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다와 잃었다는 같은 뜻일지도 몰라? 윤조를 다시 만나다. 어떻게 해야 내가 너를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p016) 할머니가 돌라가셨고 유품 정리를 같이 한다. 윤조가 형성하는 뉘앙스를 사랑하니까. (p021) 할머니는 엎질러진 물처럼 녹아 있었어. (p033)
나는 집을 나와 모텔 데스크에서 일한다. 청소도 한다. 글을 쓰기에 적당할 거 같아서 선택했다.
윤조는 실존 인물인가? 내가 쓴 소설 속의 인물인가? 내가 쓴 소설에 등장하고 내가 마무리 지은 소설 속에 있는 윤조. 소설도 사실을 바탕으로 쓰는 소설이 있죠. 그래서 저는 많이 혼동되었던 거 같아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한 번 더 읽으면 명쾌해 지려나?
명은? 나와 연인이었고 오랜 만에 만나도 계속 만나고 있던 사이처럼 편안하다. 남녀, 사람 사이의 관계이지만 살아 있는 관계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집안의 어색한 상황에서 물을 마시는 건 일반적인 행동이다. 자주 마시다 보니 화장실을 자주 가지만 참다 보면 방광염이 걸리고 잔뇨감이 느껴진다. 방광염 진단을 받는 나.
언니와 엄마, 엄마의 애인, 윤조, 203호 할머니의 공통점은 등산을 했거나 한다. 내가 빠졌지만 따듯한 가족애가 느껴지는 상황, 씁쓸할 거 같다. 산에서 애인을 죽이려고 했다는 엄마. 사실인가? 다시 산에서 엄마의 애인을 보고 테러를 가한 가족들. 산을 같이 다녀오고 방에만 있던 언니가 가족과 어울리고 맨날 울던 엄마가 울지 않고 윤조도 행복해 보인다.
[해설]? 이 책은 소설책인데, 해설이 필요하다? 평론가의 해설은 옳은가? 독자의 나의 느낌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굳이 이야기를 깊게 분석하고 어렵게 풀어줄 필요가 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이런 [해설], [평론] 들에서 도움을 기대하고 얻는 경우가 있을 테니까. 또한, 이 글을 말미에 실어준 기획의 의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녹색 갈증이란 다른 형태의 생명체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다. (p166)
나의 오판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혼란스러웠고 저자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난해하다는 말이 소설에 쓰일 줄을 몰랐다. 저자의 전작이 있고 이 다음 작품이 있다면 읽기로 결심을 한다. 사조? 여러 작가들의 글에 반영된 성향을 이야기하는데… 한 명의 작가에게도 그런 성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전에 녹색갈증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바이오필리아(biophilia)를 우리말로 의역한 말이다. 바이오필리아는 '바이오(bio; 생명)'와 '필리아(philia; 사랑)'가 조합된 용어로, 직역하면 '생명애(生命愛)'라는 의미가 된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이 생명이 있는 것 혹은 생명과 관련된 것에 끌리는 심리적 성향을 설명하는 데 처음 사용하였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1929~)이 1984년 그의 저서 ≪바이오필리아≫를 통해, 녹색 갈증을 다른 형태의 생명체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로 정의한다. 생명애의 경향이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선택과 행동에 강력하게 영향을 준다고 본다. 예를 들어 개와 고양이 같은 생물을 보고 느끼는 호기심과 관심, 휴일이면 산과 바다 등 자연을 찾는 현상, 자연물이 결여된 인공 환경에서 발생하는 몸의 이상 증세와 정서장애 등도 자연 또는 생명을 좋아하고 이들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녹색 갈증 [Biophilia, 綠色渴症]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읽기전의 이 글은 무슨 의미인지 글자만 눈에 들어왔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자 글자가 설명해주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 리뷰는 몽실북클럽 서평이벤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