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야 안녕?
뻬뜨르 호라체크 지음 / 시공주니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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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 딸이 생후 3개월 지나고부터 아주 열씨미 보기 시작한 책이 바로 '생쥐야 빨리빨리'라는 책이예요. 이 책도 그 작가가 쓰고 그린 것이라 당연히 아이가 좋아하리라 생각하고 신청했는데 반응은 그저 그러네요.

<생쥐야 빨리빨리>의 경우 생쥐가 마치 직접 책장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는 것 처럼 기발한 아이디어로 그려져 있어서 아이의 호기심과 시선을 자극하는데 이 책은 그런 기발함이 좀 덜해요. 그림은 같은 작가가 그려서 비슷하고 이 책의 그림이 더 이쁘긴 합니다.

책의 내용은 만 1세 미만의 아이도 즐겨 볼수 있을 정도로 아주 쉬워요. 제 딸의 경우 <생쥐야 빨리빨리>처럼 조금 더 내용이 있는 글에 익숙해져서 이 책은 좀 쉬운 듯해요. 그래서 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구요.

작은 새야 일어나! 라는 구절로 시작해서 줄위를 폴짝폴짝, 풀밭 위를 파닥파닥, 땅에 대고 콕콕콕 같은 구절이 반복되요. 의성의태어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점은 아기 그림책으로 아주 적절하지요. 좀 단순한 면이 있지만 아이들은 이렇게 반복되는 구절을 좋아한답니다.

마지막에 지렁이를 잡고 집으로 돌아와서 둥지에 있는 어린 새들에게 먹이를 주는 어미새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예요. 집의 구멍으로 머리를 내밀고 입을 벌린 아기 새들에게 지렁이를 주면서 삐악삐악삐악 와, 아침 먹을 시간이야, 라고 말하는 아가들의 목소리를 듣는 엄마새의 모습은 행복해 보여요.

이 작가의 그림책은 특징이 그림이 아주 예쁘고 화려하면서 책장의 구성이 독특하다는 것이예요. 책장을 넘기면 앞장에서 고개를 집에 파묻은 새의 얼굴이 구멍으로 나온다던가 하는 점이 아주 기발해요. 그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이들의 시선을 끌구요.

이 작가의 책 중 최고는 <생쥐야 빨리빨리>이지만 이 책도 좋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아기새들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묻어나오는 점은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더욱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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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않은 것은 나와 기차뿐 - 안도현 시화선집
안도현 지음, 박남철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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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시 <너에게 묻는다> 전문

 

시집 안 팔리는 요즘 세상에 시를 읽도록 하기 위한 출판사의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 랜덤하우스 중앙에서 최근 펴내고 있는 시화집 시리즈는 정호승, 송기원, 안도현과 같은 시인들의 시에 예쁜 그림을 넣어 대중들의 시선을 끌어 모은다. 이 시화집들은 다양한 작가의 대표작들을 모아 예쁜 그림을 곁들인 덕에 자연스레 출판 시장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시집이 정말 안 팔리는 세상에서 아무리 시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맨 처음에 언급한 안도현의 이 연탄 시 정도는 한번쯤 들어 봤지 싶다. 시를 비롯한 모든 문학 서적들이 고전하는 요즈음 그나마 팔리는 시인으로 꼽히는 안도현. 그의 시는 왜 이토록 인기가 있을까?

 

시인 도종환은 이 시선집에 대한 추천 글을 통해 안도현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안도현의 사랑은 지순하다. 지순하고 뜨겁다. 뜨거우면서도 서늘하게 빛난다. 안도현은 연애만 아는 시인이 아니라 사랑도 아는 시인이다. 사랑만 아는 시인이 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아는 시인이다. 안도현은 풋풋하고 때 묻지 않았다. (중략) 안도현같이 사랑하고 싶다. 안도현같이 연애하고 싶어진다. 안도현같이 빛나는 상상력으로 자유롭고 싶다.

 

이 정도면 한 시인에 대한 다른 시인의 찬사치곤 꽤 빛난다. 도종환 자신 또한 사랑과 삶을 뜨겁게 노래하는 시인이면서 안도현처럼 사랑하고 연애하고 빛나는 상상력을 지니고 싶다고 말한다. 도대체 안도현의 시가 어떻길래 이 정도의 극찬을 받을까? 이런 궁금증으로 시를 하나하나 읽다 보면 한 시인의 더운 가슴이 그대로 느껴진다.

