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의 반란 - 잘하지 않아도 좋아할 수 있는 삶에 대하여
캐런 월런드 지음, 서은경 옮김 / 현암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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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아픈 곳을 들여다보고 고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지 어느덧 삼십 년에 가까워진다. 오십 대 중반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베테랑처럼 보이기 십상이지만, 정작 내면은 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다. 말 못 하는 환자들을 돌보는 수의사라는 직업의 무게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매일이 긴장의 연속인 삶 속에서 마음껏 서툴러도 좋은 ‘진짜 취미’를 갈망하던 중, 캐런 월런드의 <아마추어의 반란>은 내 굳어버린 마음에 신선한 균열을 내주었다.

우리는 흔히 무언가에 미숙한 사람을 낮잡아 부를 때 ‘아마추어 같다’는 표현을 쓴다. 실제로 이 단어에는 프로에 비해 부족하거나 어설프다는 사회적 편견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편견의 장막을 걷어내고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한다. 아마추어(Amateur)의 어원은 라틴어 '아마트(Amare)', 즉 ‘사랑하다’에서 기원했다. 프로가 보상과 성과를 위해 달린다면, 아마추어는 오직 그것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성과 중심의 사회가 뒤틀어버린 어원의 본뜻을 깨닫는 순간, 가슴 한구석에서 묘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프로가 된다는 것은 과연 더 나은 삶만을 의미할까?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내게 꽤 흥미로운 생각 거리를 주었다.

오십 대 중반이 되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진다. 젊은 시절에는 안정적인 직장, 사회적 인정과 성취가 삶의 중요한 기준이었고, 주어진 조직 안에서 능력을 증명하며 전문성을 키워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익숙함은 새로운 도전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일한 사람일수록 경력과 평판을 잃고 싶지 않아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보다는 잘하는 일을 반복하고, 이미 알고 있는 영역에 머무르려 한다. 나 역시 흰 가운 안에서 그런 삶에 익숙해져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선언하는 '의도적인 아마추어 정신'은 정해진 기준과 익숙한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좋아서 하는 일을 굳이 잘해내지 않아도 되며, 서툰 채로 머무르는 시간이 오히려 우리 삶을 풍요롭게 채운다는 깨달음이다.

아마추어에게는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도 명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도 덜하기에 오히려 자유롭다. 저자가 도자기 공예, 수영, 피아노, 서핑 등에서 마주한 엉성한 결과물들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도하는 과정 자체에서 누리는 순수한 기쁨이자, 호기심, 마음챙김, 자기 자비, 놀이, 안전지대의 확장·연결·경이로움이라는 일곱 가지 삶의 태도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다. 늘 정답을 찾아야 하는 세계에 있던 나에게,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며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다독임은 커다란 위로였다. 오십 대 중반에 다시 아마추어가 된다는 것은 꽤 멋진 일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모르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며, 다시 배우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

책의 말미에 수록된 200가지가 넘는 활동 목록을 넘겨보며, 매일 수술 도구를 다루느라 긴장했던 손으로 전혀 다른 서툰 짓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손가락이 굳어 건반을 제때 누르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것을 하는 시간 동안 온전히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것이 어원에 충실한 ‘진짜 아마추어’의 삶이다. 이 책은 생산성과 완벽주의의 무게에 지쳐 순수한 즐거움을 잃어버린 모든 현대인들에게 권하며, 독자들은 이를 통해 강박에서 벗어나 서투름 속에서 자비와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삶의 풍요로움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오십 대 중반, 나는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도전할 일도 많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 서툴러도 좋겠다. 남들이 정해 놓은 기준에서 벗어나 내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아마추어의 반란이 아닐까.

이 리뷰는 몽실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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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신평 지음 / 문이당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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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유한함을 건너는 다리, 그리고 영혼의 메아리

 

수의사로 살아온 지 사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매일 병원에서 마주하는 것은 말 못 하는 동물들의 눈빛과 그 안에 깃든 가냘픈 생명의 온기다. 수많은 탄생과 죽음을 지켜보며 삶과 죽음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50대 중반이라는 나이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다시 묻게 한다. 그런 때 신평 변호사의 장편소설 <환생>을 만났다.

