학적(역주: 심리학의 연구대상인 의식현상을 초월하여,
그 기초이며 그것을 규정하는 무의식의 특성과 그 활동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 표상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 환자들은 원만하게 살아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생생한 관계를맺지 못하며, 소속감을 느끼고 잘 살아갈 수 있게 그늘이되어 주는 자비로운 결합된 부모상이 없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 환자들은 그 정지상태가 더 나쁜 어떤 상태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 정지한 채로 남는다.

나는 프로이트학파와 클라인학파 사이의 논쟁에서 논쟁자들이 동문서답을 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즉, 프로이트학파가 실재 부모와 의식적인 느낌에 대해이야기했던 반면, 클라인학파는 내적 대상들과 부분대상들, 그리고 굉장히 고통스럽고 언어 이전의 것인 원초적인 무의식적 환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둘째, 배경과 전경에 대한 나의 입장은 이제 초기 과정, 자리, 정서와 발달도식, 연대기, 지형학, 구조적 가설간의 관계에 적용될 수 있다. 클라인이 배경에 비평을 가하진 않았지만, 그것은 또한 중심적 관심사도 아니었다.
그녀를 사로잡은 것은 이드와 무의식의 심연이었다. 그녀가 아이들 본성의 핵심을 파고들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가구조들에 대해 비정통적인 방식으로 글을 쓰고 말한다고여겼다. 클라인에게 있어 전경이었던 것, 즉 무의식적 감정들의 상호작용이 프로이트학파에게는 배경이었다.

 ‘자리‘ 는 구조보다 더 중요한 개념이며, "서로 다른 핵심 감정 주위에 형성된다." 두 가지 기본 본능에 대응되는 기본적인 두 가지 심리적 지형이 있다. 그것들은 "불쾌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감정을아 내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정신적 삶이란 곧 감정의 조절이다. 

클라인학파의 설명은 나에게 진실되게 들렸다. 그것은 내가 피분석자였을 때나, 개인치료,
집단치료, 그리고 집단상담에서 치료자이자 감독자일 때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집단상담은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바로 그런 점에 입각해서 만들어졌다.

나는 지금까지 오이디푸스 역동에 대한 클라인의 생각과 관련된 두 가지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첫째, 나는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클라인의 시각을 간략하게그려 보았고, 그것이 프로이트의 생각과 어떻게 다른지를알아 보았다. 둘째, 여기 제시된 인간 본성에 대한 두 가지 흐름(클라인류와 프로이트류)을 하나의 사고 틀로 가져오기가 왜 그렇게 힘든지, 즉 그 두 가지 사고방식이 서로 혼합되기가 왜 그렇게 힘든지 이해하게 해주는 몇 가지 개념을 제시했다. 나는 그 이유를 각각의 틀에서 강조하고 있는,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결정인자들이 서로 다른 수준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몇몇 프로이트학파의 학자들은 당신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에, 클라인학파의 학자들은 당신이 프로메테우스이기보다는 시지프스처럼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오이디푸스적 상황에 직면하게 되리라 믿는다.

그러나 클라인의 어떤 글에는 게이나레즈비언의 성욕이 선천적으로 병적인 것이라는 무언의가정이 있으며, 이는 프로이트는 결코 취한 적이 없었던입장이다. 프로이트는 ‘정상적인 성욕으로부터 이탈된모든 것을 발달상의 억제와 발육부진의 한 예로‘ 여겼다. 또한 동성애나 성도착도 질병으로 보지 않았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반자연주의적 비평》


[대상관계 이론]

클라인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영향력을 확장시키고 자신의 이론에 리비도 이론의 고전적인 연대기 개념을배경으로 포함시켰지만, 이와 의견을 달리하는 학파에서는 리비도 이론의 기본 개념과 가정들에 대한 비판을 계속해 왔다.

대상관계 이론은 멜라니 클라인과로날드 페어버언(Ronald Fairbairn),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의 연구에서 발전했다. 이들의 이론체계 간에는 중요한 차이들이 있었지만(예를 들면, 페어버언은 클라인과는 달리 생물학에서 확실히 등을 돌렸다), 어머니와 다른 중요한 인물들의 좋고 나쁜 측면 및부분대상과의 관계를 강조했다는 점과, 정신분석적 사고와 임상 연구의 근본적인 과제로 본능의 표현보다는 대상과의 관계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정신분석 사조에 동일한영향을 미쳤다. 이들 연구의 초점은 충동보다는 관계에있으며, 생물학주의적 메타심리학에서 명세화된 본능의목적보다는 (누군가 노래했듯) "내 창백한 안색을 장밋빛으로 물들일 수 있는 내 애정의 대상"에 있다.

대상관계 이론에 리비도는 쾌락 추구(pleasure-seeking)가 아니라 대상추구(object-seeking)를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리비도가대상관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관계가 리비도를결정한다. 최근에 나는 좁은 의미의 성(sex)이 심리치료훈련과정이나 지도감독, 문헌연구에서 놀라울 정도로 작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해 왔다.

프로이트학파에서 자연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성적 반체제자들에게는 맞서 싸워야 할 문화적 규범이다.
그들(성적 반체제자들)은 새로운 종류의 성욕 안에서의재상징화와 새로운 의미부여를 주장한다.

만일 성 도착이 도처에 있는 일이라면, 예외라 말할 수 없다. 즉, 성도착이 흔한 일이고 통례는 정상이라면 ‘성도착‘은 ‘정상‘이다. 그 용어에 담긴 경멸적 함축들은 낡아 빠진 것이 되었으며, 리비도 이론과 그 이론의 핵심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있는 엄격한 발달 요건들을 향해 나아가는 일은 그 권위에 찬 타당성과 이론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

양성애와 여성 동성애에 대한 글에서, 비벌리 벌취는생물학주의에 반대하고 사회구성주의에 찬성하는 유사한입장을 취한다. 그녀는 "여성 동성애와 이성애 정체성 모두는 심리적 요소들을 통합하는 사회적 구성개념이다"라고 말한다. 이 정체성들은 각 여성들마다 다르며, 각 개인의 일대기만큼이나 다양한 표현양식과 원천을 가진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성숙을 향한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가 되는 정통 리비도 이론의 발달경로에 대한 믿음은 대안적 발달도식에 대한 다원론의 증가와 더불어 어느 정도 약화되고 있다. 정신분석학적 입

나는 내 환자각각과 그 부모들 간의 독특한 오이디푸스 역동을 이해하는 것이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그들의 능력을 충분히펼치는 것을 방해하는 혼돈을 해결하는 일의 핵심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데 실패한 사람들은 역사 속에 무수하며, 오늘날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클라인의 정신분석은 우리가분열과 통합, 책임전가(轉嫁)와 배상, 미움과 사랑 사이에서 때로는 매 순간마다, 그리고 인생의 모든 도전 지점에서는 반드시 이리저리 동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결코 끝나지 않을 전쟁임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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