 

징하다, 목련 만개한 것 바라보는 일

 

이 세상에 와서 여자들과 나눈 사랑이라는 것 중에

두근거리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니었으니

 

두 눈이 퉁퉁 부은

애인은 울지 말아라

(후략)

- 시 <목련> 중에서

 

만개한 목련을 보면서 이 세상의 여자들과 나눈 사랑 중 두근거리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니다라는 고백을 할 줄 아는 시인. 앞에서 말한 사랑이란 육체적이고 즉각적인 사랑이고 뒤에 말한 사랑은 아마도 진정으로 마음을 다한 참사랑일 것이다. 시의 화자는 애인의 눈물을 앞에 두고 이처럼 사랑에 대한 정의를 펼친다.

 

마음이 두근거리지 않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 구절에 안도현의 시는 그대로 독자의 마음에 와 닿고 만다. 그러면서 두 눈이 퉁퉁 부은 애인에게 나는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효력을 얻는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긴장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안도현의 시들은 이처럼 사랑, 인생, 고달픔, 번민, 슬픔, 행복 등에 대해 아주 소박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 많다. 다른 시들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어렵고 추상적인 비유보다 직접 실생활에서 느끼고 접하는 감상을 전함으로써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획득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의 시들은 쉬우면서도 마음에 와 닿는다.

 

연애 시절

그때가 좋았는가

들녘에도 바닷가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있던 시절

(중략)

연애 시절아, 그날은 가도

두 사람은 남아 있다

우리가 서로 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오늘도 밤하늘에는 별이 뜬다

연애 시절아, 그것 봐라

사랑은 쓰러진 그리움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 아니냐

그리하여 우리 살아 있을 동안

삶이란 끝끝내 연애 아니냐

 

- 시 <연애> 중에서

 

연애하는 남녀의 눈에는 오직 상대방만 보인다. 이 세상에는 오직 두 사람만 있는 것 같고 모든 사물들은 둘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때가 얼마나 좋은 시절인가. 연애의 경험을 갖고 있는 모든 이들은 이 시의 첫 구절에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달콤했던 시절이 지나가고 나면 그저 씁쓸한 추억만이 남는다.

 

그러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시인은 비록 행복했던 연애 시절이 가더라도 남은 것이 많다고 말한다. 그날이 가도 두 사람은 남아 있으며 서로에게 주고 싶은 것이 많아 밤하늘에 별이 뜬다. 그래서 사랑은 쓰러진 그리움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이며 헤어진 후에도 연애 시절의 감정은 마음에 남아 새로운 삶의 기차를 달리게 만든다.

 

안도현의 시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와 같은 희망적인 사랑과 삶을 노래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나치게 슬프고 비관적인 시보다 슬픔 속에 담긴 작은 희망을, 어두운 삶 속에 존재하는 불씨 같은 생명력을 노래하는 시인. 이런 시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처럼 공감하고 용기를 얻는다.

 

그의 시가 지나치게 대중적이고 가볍다는 비판을 서슴지 않고 던지는 비평가들이 간혹 있다. 나도 가끔 그의 시가 인기에 영합하는 대중성을 보이는 것 같아 싫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감성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아주 소박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시인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안도현의 시들이 책 <잠들지 않은 것은 나와 기차 뿐>에는 옹기종기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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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는 짝짜꿍이야 네버랜드 아기 몸 그림책 1
이형진 지음 / 시공주니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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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그림은 빨간색에 귀여운 손 모양 캐릭터가 있어서 아주 귀엽답니다. 안에 담긴 내용도 교육적인 것이어서 손가락을 하나하나 얘기해주고 손이 하는 일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손의 개념에 대해 알려 주어요.

손을 의인화해서 표현한 것도 독특하고 맨 마지막에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바로 짝짜꿍을 하는 손이예요. 라고 하여 입체북 형식으로 손 모양이 튀어나오는 것이 재미있답니다.

이제 8개월인 울 아가는 책 겉표지를 보고 흥미를 갖고 책장을 넘기니 그림을 구경하다가 마지막 손이 나오는 것을 즐거워 하네요.

하지만 아쉬운 점도 꽤 있는데 돌 정도의 아가가 보기에 좋은 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글자가 작고 내용도 확 끄는 매력이 없어요. 그래서인지 아기가 책 내용을 읽어 주면 잘 듣지 않네요. <달님 안녕> 같은 책은 내용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도 잘 듣는데... 이 책은 내용이 약간 복잡하다고 할까, 그러면서도 확 귀에 들어오는 구절이 별로 없어서 아쉬워요.

또 그림도 너무 캐릭터 중심이다 보니 쉽게 흥미를 잃고 마네요. 색이 아주 선명한 것도 아니고 희미한 빨간색, 파랑색이어서 아이 눈을 끄는 구석이 좀 부족한 듯.... 종이도 보통 어른들 일반 사진들어간 책들처럼 얇아서 나이 어린 아이가 보기엔 적절하지 않아요.