소설의 전반부는 주인공 영래가 사법부와 사회에 뿌리내린 기득권의 불공정에 맞서 정의와 신념을 지키려는 여정을 그린다. 보수와 진보라는 서로 다른 외피를 두른 권력의 논리 속에서 그의 싸움은 고독하고 험난하다. 정치적 공격으로 사랑하는 아내 숙경마저 먼저 여의고, 영래 역시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한 채 외로운 유랑을 이어가다 생을 마감한다. 올곧게 살고자 했던 한 인간의 패배는 안타까움을 넘어, 정의롭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영래의 죽음에서 끝나지 않는다. 작가는 그를 사후 세계로 이끌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숙경과 재회하게 한다. 영혼의 여정에서 영래는 생전의 원망과 상처를 돌아보며 정신적 스승의 가르침을 되새긴다. 사람을 선악으로 쉽게 나누지 말고 마음의 그릇을 키우라는 말이다. 평생 세상의 불의에 맞서 날을 세웠던 그가 마침내 인간의 불완전함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법을 배워간다. 그 끝에서 터져 나오는 “아, 세상은 아름답구나”라는 고백은 외부의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만큼 내면의 변화도 중요하다는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이 여정은 유송의 아들이 영래의 환생인지 묻는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고통과 증오를 내려놓고 사랑과 포용을 깨달은 영래의 영혼이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환생이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채 다시 태어나는 일인지, 한 존재가 깨달은 가치와 사랑이 다른 생명 안에서 이어지는 순환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이 질문은 죽음이 모든 인연의 끝인지 돌아보게 한다.

수의사로서 나는 생명의 마지막 순간과 그 곁을 지키는 보호자들의 눈물을 수없이 보았다. 과학적으로 죽음은 생명 활동의 종결이지만, 사랑했던 존재가 남긴 기억과 온기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환생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어도,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과 사랑의 흔적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은 이해할 수 있다.

<환생>은 삶의 무게와 사회적 모순에 지친 이들, 죽음과 영혼의 의미를 고민하는 독자에게 내면의 구원과 포용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원망과 편견을 내려놓고 마음의 그릇을 키우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일상에서 곁에 있는 사람과 생명을 아끼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사랑과 배려를 실천할 수 있다.

유송의 아들이 정말 영래의 환생인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다만 육체의 생명은 유한해도 사랑과 인연, 우리가 남긴 가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환생은 죽음 뒤에 다시 태어나는 일만이 아니라, 증오를 내려놓고 사랑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작품이 전하는 가장 따뜻한 위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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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밀크웨이 - 남겨진 세 사람의 기록
김강토 외 지음 / 부기출판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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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를 흔드는 손, 그리고 남겨진 버터의 길


우유를 세차게 흔들면 지방이 분리되어 버터가 된다. 한 번 분리된 버터는 이전의 우유로 돌아갈 수 없다. <버터밀크웨이>는 고(故) 백세희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연인 김강토와 친구 이수현, 동생 백다희가 1년 동안 함께 써 내려간 애도 에세이다. 임상 수의사로 동물들의 생과 사를 지켜봤고 지금은 바이오 분야에서 품질관리(QC)를 맡고 있는 내게, 이 책은 상실과 관계의 의미를 돌아보게 했다.

장례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세 사람은 매달 만나 각자의 글을 읽고 마음을 나누기로 한다. 함께한 시간이 달랐던 만큼 슬픔의 모습도 다르다. 연인 김강토는 달리며 고통을 견디고, 친구 이수현은 오랜 우정의 흔적과 일상의 빈자리를 마주한다. 동생 백다희는 언니의 물건과 생활의 흔적을 간직하며 언니 없는 시간을 살아간다. 달리기와 음식 만들기, 남겨진 존재를 돌보는 일처럼 그들의 애도는 평범한 하루 속에서 이어진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슬픔을 단순히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떤 날은 무너지고 어떤 날은 웃으며, 계절과 기념일이 돌아오면 다시 그리워한다. 애도는 상처를 지우고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부재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한 사람을 중심으로 연결되었던 세 사람이 이제는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서로를 통해 연결되는 모습은 사랑이 떠난 뒤에도 다른 형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책을 읽으며 나도 물었다. 훗날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를 위해 이런 글을 써줄 사람이 있을까. 아내와 세 아이들, 친구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 함께한 시간을 글로 남기고 싶을 만큼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었는지 생각하게 됐다.

