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청와대에선 무슨 일이? - 권불십년
송국건 지음 / 네모북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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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 개혁 의지와 관련하여 일부에서는 언론 탄압이네, 정보 폐쇄네 말이 많다. 이런 말들이 나오게 된 데에는 ‘청와대’라는 곳이 밀실이자 경호의 대상이라는 ‘폐쇄성’에 근거한다.




폐쇄적 공간의 상징인 청와대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평범한 시민들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궁금할 때가 많다. 책 <도대체 청와대에선 무슨 일이?>는  금지의 구역이 청와대의 속사정을 그나마 시원스레 풀어 놓는다. 물론 책에도 언급되지 않는 온갖 이야기들이 청와대를 배경으로 하여 난무할 테지만 말이다.




저자는 정치부 기자 생활의 절반 가까운 8여 년 동안 청와대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이에 얽힌 일화를 이야기한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정권 교체 동안 청와대도, 청와대 사람들도 많은 변화를 거쳤다. 그 변화의 모습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가고 있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만 해도 그렇다. 전에는 비서실장이라고 하면 대통령의 완벽한 오른팔로 일하며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통령과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다 보니 그의 심중을 제일 먼저 이해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청탁과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어떤 비서실장의 경우는 자신이 마치 대통령인 양 아랫사람들을 호령하고 온갖 청탁의 끈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경호실은 어떨까? 대통령 대신 죽는 연습을 한다는 경호실 사람들은 그야말로 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토대로 한다. 대통령의 이동 경로나 근황 등을 가장 잘 알고 있지만 어디에도 누설할 수 없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 이발사와 같은 운명이다.




대통령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어떻게 알까?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은 인터넷을 자주 이용하면서 민심과 언론의 동향을 파악한다고 한다. 대통령이 주로 접하는 정보는 국가정보부, 경찰 정보 보고, 직속 기관들의 보고를 통해서 얻는다. 국가정보부는 정권의 감각 기관이어서 늘 세상에 대한 촉수를 곤두세우지만 실제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라고 한다.




그러니 책상 앞에 앉아 수집된 정보만 보고 들은 대통령이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일이 허다할 수밖에 없다. 저자에 따르면 유신정권으로 비난을 받았던 박정희 대통령도 그렇게까지 독재자적 성격을 갖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만 그의 눈과 귀를 어둡게 하는 주변 인물들의 잘못된 정보 보고로 세상의 민심을 읽지 못하여 엉뚱한 방향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르겠다.




대통령 다음의 우리나라 최고 권력은 국무총리다. 국무총리는 국가 원수의 위기 시 업무를 대행하는 막중한 역할을 책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권력은 대통령에 비해 매우 약하다. 기껏해야 대통령과 함께하는 국무회의를 주관하는 정도. 저자에 따르면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실세 총리인 반면 어떤 총리는 이름만 걸어 놓고 실무적인 차원에서 뒷전에 머무른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국무총리를 지낸 인사들이 모두 대권에서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김종필, 이홍구, 이수성, 박태준, 이한동, 이회창 씨 등 모두 6명이나 되는 전직 국무총리가 대권을 노렸지만 모두 실패했고, 현재 고건 전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가 대권주자로 거론되지만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현 참여정부 청와대에는 유난히 ‘튀는 참모’들이 많다고 한다. 예를 들면 대학 그룹사운드 출신의 비서관이라든지 가족 모두가 무술 사범인 비서관 등 독특한 경력의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386 운동권 출신 인사를 대거 영입하는 바람에 청와대 직원들의 연령층이 대폭 낮아진 것도 노무현 정권의 특징이다.




대변인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도 많다. 저자는 “사실 참여 정부 청와대는 ‘대변인 복’이 없는 편”이라고 말한다. 초대 송경희 대변인부터 워치콘과 데프콘을 혼돈하여 국가적 위기를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을 하는 등 실수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마나 후임인 윤태영 대변인이 참여 정부에서는 성공한 대변인에 속한다고 한다.