아쉬운 점이 많지만 그래도 약 만 3세의 어린이는 재미있게 보는군요. 아마 영아용이라고 보기 보단 유아용 도서로 구분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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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이 내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다
이명경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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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에 대해 심심찮게 언급된다. 소아정신과에서 일종의 병으로 인정되어 현재 학교 교사들에게까지 교육하고 있는 이 증상은 흔히 말하는 산만한 아이 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주말 방송 중에 아이들의 행동 교정을 보여주는 프로에서 자주 다루어져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 병의 명칭이다.

 

초등학교의 경우 이 증상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한 학급에 한 두 명 정도는 꼭 있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돌아다니거나 계속 큰소리로 떠드는 아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 채 내내 딴짓만 하는 아이. 이런 아이의 부모나 교사는 안타깝기만 하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혹 우리 아이가 이 증상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다.

 

옛날과는 다르게 요새 아이들이 더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왜일까? 상담 심리학을 공부하고 현재 집중력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그 이유를 게임과 텔레비전 등 자극적인 매체에 많이 접촉하는 환경, 지나치게 규율과 규범이 없는 방임적 육아나 그 반대로 너무 아이를 얽어 매는 양육 방식, 인스턴트 위주의 식습관 때문이라고 말한다.

 

흔히 엄마들이 우리 아이는 게임할 때 엄청 집중해요 라고 말하는데 책에서 말하는 집중력이란 이런 수동적 집중력과는 거리가 멀다. 게임이 주는 자극적인 상황에만 집중하는 아이는 그것보다 덜 자극적인 일들에는 집중하기 힘들다. 이런 아이는 일상 생활에선 전혀 집중력이 없는 산만한 아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생활에서 집중력이 높은 아이는 주어진 과제에 몰두하여 시간 내에 끝낼 수 있고 자기 통제 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순간적이고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게임이나 비디오에 심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스스로 통제하여 불편하고 힘든 일일지라도 수행하려 노력한다. 그런 아이는 당연히 공부를 잘하고 학업 성취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럼 주의력과 집중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지나치게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하는 환경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아이가 이미 게임과 텔레비전 중독이라면 그것을 끊는 것이 가장 좋다. 텔레비전과 게임 시간을 정해 놓고 꼭 그 시간 동안에만 티비를 보고 컴퓨터를 하도록 유도한다.

 

저자는 주의력이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형성되는 능력임을 강조한다. 식사시간, 잠자는 시간, 텔레비전 보는 시간 등이 일정하게 유지될 때 아이들은 주변의 다양한 정보에 안정적으로 눈과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이렇게 시간 활용을 잘 하다 보면 자기 생활을 아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서 좀더 효과적인 시간 배분을 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자녀의 집중력을 꺾는 부모들을 언급하면서 그런 부모의 양육태도가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조기교육에 집착하는 엄마, 아이가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태도, 많은 걸 성취해야 한다는 가치관, 이 반대로 너무 방임하는 부모의 생활 방식 등은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냥 아이를 믿으면서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 주는 것만으로도 부모는 훌륭한 아이의 인생 선배가 될 수 있다. 많은 부모들은 이 사실을 잊은 채 아이를 다그치며 보다 더 많이 성취하라고 강조하는 오류를 범한다. 한편 어떤 부모들은 마치 자기 아이들을 그저 방치하는 것이 훌륭한 교육 방식인 양 착각한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부모들에게서 자란 아이가 어떻게 행복하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책은 부모들에게 따끔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지나친 자극을 줄이고 적당한 학습 의욕을 불어 넣어 주면서 칭찬하는 교육법이 가장 좋다는 것. 학업과 관련하여 너무 강조하거나 방치하는 행동은 금물이다.

 

인간은 모두 더 잘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 아무리 못난 사람도 지금보다 더 못한 자신의 모습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잘하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을 자주 무시당하거나 해도 안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믿음을 부모나 교사로부터 은연 중에 전달받게 될 때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게 된다.

 

이런 칭찬의 방법에도 기술이 있다. 잘 하는 것을 콕 꼬집어내어 칭찬할 것, 다양한 영역에서 골고루 칭찬하여 고른 인성 발달을 도울 것, 어떤 일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중시하며 얘기해 줄 것,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눈빛과 다정한 몸짓으로 칭찬해 줄 것 등이다. 이 말대로라면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으로 사랑스러운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

 

엄마들의 가장 큰 오류가 바로 우리 아이의 행복을 위한다면서 진정한 행복의 길은 제시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치 엄마가 요구하는 길로 가야만 아이가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을 버리고 한 템포 늦춰 아이를 바라 보자.

 

우리 아이가 혹시 지나치게 많은 자극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방임적으로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변 환경이 산만한 건 아닌지, 부모로서 반성해야 할 모습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부모부터 바뀌자. 그러면 우리 아이의 집중력도 쑥쑥 자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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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 내가 겪은 6.25 전쟁
김원일 외 글, 박도 사진편집 / 눈빛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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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난 그냥 전쟁이 일어난 날 정도로만 알고 있는 세대다. 부모님 또한 아주 어릴 적에 지나간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셔서 우리 나라가 겪었던 이 시대적 아픔에 대해 별 느낌이 없었다고 말해야 솔직할 것 같다.