나는 임상 현장에서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고, 지금은 QC 업무에서 원료와 제조, 시험 결과를 확인하며 책임을 다하려 한다. 정확성과 완성도를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지만, 정작 가족의 이야기를 얼마나 귀 기울여 들었는지, 아내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했는지는 돌아보게 된다. 일에 쏟은 정성만큼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에도 관심을 기울였는지 자문하게 된다.

세 사람의 글은 떠난 이를 향한 애도인 동시에 서로를 향한 사랑의 고백이다. 나 역시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글을 써주기를 바라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힘든 시간을 함께 견디며 기꺼이 그 사람의 이야기를 써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먼저 안부를 묻고, 고마움을 표현하고, 아내와 믹스커피 한 잔을 나누며 하루의 이야기를 듣는 일부터 시작하려 한다.

<버터밀크웨이>는 상실을 경험한 사람뿐 아니라 가족과 친구, 연인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슬픔과 기쁨은 함께 존재할 수 있으며, 오늘 우리가 할 일은 곁에 있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언젠가 내 삶의 마지막 페이지에 '함께해서 참 좋았다'는 그리움이 남도록, 그런 글을 기꺼이 써주고 싶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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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에게 필요한 심리학 - 무례한 세상에서 단단하게 나를 지키는 50가지 심리 도구
에바 블로다레크 지음, 이상희 옮김 / 북라이프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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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신호에 귀 기울이다: 나를 지키는 심리학

50대 중반, 돌아보면 참 치열하게 살아왔다. 임상 수의사로 수십 년 동물의 아픔을 돌봤고, 지금은 바이오 스타트업의 품질관리(QC) 팀장으로 일한다. 출퇴근길과 주말 밤 당직 중 마음의 소란을 마주한다. 완벽을 기해야 하는 책임감 이면에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과 내면의 갈증이 있었다. 에바 블로다레크의 <지금 나에게 필요한 심리학>은 내게 마음을 다스리는 50가지 심리 도구를 건넨다.

첫 번째 메시지는 불만족을 변화의 신호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익숙한 임상 현장을 떠나 바이오 분야에 도전한 것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50대에 다시 배우고 능력을 증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불만족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점검하라는 내면의 목소리다. 그 원인을 살피고 원하는 삶을 질문할 때 변화는 시작된다.

두 번째는 나의 가치를 내가 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품질관리 업무는 작은 오류도 놓칠 수 없는 엄격한 기준과 책임을 요구한다. 데이터의 신뢰성을 확인하고 일탈의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정확성은 필수다. 그러나 업무의 엄격함을 삶 전체에 적용하면 나와 주변에 지나치게 높은 잣대를 들이대게 된다. 품질에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지만 사람에게는 이해와 유연함이 필요하다. 타인의 인정이나 성과만으로 나를 평가하지 않고, 노력과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자기 존중의 출발점이다.

과거에 대한 메시지도 남는다. 과거는 지금의 나를 만들지만 미래까지 결정하지는 않는다. 생명을 지키려 애썼던 시간과 결과 앞에서 느낀 후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겪은 불안과 시행착오는 모두 나를 만든 경험이다. 이를 지우려 하기보다 배움으로 바꾸고 현재의 선택에 활용해야 한다. 지나온 시간은 짐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뿌리다.