대통령의 연설문은 도대체 누가 쓰는 걸까? 대한민국의 최고 필력가로 꼽히는 ‘고도원의 아침편지’의 고도원 씨는 오랜 기자 경력 끝에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문을 쓴 걸로 유명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연설비서관이 써 준 원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밝히기 일쑤인데 이런 거친 화법이 두고두고 화제가 된다.




연설을 잘하는 대통령을 꼽으라면 단연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들 수 있는데 그 말하기 방식에서 둘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는 원칙에 충실한 편이어서 쓰인 연설문의 토대에 맞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하지만 준비가 철저하여 연설 전에 자신이 꼼꼼히 원고를 검토한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 생각이 아주 강하고 논리적인 토론을 좋아하여 이야기 방식 또한 토론을 유도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방식을 두고 “말싸움하기 좋아하는 대통령”이라는 비난도 많이 받지만 그가 평소 갈고 닦은 지식과 정보의 양을 생각한다면 그걸 무시하기도 어렵다. 일상 중에 철저히 준비하고 공부하여 자신의 말하기 방식을 굳혔다고 할까.




이 책을 읽다 보면 대통령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최고 지휘관인 만큼 자타 공인하는 ‘내공’이 필수적이다. 대선을 앞두고 갑을공방이 난무한 현 시점에서 차기 대선주자들은 어떤 내공으로 이 자리에 대한 승부수를 걸고 있을까? 그들의 능력은 국민들의 판단이라는 잣대로 충분히 검증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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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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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평수를 늘려가며 행복을 맛보는 공간, 재테크의 수단이자 소유하고 싶은 곳. 많은 사람들은 집을 이런 대상으로 인식한다.




우리는 모두 건축 속에 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속한 건물이나 집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기껏해야 이삼년에 한번 씩 방의 벽지를 바꾸거나 재테크를 위해 이사를 계획하는 정도다. 이렇게 별 의미를 두지 않던 집이 때로는 커다란 의미를 갖고 삶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집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행복의 건축>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Essays in Love)>,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Kiss & Tell)>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집’에 대해 얘기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집, 건축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은 고통과 대화할 때 그 가치가 드러난다’고 말하면서 집은 그 고통의 순간에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고 전한다. 엉뚱한 사람과 결혼하거나 중년이 되도록 보람 없는 일만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상처가 남았을 때 비로소 건축은 우리에게 눈에 띄는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기존에도 그곳에 항상 그 모습으로 존재하건만 건축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물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특질을 눈여겨 볼만한 마음의 열림이 없다가 슬프고 넓은 현실과 부딪힐 때, 인간은 자신이 속한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힘든 세상과 달리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좁은 공간, 시야에 맞닥뜨리게 되는 건물의 벽 등을 눈여겨보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축물임에도 많은 이들은 그 미학성을 간과한다. 과거의 집들은 기후나 주변 환경, 얻을 수 있는 재료 등을 고려하여 지어졌다. 그래서 다수의 집주인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돌, 나무 흙에 군말 없이 만족해야만 했다. 게다가 인쇄비가 비쌀 때에는 세계 다른 지역의 집을 볼 수 있는 사람조차 소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건축가들의 끊임없는 탐구와 자기 계발 끝에 집은 미학적 가치를 내포하고자 노력한다. 우리는 거의 모든 건물에 대하여 어떤 주어진 분위기에 기여해줄 것을 기대한다. 작가에 의하면 그것은 종교적인 분위기일 수도 있고 현대적인 분위기이거나 전원적인 분위기일 수도 있으며 사교적인 분위기, 혹은 가정적인 분위기일 수도 있다.