 

이런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6.25 관련 경험이라면 바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서이다. 이 영화에 대한 비판도 엄청 났지만 전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한반도가 겪었던 비극을 잘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 가족이 역사적 질곡에 휘말려 상처투성이가 되는 장면들은 가슴이 찡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젊은 관객들도 눈물을 흘리면서 이 영화의 장면 장면들을 보고 가슴 아파했다. 몇 십 년 전에 겪은 우리 땅의 고통을 모른 채 살고 있는 젊은이들. 그들에게 산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는 책이 바로 <나를 울린 한국 전쟁 100장면>이다.

 

이 책을 만들게 된 박도 님은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의 사진 자료실에서 Korea War 파일을 들추다가 한국 전쟁의 실상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들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데나 흩어진 시체더미들, 전투기들이 마구 쏟아 떨어뜨리는 포탄, 배만 불룩한 아이가 버려진 채 울고 있는 장면. 슬픈 과거사가 고스란히 담긴 사진들이 엄청난 양으로 저장된 채 미국 땅에 잠들어 있었다.

 

엮은이는 이 사진들을 가져다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는 마음에 수만 매의 사진자료를 들춰 그 중 4백 80여 매를 복사해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지울 수 없는 이미지>라는 제목으로 두꺼운 양장본의 책을 출간했던 것이 대중용 포토 에세이로 엮어야 일반 대중들이 쉽게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다시 <나를 울린 한국 전쟁 100장면>이라는 제목으로 나오게 되었다.

 

6.25를 잘 알지 못하는 세대인 나는 이 책을 펼쳐 든 순간 첫 장부터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게 과연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일일까 싶을 정도로 참혹한 장면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붕대로 칭칭 얼굴을 동여맨 채 담요를 뒤집어 쓰고 끈으로 묶인 사람들. 이 사진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미군의 네이팜탄 공격으로 부상당한 여인들이 응급구호소에 모여 있다. 젤리화한 가솔린을 사용하는 네이팜탄은 한국전 기간 중 미군이 최초로 사용하였는데 그 파괴력과 살상력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으며, 수많은 화상 피해자들이 속출했다. 이들은 손을 전혀 쓸 수가 없어 군용 담요를 뒤집어 씌우고 붕대로 묶어 놓았다. 수원, 1951.2.4.

 

우리는 왜 이렇게 피해를 입어야 했나. 어떤 잘못도 하지 않은 민간인들을 이런 식으로 학살한 미군 측의 입장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책에 따르면 이런 참혹한 학살 사진들 대부분이 가해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었다고 한다. 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은 멀쩡한 사람을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아름다운 우리땅을 상처투성이로 만들어 버렸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가장 크게 다가오는 느낌은 바로 붙들려 있는 포로나 길가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희망이 없는 눈빛, 무표정하고 절망적인 얼굴을 가졌다는 것이다. 전쟁이란 얼마나 무자비한 것인가. 인간에게서 희망을 뺏고 삶의 의욕을 없애며 공포와 무기력함과 절망을 주는 것. 그 무서운 일을 인간이 벌이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사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김원일, 문순태, 이호철, 전상국과 같은 문단의 중견 소설가들이 에세이 형식으로 쓴 6.25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다. 김원일은 자신의 아버지가 남로당원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당시 빨갱이로 불리던 사람들의 입장을 생생히 전달한다. 그의 글에는 이념과 사상 때문에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6.25를 이야기하면서 네 소설가가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바로 어린 시절에 경험한 죽음에 대한 충격이다. 자기 동네에서 한 파나마모자를 쓴 아저씨가 죽임 당하는 모습을 목격했던 소설가 문순태는 6월만 되면 그 악몽이 떠올라 가슴이 아리도록 안타깝다고 한다. 그가 전하는 이야기에는 낮 세상은 국군, 밤 세상은 빨치산에게 시달려야만 했던 민간인들의 상황도 잘 드러나 있다.

 

어떤 이유로 이렇게 평범한 민간인들이 상처 입고 아파해야 했나. 순진했던 청년들이 학도병으로 나서 서슴지 않고 살인을 해야만 했을까. 책을 보다 보면 전쟁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잔혹한 행위임을 가슴에 새기게 된다. 이 사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가치관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어딘가에서 여전히 전쟁이 존재하고 있으니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더 이상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책 <나를 울린 한국 전쟁 100장면>. 과거의 역사를 길이 기록하여 후대에 알리는 일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어떤 후손도 앞으로는 이런 아픔을 가져 오는 일을 벌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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