마지막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로움으로만 여기지 말라는 생각에 공감했다. 세 아들의 아버지이자 가장, 조직의 리더로 살다 보면 늘 누군가를 살피고 책임져야 한다. 모두의 기대를 채우려다 내 마음을 놓치기도 한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은 고립이 아니라 소진된 에너지를 회복하고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다. 주말 새벽 홀로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위로를 얻듯, 때로는 한 걸음 물러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 적절한 거절과 건강한 경계는 관계를 지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불안과 관계의 갈등에 지쳤거나 인생의 전환점에 선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감정을 이해하고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며, 기록과 성찰, 건강한 거절과 혼자만의 시간을 일상에서 실천하도록 돕는다.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증명하기보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불만족을 변화의 신호로, 과거를 성장의 자산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회복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 세상의 엄격한 기준 속에서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조금 더 너그러워지는 것, 그것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심리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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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의 과학하는 마음 - 불확실성의 시대를 건너는 삶의 태도
장하석 지음 / 흐름출판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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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정답보다 중요한 것은 정직한 질문이. 다과학은 우리에게 현재 가장 타당한 답을 찾아준다.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긴 50대 중반, 나의 일터는 매일이 치열한 검증의 연속이다. 오랜 시간 임상 수의사로 동물들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했으며, 지금은 바이오스타트업에서 품질관리(QC)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세포를 배양하고 유전자 분석 결과를 확인하며 백신과 생물학적 제제의 품질을 평가하다 보면 정답과 완벽함이라는 강박에 빠지곤 한다. 기준에 맞으면 합격, 벗어나면 불합격이라는 판단은 안전을 위해 필요하지만, 생명과학의 복잡한 현상을 정해진 규격만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장하석의 <과학하는 마음>은 과학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넓혀주었다. 저자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 천문학, 의학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지식도 수많은 시행착오와 논쟁, 실패와 수정 끝에 세워졌음을 보여준다. 기존의 권위에 도전했던 연구자들과 주목받지 못했던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지식의 발전이 다양한 관점과 협력의 결과임을 일깨워준다. 과학은 완성된 정답을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더 나은 설명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자신의 지식에 대한 겸손함이다. 지금 옳다고 믿는 사실도 새로운 증거 앞에서는 달라질 수 있다. 자신의 판단을 절대화하기보다 다른 의견에 귀 기울이고, 필요하다면 생각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하는 마음은 많이 아는 능력보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탐구를 이어가는 태도에 가깝다.

이러한 메시지는 나의 직업적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임상 현장에서 같은 질병이라도 환자마다 증상과 치료 반응은 달랐다. 경험과 교과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기존 판단을 내려놓고 원인을 다시 찾아야 했다. 지금의 품질관리 업무 역시 본질은 다르지 않다. 과학이 자연현상의 원리를 탐구하고 증거를 통해 설명을 검증하는 과정이라면, 품질관리는 그 과학적 지식과 제조 과정이 실제 제품에서도 일관되게 구현되는지를 데이터로 확인하는 일이다. 시험 결과 하나하나에는 제품의 특성과 제조 공정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이를 단순한 합격과 불합격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결과의 의미를 해석하고 원인을 추적하며, 필요하다면 기존의 가정과 절차까지 다시 살펴야 한다. 데이터를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오차를 감추지 않고 사실 그대로 기록하는 정직함은 과학의 기본이자 품질관리의 출발점이다. 결국 과학적 진실을 존중하는 태도가 제품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지키는 힘이 된다.

50대 중반이라는 나이는 오랜 경험만큼 익숙한 판단을 바꾸기도 쉽지 않은 시기다. 그러나 생명과학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인공지능은 지식의 생산과 활용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축적된 경험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

이 책은 전문적 관성에 갇히기 쉬운 연구자와 현장 실무자뿐 아니라 세상을 깊이 이해하고 싶은 학생과 직장인, 평생학습자에게 권하고 싶다. 자신의 지식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고 다양한 관점에 귀 기울이며, 일상의 작은 의문도 근거를 확인하고 탐구하는 습관을 실천한다면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것이다.

과학에는 정년이 없고 배움에도 마침표는 없다. 수의사로서 생명을 대했던 책임감과 품질관리자로서 데이터를 바라보는 정직함을 잃지 않으며, 앞으로도 익숙한 것에 질문하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완벽한 정답보다 더 나은 답을 찾으려는 겸손함, 그것이 내가 이 책에서 다시 발견한 과학하는 마음이다.

이 리뷰는 몽실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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