“우리는 건물이 마음을 다독여주기를 바랄 수도 있고 흥분시켜주기를 바랄 수도 있으며, 조화의 느낌을 풍기기를 바랄 수도 있고 절제의 느낌을 풍기기를 바랄 수도 있다. 우리는 건물이 우리를 과거와 연결시켜주기를 바랄 수도 있고 미래의 상징 역할을 해주기를 바랄 수도 있다. 만일 이런 부차적이고, 미학적이고, 표현적인 수준의 기능이 무시된다면 욕실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 때처럼 불평을 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집에 대해 무언가를 기대한다. 그 ‘무언가’는 정신적인 평안함, 특정한 분위기, 즐거움과 행복, 발랄하고 상쾌한 기분 등 다양할 것이다. 우리는 하다못해 아파트 외벽의 색칠 상태나 거실 벽의 포인트 벽지, 텔레비전과 장롱의 색이나 디자인, 배치 등에 집착하면서 집의 분위기가 나의 정신세계를 개선해 주리라 믿는다.




저자는 ‘우리 환경이 우리에게 하는 말이 중요한가?’ 라는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는 우리 인격의 복잡다단한 성격 덕분에 인간은 환경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기에 집의 디자인은 기능적 측면과 함께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결국 오늘날의 인간은 건축이라는 환경에 둘러싸여 살고 있기에 그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변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름다움의 가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질된다. 어떤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감정이 늘 변함없을 것이라고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의 영속적 가치를 믿게 된다. 그러나 디자인과 건축의 역사를 보면 우리의 취향은 변덕스럽게 변화해왔음을 발견할 것이다.




“선례들에 비추어 볼 때, 나중 세대도 언젠가는 우리가 살던 집들을 지나가면서 우리가 지금 죽은 자들의 소유를 볼 때 그러는 것처럼 혐오감과 두려움을 느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의 벽지와 소파를 보고 놀랄 것이며, 우리가 미학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태연했다고 조롱할 것이다.”




모더니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멋지게 지어 놓은 주택단지는 모더니즘의 전형이 되었다. 장식이 없는 상자 모양, 긴 직사각형의 창, 평평한 지붕 등은 고전적인 주택 양식과는 다른 형태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곳에 입주한 세입자들은 그 독특한 아름다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들 나름의 새로운 장식을 추가해 버린다.




입주 노동자들은 위대한 건축가의 설계를 망친다는 생각 같은 건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꽃무늬 벽지를 바르고, 말뚝 울타리를 세우고, 작은 여닫이 창문을 단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집’이라는 공간을 자기가 좋아하는 요소들로 채운 것이다. 따라서 아름다움의 기준과 형태는 늘 변화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결국 집은 자기만족의 공간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집을 꾸미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산다. 때로는 얼룩진 벽지나 색이 바랜 창틀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 능력 상 쉽게 바꿀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런 집에서 살게 되는 피치 못한 상황도 왕왕 발생하다.




기왕이면 작은 화분 하나라도 가꾸면서 아름다움과 행복의 요소를 갖춘 집을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든 이들의 바람일 것이다. 이 시대의 위대한 문필가 알랭 드 보통이 말하고 싶은 건축도 바로 그렇다. ‘행복의 건축’. 우리가 속한 모든 공간은 행복을 가져다 줄 의무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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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아이를 화나게 만든다 - 부모와 자녀의 심리 비교 분석
이정숙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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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 “아니, 도대체 우리 애가 왜 이럴까?” 하고 걱정이 들 때가 있다. 세 살인 딸아이의 경우 자기 뜻대로 잘 안 되면 으앙 울음을 터트리려고 한다. 고집이 있고 자기 욕심이 강한 성격이라 그런 것 같은데 어떻게 이끌어 주어야 할지 고민이 다.


책 <부모가 아이를 화나게 만든다>는 이처럼 아이 다루기에 고민이 많은 부모를 위한 책이다. KBS 아나운서를 역임하고 현재 사내 커뮤니케이션 향상 교육을 위탁 진행하는 회사의 대표로 있는 이정숙 님이 쓴 것으로 아이와 올바르게 대화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저자는 부모가 자녀의 사고 특성, 생리적 특성, 상처받는 이유, 반항하는 이유 등을 알고 대처하면 부모가 어느 정도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아이들이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부모들은 아이의 반항 이유를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자기 주장을 고집할 때가 많다.


