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 내가 겪은 6.25 전쟁
김원일 외 글, 박도 사진편집 / 눈빛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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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난 그냥 전쟁이 일어난 날 정도로만 알고 있는 세대다. 부모님 또한 아주 어릴 적에 지나간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셔서 우리 나라가 겪었던 이 시대적 아픔에 대해 별 느낌이 없었다고 말해야 솔직할 것 같다.

 

이런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6.25 관련 경험이라면 바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서이다. 이 영화에 대한 비판도 엄청 났지만 전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한반도가 겪었던 비극을 잘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 가족이 역사적 질곡에 휘말려 상처투성이가 되는 장면들은 가슴이 찡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젊은 관객들도 눈물을 흘리면서 이 영화의 장면 장면들을 보고 가슴 아파했다. 몇 십 년 전에 겪은 우리 땅의 고통을 모른 채 살고 있는 젊은이들. 그들에게 산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는 책이 바로 <나를 울린 한국 전쟁 100장면>이다.

 

이 책을 만들게 된 박도 님은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의 사진 자료실에서 Korea War 파일을 들추다가 한국 전쟁의 실상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들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데나 흩어진 시체더미들, 전투기들이 마구 쏟아 떨어뜨리는 포탄, 배만 불룩한 아이가 버려진 채 울고 있는 장면. 슬픈 과거사가 고스란히 담긴 사진들이 엄청난 양으로 저장된 채 미국 땅에 잠들어 있었다.

 

엮은이는 이 사진들을 가져다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는 마음에 수만 매의 사진자료를 들춰 그 중 4백 80여 매를 복사해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지울 수 없는 이미지>라는 제목으로 두꺼운 양장본의 책을 출간했던 것이 대중용 포토 에세이로 엮어야 일반 대중들이 쉽게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다시 <나를 울린 한국 전쟁 100장면>이라는 제목으로 나오게 되었다.

 

6.25를 잘 알지 못하는 세대인 나는 이 책을 펼쳐 든 순간 첫 장부터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게 과연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일일까 싶을 정도로 참혹한 장면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붕대로 칭칭 얼굴을 동여맨 채 담요를 뒤집어 쓰고 끈으로 묶인 사람들. 이 사진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미군의 네이팜탄 공격으로 부상당한 여인들이 응급구호소에 모여 있다. 젤리화한 가솔린을 사용하는 네이팜탄은 한국전 기간 중 미군이 최초로 사용하였는데 그 파괴력과 살상력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으며, 수많은 화상 피해자들이 속출했다. 이들은 손을 전혀 쓸 수가 없어 군용 담요를 뒤집어 씌우고 붕대로 묶어 놓았다. 수원, 1951.2.4.

 

우리는 왜 이렇게 피해를 입어야 했나. 어떤 잘못도 하지 않은 민간인들을 이런 식으로 학살한 미군 측의 입장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책에 따르면 이런 참혹한 학살 사진들 대부분이 가해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었다고 한다. 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은 멀쩡한 사람을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아름다운 우리땅을 상처투성이로 만들어 버렸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가장 크게 다가오는 느낌은 바로 붙들려 있는 포로나 길가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희망이 없는 눈빛, 무표정하고 절망적인 얼굴을 가졌다는 것이다. 전쟁이란 얼마나 무자비한 것인가. 인간에게서 희망을 뺏고 삶의 의욕을 없애며 공포와 무기력함과 절망을 주는 것. 그 무서운 일을 인간이 벌이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사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김원일, 문순태, 이호철, 전상국과 같은 문단의 중견 소설가들이 에세이 형식으로 쓴 6.25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다. 김원일은 자신의 아버지가 남로당원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당시 빨갱이로 불리던 사람들의 입장을 생생히 전달한다. 그의 글에는 이념과 사상 때문에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6.25를 이야기하면서 네 소설가가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바로 어린 시절에 경험한 죽음에 대한 충격이다. 자기 동네에서 한 파나마모자를 쓴 아저씨가 죽임 당하는 모습을 목격했던 소설가 문순태는 6월만 되면 그 악몽이 떠올라 가슴이 아리도록 안타깝다고 한다. 그가 전하는 이야기에는 낮 세상은 국군, 밤 세상은 빨치산에게 시달려야만 했던 민간인들의 상황도 잘 드러나 있다.

 

어떤 이유로 이렇게 평범한 민간인들이 상처 입고 아파해야 했나. 순진했던 청년들이 학도병으로 나서 서슴지 않고 살인을 해야만 했을까. 책을 보다 보면 전쟁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잔혹한 행위임을 가슴에 새기게 된다. 이 사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가치관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어딘가에서 여전히 전쟁이 존재하고 있으니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더 이상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책 <나를 울린 한국 전쟁 100장면>. 과거의 역사를 길이 기록하여 후대에 알리는 일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어떤 후손도 앞으로는 이런 아픔을 가져 오는 일을 벌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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