아이에 따라 성격이 다 다르기 때문에 부모가 해주어야 할 방법도 각각 다르다. 어떤 아이에게는 많은 격려가 큰 도움이 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다그치고 강요하면 반발심만 더하는 아이도 있다. 문제는 부모가 아이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다.


튼튼한 엄마에 비해 몸이 약한 소혜는 집에 오면 좀 쉬고 싶다. 하지만 엄마는 무슨 애가 집에만 오면 드러눕느냐고 야단치기 일쑤다. 소혜 자신도 더 활동적이고 의욕적으로 지내고 싶지만 몸이 안 따라 주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럴 때에 엄마가 아이의 상태를 잘 관찰한다면 아이가 학교 일로 지치고 피곤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은 조금만 자기 자존심이 무너지면 그것을 반항으로 나타낸다. 어른들은 사회생활을 통해 자존심을 통제하는 능력이 생겼지만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에게서 자기 절제와 통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아이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부모의 생각을 고집한다면 분명 반항과 대화의 단절을 경험할 것이다.


한창 재미있게 만화를 보고 있는 아이에게 엄마가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방해를 하면 아이는 화가 나서 엄마 말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럴 때는 아이가 만화책을 다 볼 때까지 기다린 후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더 좋다. 아들이 만화책에 몰두할 때마다 잔소리를 하면 아이는 엄마의 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일단 기분이 상하면 상대방의 호의적인 마음으로 전하는 충고나 조언도 무시하게 된다. 만화책 보는 아이에게 양서를 권하고 싶다면 먼저 만화책을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는 간단하고 직접적인 말로 부모의 생각을 전한다. 아이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엄마가 진심으로 전하는 충고는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있다.


하찮아 보이는 아이의 사생활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여섯 살짜리의 사생활은 고작 자기가 아끼는 장난감을 감추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를 밝히기 싫어하는 것 등이다. 부모 눈에는 사소해 보이는 이런 일들이 아이에게는 매우 소중한 일이다. 그걸 인정해주지 않으면 아이는 영역을 침해당한 짐승처럼 사나워진다.


특히 이 나이의 아이들은 부모에게 대항할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면 대결보다는 부모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떼쓰고 소리 지르고 우는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부모의 항복을 받아낸다. 좀 더 자라면 일기장, 홈페이지, 휴대폰 문자 메시지 등이 사생활 보호 대상으로 편입된다. 아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런 영역들을 부모가 관리한다는 생각에서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횡설수설하여 말의 주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거나, 부모의 행동이 이랬다저랬다 하여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면 부모의 말을 가볍게 듣는다고 한다.


가령 어린 아이가 밤마다 늦게까지 자지 않고 칭얼거리면 부모는 입으로는 자라고 말하면서 같이 놀아주기 쉽다. 그러면 아이는 자라는 것인지 놀아도 된다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어 밤이 늦어도 자지 않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 이럴 때 부모가 자신의 원하는 바를 분명히 전하려면 원칙을 세우고 그에 따르지 않으면 보채도 모른 척해야 한다.


부모의 말에 권위가 서려면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많은 부모들이 이를 지키지 않아 아이를 혼란에 빠뜨리고 갈등을 일으킨다. 공부하라고 해 놓고서 심부름을 이것저것 시킨다던가, 일찍 자라고 해놓고서 부모는 텔레비전을 보며 늦게 잔다면 아이는 부모에 대한 존경을 잃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아이를 최대한 이해하고 간결한 대화를 통해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일이 중요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책에서 말하는 대로 잘 실행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 이래서 부모 되기의 어려움을 다시금 느낀다.


아이가 커가면서 아이와 다툴 일도 많아진다는데 그럴 때마다 부모는 혼란을 겪을 것이다. ‘나는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아이를 이렇게 교육해도 되는 걸까?’ 이런 의문 없이 부모가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아이를 잘 관찰하고 그 마음을 읽으면서 대화로 갈등을 해소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좋은 부모가 되는 최고의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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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지 놀이 잼잼곰 놀이 18
신순재 지음, 이종미 그림, 이수현 꾸밈 / 웅진주니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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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 중 웅진주니어 것들도 꽤 좋은 게 많다. 최근에 울 딸이 좋아라 하는 잼잼곰 시리즈 중 <신문지 놀이>는 신문지를 찢어 붙인 콜라주 기법이 독특해서 엄마 맘에 든다.

아이들 책을 골라 주다 보면 넘 화려하거나 비슷한 톤들의 그림이 많아 색다른 것을 보여 주고 싶어진다. 그래야 우리 아이의 시각이 더 폭넓게 될 테니 말이다.

이 책은 신문지 오려 붙인 게 나와서 독특하다. 아이가 무슨 이런 책을 좋아하랴 싶지만 의외로 너무 재미 있어 한다. 신문지가 사자 머리 위에 떨어지고 개구리를 덮고 있다는 설정도 재미 있고 아이가 좋아하는 온갖 동물들이 나오는 것도 시선을 끈다.

—s—s 그러면서 개구리가 신문지를 뚫고 나오는 장면을 제일 좋아라 하는데 의성의태어가 흥미를 끄는 것 같다. 게다가 아이가 사랑하는 개구리가 튀어 나오니 얼마나 좋을까.

책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보드북이라 어린 나이부터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대략 돌 이후부터 두돌 정도의 아가라면 즐겁게 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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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자장 잠자는 집 웅진 세계그림책 95
유리 슐레비츠 지음, 공경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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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주니어의 <자장자장 잠자는 집>은 20개월이 되면서 좋아하게 된 책이다. 글자 수가 꽤 되고 스토리도 조금 긴 편이라 인지 능력이 꽤 생긴 후에 보여주어야 좋다. 이  책은 칼데콧 영예상을 받은 <비 오는 날>이라는 그림책을 쓴 작가 유리 슐레비츠가 글과 그림을 넣었다.


<자장자장 잠자는 집>은 저자가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마을인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살면서 음악과 낭만이 넘치는 마을풍경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창작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몽환적인 분위기가 독특하다.


밤이 되어 모든 것들이 잠을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방 안의 사물들은 하나씩 잠에서 깨어나 음악에 맞춰 멋진 춤을 추고...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는듯한 극적인 전개는 어린 아이만이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도 즐겁게 일깨운다.


특히 자장자장 잠자는 집에 모두가 잠을 자다가 창 너머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모두 깨어난다는 설정은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잠자던 의자가 비틀비틀, 휘청휘청, 잠자던 접시가 한들한들, 흔들흔들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고요한 아가의 방안은 들썩이기 시작한다.


“꾸벅꾸벅 의자 옆에 꾸벅꾸벅 탁자.

쿨쿨 벽에 걸린 쿨쿨 그림들.

드르렁드르렁 벽시계 옆에 드르렁드드렁 찬장.“


이렇게 의성의태어를 사용한 글귀들은 리듬감과 재미를 준다. 침대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비추고 있는 달님도 잠을 자는데, 신기하게 아이들은 이 ‘달님’을 너무 좋아한다. 많은 책들의 소재로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아이들 책 소재로 달님이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아이들이 사랑하는 대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의 마지막에서 모든 사물은 다시 고요히 잠을 청한다. 침대 속 아이도 자장자장, 벽도 자장자장, 그림들도 자장자장, 모두 자장자장 잠이 드는 집. 책의 사물들이 춤을 추는 장면에서 눈이 커지고 재미있어 하던 우리 아이도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잠이 들기 전에 읽어달라고 가지고 오는 책의 숫자가 많아진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드는 아이는 어떤 꿈을 꾸면서 잘까? 아이가 자면서도 행복하고 즐거운 생각을 하면 좋겠다. 잠자기 전에 읽는 멋진 책의 내용처럼 말이다. 강아지 인형을 끌어안고 잠이 든 아이의 얼굴을 보니 평온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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